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적 블랙리스트였던 묵자

[서평] 2000년간 권력이 금지한 선구적 사상가 <묵자가 필요한 시간>

등록 2018.01.10 13:51수정 2018.01.10 13:51
2
원고료로 응원
역사를 꿰고 있는 벼리(維, 일이나 글에서 뼈대가 되는 줄거리)는 사상입니다. 고려를 지배하던 사상은 불교였고, 조선시대 이래 우리나라 정치와 문화, 사회적 질서와 정서적 가치까지를 꿰고 있던 사상은 유교였습니다.

조선시대 유교는 임금이 백성을 통치하는 명분이자 배경이었습니다. 유교는 정치적 기준이 되고 수단이 되었습니다. 혹자는 우리나라에서는 유교가 조선에서 끝났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유교가 미치는 영향은 앞으로도 아주 긴 세월 동안 꾸준히 지속될 것입니다.


지금 당장 눈에 보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유무형의 것들, 국보나 보물로 남아있는 것이 유교를 뿌리로 하고 있는 상징물들입니다. 사회문화적 가치, 정서나 질서로 배어있는 유교는 풍습과 전통이란 말로 계승되고 있습니다.

역사를 가정(假定)하는 것만큼 무모한 게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함에도 조선을 꿰고 있던 사상이 공자가 주창한 유교가 아니라 묵자가 주창한 사상(겸애)이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을 감출수가 없습니다.

<묵자가 필요한 시간>

a

<묵자가 필요한 시간> / 지은이 천웨이런 / 옮긴이 윤무학 / 펴낸곳 흐름출판 / 2018년 1월 10일 / 값 25,000원 ⓒ 흐름출판

<묵자가 필요한 시간>(지은이 천웨이런, 옮긴이 윤무학, 펴낸곳 흐름출판)은 2,00년간 권력이 금지한 사상, 군신과 부부를 차별하던 유교와 달리서 두루 차별 없는 사랑(겸애)을 주창하던 묵자와 사상에 대한 내용입니다.  

묵자는 공자나 맹자에 비해 널리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묵자가 주창한 사상 또한 공자가 주창한 유교에 비해 겸손할 만큼 가려져 있습니다. 묵자가 주장한 겸애가 유교에 비해 덜 알려지고 지나치게 가려졌던 건 유교에 비해 열등해서가 아닙니다. 


공자와 맹자가 논어, 예기 등을 통해 주창한 유교는 평등하지 않습니다. 이에 반해 묵자가 주창한 사상은 임금과 신하, 남편과 아내를 차별하지 않는 평등, 누구누구를 구별하지 않고 모든 사람을 똑같이 사랑하는 겸애(兼愛)였습니다.  

권력을 선점한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묵자가 주창하는 겸애, 차별을 두지 않는 사회는 진보, 좌파적 가치였을 겁니다. 묵과해서는 안 될 위협이었기에 금지로 가리고, 억압으로 수그러들게 하였을 거라 생각됩니다.

공자는 "군자가 도를 배우면 사람을 사랑하고, 소인이 도를 배우면 부리기 쉽다"고했는데, 이는 일종의 '차별애'이다. 따라서 묵자는 겸상애를 강력히 주장하고, 겸으로써 별을 바꾸자고 제창했다. 이는 매우 진보적 의의를 지니고 있다. - <묵자가 필요한 시간> 124쪽

차별을 두지 않는 겸애는 등급 질서가 엄밀한 인애를 비판하면서 유가의 아픈 곳을 찔렀다. 유가에서는 길거리를 지나는 사람과 부모를 똑같이 사랑한다는 건 말도 안 된다고 여겼다. 묵자는 부모를 길거리 사람처럼 보는 것이 진정한 평등사상의 실현이라고 여겼지만 유가 입장에서는 인류의 윤리강상을 파괴하는 짓이었다. - <묵자가 필요한 시간> 135쪽

묵자의 사상은 기원전 그때도 필요했지만 21세기 지금도 필요합니다. 기원전 그때야 그 뜻을 제대로 펼칠 수 있는 여건을 실기했을지 모르지만 지금, 평등을 전제로 하고 있는 민주사회에서는 얼마든지 꽃피울 수 있는 사상이라 생각됩니다.

농민전쟁의 불씨가 된 묵자

묵자의 사상은 결코 고리타분한 고전 속 주의주장이 아닙니다. 부닥뜨리고 있는 현실에서 부정에 항거하는 촛불정신이 겸애일 수도 있습니다. 부조리를 발본색원하고자 하는 투쟁, 용기 있는 내부고발이 겸애일 수도 있습니다.  

"묵가 사상은 어쩌면 사람들 가슴속에 최초로 부자의 재물을 빼앗아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고, 남는 데를 덜어서 부족한 데를 보충하는 혁명의 불씨를 뿌렸는지도 모른다. 묵자의 겸애와 대동 사상은 마음과 마음으로 이어져 이후 여러 차례 농민 기의와 농민전쟁의 사상적 무기가 되었다." -<묵자가 필요한 시간> 493쪽

폭정을 엎고자 하던 역사적 민란들, 반성이 너무나 차별적이었던 조선에서 녹두장군이 횃불을 당긴 동학혁명의 불씨가 시작된 발화점 또한 어쩌면 묵자가 주창한 겸애와 같은 가치에서 비롯됐을 거라 생각됩니다.

묵자는, 묵자의 사상은 기원전 그때도 분명 필요한 가치였습니다. 하지만 그때보다 더 필요한 때는 바로 지금 이 시간, 인간다운 삶을 오롯이 추구해야 할 지금 당장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시대적 블랙리스트였던 묵자, 권력이 2000년간이나 구금한 선구적 사상가였던 묵자를 읽는 것이야말로 지금 이 시대에 필요한 사상을 찾아나가는 사상적 독서가 될 거라 기대됩니다.
덧붙이는 글 <묵자가 필요한 시간> / 지은이 천웨이런 / 옮긴이 윤무학 / 펴낸곳 흐름출판 / 2018년 1월 10일 / 값 25,000원

묵자가 필요한 시간 - 2000년간 권력이 금지한 선구적 사상가

천웨이런 지음, 윤무학 옮김,
378, 2018


#묵자가 필요한 시간 #윤무학 #흐름출판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남자들이 좋아하는 거 다 좋아하는 두 딸 아빠. 살아 가는 날 만큼 살아 갈 날이 줄어든다는 것 정도는 자각하고 있는 사람.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浮雲自體本無實 生死去來亦如是'란 말을 자주 중얼 거림.

AD

AD

AD

인기기사

  1. 1 캐나다서 본 한국어 마스크 봉투... "수치스럽다"
  2. 2 황석영 작가 "윤 대통령, 차라리 빨리 하야해야"
  3. 3 샌디에이고에 부는 'K-아줌마' 돌풍, 심상치 않네
  4. 4 경찰서에서 고3 아들에 보낸 우편물의 전말
  5. 5 '25만원 지원' 효과? 이 나라에서 이미 효과가 검증되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