문재인 "할머니 뜻에 어긋난 합의 사과"
위안부 할머니 "일본 사죄만 받게 해달라"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 초청 오찬 간담회... 김복동 할머니 병문안도

등록 2018.01.04 16:15수정 2018.01.05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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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향해 인사하는 문 대통령 부부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4일 오후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 초청 오찬을 마치고 참석한 할머니들을 향해 청와대 본관 앞에서 정중히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4일 낮 12시, 청와대 본관. 문재인 대통령 부부는 현관 입구에 서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일일이 맞이했다. 개별 이동한 한 할머니가 15분 늦었지만 문 대통령 부부는 현관에서 선 채로 기다렸다가 할머니가 도착한 뒤에 함께 오찬 장소인 충무실로 이동했다. 

문재인 대통령 "일방적으로 추진한 내용과 절차 모두 잘못"

문 대통령은 이날 생존해 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8명을 청와대에 초청했다. 앞서 김복동 할머니는 지난해 8월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독립유공자·유족과의 오찬 행사에서, 이용수 할머니는 지난해 11월 트럼프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열린 국빈 만찬장에서 만난 적이 있다. 하지만 대통령이 단독으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를 만난 것은 처음이었다.

청와대의 한 핵심 관계자는 오찬간담회 전 브리핑에서 "피해 당사자인 할머니들의 의견을 대통령이 경청하는 자리이자 할머니들이 대통령의 의사를 묻는 자리가 될 것 같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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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과 포옹하는 문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이 4일 오후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 초청 오찬에 참석하는 할머니들을 청와대 본관 앞에서 반갑게 맞이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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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 '잘 오셨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4일 오후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 초청 오찬에 참석하는 곽예남 할머니를 청와대 본관 앞에서 반갑게 맞이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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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피해 할머니 반갑게 맞이하는 문재인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이 4일 오후 청와대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반갑게 맞이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날 할머니들과 오찬을 함께 했다. ⓒ 연합뉴스


먼저 문 대통령이 "저희 어머니가 91세인데 제가 대통령이 된 뒤로 잘 뵙지 못하고 있다"라며 "오늘 할머니들을 뵈니 꼭 제 어머니를 뵙는 마음이다"라고 반가운 마음을 전했다. 문 대통령은 "할머니들을 모두 청와대에 모시는 게 꿈이었는데, 오늘 드디어 한 자리에 모시게 되어 기쁘다"라며 "국가가 도리를 다하고자 하는 노력으로 봐주기 바란다"라고 말했다.

이어 문 대통령은 "과거 나라를 잃었을 때 국민을 지켜드리지 못했고, 할머니들께서도 모진 고통을 당했는데 해방으로 나라를 찾았으면 할머니들의 아픔을 보듬어 드리고, 한도 풀어드렸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라고 반성했다.

문 대통령은 "오히려 할머니들의 의견도 듣지 않고, 할머니들의 뜻에 어긋나는 합의를 한 것에 죄송하고, 대통령으로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라며 "지난 합의는 진실과 정의의 원칙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정부가 할머니들의 의견을 듣지 않고 일방적으로 추진한 내용과 절차가 모두 잘못된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문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 지난 합의가 양국 간의 공식합의였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으나, 그 합의로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천명했다"라며 "오늘 할머니들께서 편하게 여러 말씀을 주시면 정부 방침을 결정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하겠다"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2015년 박근혜 정부 당시 한일간의 '12.28 위안부 문제 합의'가 "내용과 절차 모두 잘못된 것"이라고 했지만 '협상 파기'나 '재협상' 등은 직접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이날 오전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위안부 합의 파기를 포함해 모든 게 가능하다"라는 의견을 피력해 눈길을 끌었다. 

위안부 할머니들 "소녀상이 무서우면 사죄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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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과 '함께 갑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4일 오후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 초청 오찬에 참석하는 할머니들과 오찬장으로 향하고 있다. ⓒ 연합뉴스


문 대통령의 인사말이 끝나자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발언이 이어졌다. 이용수 할머니는 "내 나이 90에 청와대 근처에도 못 와봤는데 문 대통령이 당선되고 벌써 두 번이나 청와대에 들어왔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용수 할머니는 "2015년 12월 28일 합의 이후 매일 체한 것처럼 답답하고, 한스러웠다"라며 "그런데 대통령이 이 합의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조목조목 밝혀주어 가슴이 후련하고 고마워서 그날 펑펑 울었다"라고 전했다.

이용수 할머니는 "위안부 문제 공식사과, 법적 배상을 26년이나 외쳐왔고, 꼭 싸워서 해결하고 싶다"라며 "대통령이 여러 가지로 애쓰는데 부담드리는 것 같지만 이 문제는 해결해 주셔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용수 할머니는 "소녀상을 철거하라고 하는데, 소녀상이 무서우면 사죄하면 된다"라며 "국민이 피해자 가족이다,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면 세계평화가 이루어진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옥선 할머니는 "대통령이 바뀌고 할 말을 다해주시니 감사하고 이제 마음 놓고 살게 되었다"라며 "우리가 모두 90세가 넘어 큰 희망은 없지만 해방 이후 73년을 기다리고 있는데 아직도 사죄하지 않는다"라고 일본 정부를 질타했다.

이옥선 할머니는 "어린 아이를 끌어다 총질, 칼질, 매질하고 죽게까지 해놓고, 지금 와서 하지 않았다는 게 말이 되나?"라며 "우리가 살면 얼마나 살겠나, 사죄만 받게 해달라, 대통령과 정부를 믿는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이옥선 할머니도 "우리의 소원은 사죄받는 것이다"라며 "사죄를 못 받을까 봐 매일 매일이 걱정이다, 대통령께서 사죄를 받도록 해달라"라고 당부했다.

<한 많은 대동강>을 부른 길원옥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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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원옥의 평화' 선물 받은 문재인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이 4일 청와대 본관 충무실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 초청 오찬에서 참석한 길원옥 할머니의 음반 '길원옥의 평화' 를 선물 받고 밝은 표정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날 오찬 간담회에 참석한 길원옥 할머니는 13살 때 평양에서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다. 조국은 해방을 맞았지만 민족이 분단되면서 아직도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길원옥 할머니는 인사말 대신에 대중가요 <한 많은 대동강>을 불렀고, 지난해 낸 '길원옥의 평화'라는 음반도 문 대통령에게 선물했다.

길원옥 할머니가 부른 <한 많은 대동강>은 1950년대와 1960년대 '얼굴 없는 가수'로 불렸던 손인호씨의 노래다. 노래가사에는 '대동강' '부벽루' '모란봉' '을밀대' 등 평양을 대표하는 장소들이 등장한다. 분단 때문에 고향(평양)에 갈 수 없는 실향민의 아픔을 담았다. 노래를 부른 손인호씨는 속칭 '38 따라지'(월남민) 가수였다.

오찬이 끝난 뒤 김정숙 여사가 할머니들에게 일일이 목도리를 직접 매줬다. 청와대는 "이날 할머니들에게 선물로 드린 목도리는 아시아 빈곤여성들이 생산한 친환경 의류와 생활용품을 공정한 가격에 거래해 여성의 경제적 자립을 지원하는 국내 최초의 공정무역 패션 브랜드를 선정했다"라고 설명했다.

할머니들이 "대통령과 사진 찍는 것을 가장 하고 싶었다"라며 개별 기념사진 촬영을 요청해 문 대통령 부부가 할머니 한 분 한 분과 기념사진을 찍기도 했다.

이날 오찬 간담회에는 윤미향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공동대표와 지은희 정의기억재단 이사장, 안신권 나눔의 집 소장, 강경화 외교부 장관,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 남인순 국회여성가족위원장 등이 참석했다.

김복동 할머니 "문재인 대통령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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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4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중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를 문병하고 있다. ⓒ 청와대


이날 오찬에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입원 중인 김복동 할머니 병문안을 다녀왔다. 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할머니께서 쾌유하셔서 건강해지고, 후세 교육과 정의와 진실을 위해 함께해주시기를 바라는 국민들이 많다"라며 "오늘 할머니들의 말씀을 듣기 위해 청와대에 모셨는데, 할머니들께서 건강하셔서 싸워줘야 한다"라고 당부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정부의 합의가 잘못되었고 해결된 것이 아니다라고 말씀드렸는데, 과거 정부가 공식적으로 합의한 것도 사실이니 양국관계 속에서 풀어가야 하는데 쉽지 않은 측면도 있다"라며 "할머니들께서 바라시는 대로 다 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정부가 최선을 다할테니 마음을 편히 가지셨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이에 김복동 할머니는 "총알이 쏟아지는 곳에서도 살아났는데 이까짓 것을 이기지 못하겠는가?"라며 "일본의 위로금을 돌려보내고, (일본 정부가) 법적 사죄와 배상을 하면 되는 일이다"라고 거듭 일본 정부의 사죄를 주장했다.

김복동 할머니는 "그래도 이 복잡한 시기에 어려운 일이고 우리가 정부를 믿고 기다려야 하는데 우리도 나이가 많으니 대통령이 이 문제가 해결되도록 힘을 써달라"라며 "내가 이렇게 누워있으니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청와대 쪽은 "김복동 할머니는 외교부 TF 조사결과와 이후 대통령의 발표 메시지를 듣고 '문재인 대통령은 다르다, 역시 대통령을 잘 뽑아야 한다'라고 관계자들에게 말했다"라고 전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재인 #이용수 #이옥선 #김복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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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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