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에 석 달 갇혔다 죽은 아이, 살릴 수 있었는데

[우리가 미안해 ③] 추운겨울 세상을 등진 원영이에게

등록 2018.01.22 10:32수정 2018.01.22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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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국가는 '부모됨의 자격'에 대해 진지하게 물어야 한다 ⓒ 픽사베이


아이는 3개월간 화장실에서 갇혀있었다. 추운 겨울이었다. 밥은 하루에 한 끼 먹었다. 대변을 가리지 못한다고 친부와 계모는 아이에게 찬물을 끼얹었고 몸에 락스를 뿌렸다. 아이는 학대를 견디지 못하고 사망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정 결과 아이는 만성 영양실조에 시달려 기아에 가까웠다. 키는 112.5cm에 몸무게는 15.3kg으로 각각 하위 10%, 4%에 해당했다고 밝혔다. '평택 원영이'사건이다(관련 기사 : "원영아 사랑해"…아동학대 반대하는 광화문사거리 추모촛불).

아이는 흥이 많은 아이였던 것 같다. 유치원 율동 시간에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모습을 담은 영상이 뉴스를 통해 나왔다. 저렇게 신나게 놀고, 흥이 많고, 친구들과 춤추는 것이 즐거운 것이 보통 저 또래 아이의 일상이다. 눈에는 웃음이 가득했고, 또래 여느 남자아이처럼 귀여웠다.

아이의 짧은 생에도 저렇게 행복한 시간이 있었다. 그러나 죽기 전 석 달 동안이나 아이는 추운 겨울 화장실에 갇혀 하루 한 끼만 겨우 먹으면서 학대를 받았다. 살아있다면 아이는 초등학교 2학년이다. 놀이터에서 축구도 하고, 눈싸움도 하고 즐겁게 살았을 어린이다.

원영이가 죽고 사회 일각에서는 외쳤다. 많은 전문가와 기관들이 "예방과 신고"를 외쳤고 "교육"과 "법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역의 어머니들과 많은 부모들이 슬픔을 같이 했다. 그러나 달라진 것은 없다.

아동학대 사건은 증가하고 있다. 2016년의 경우 3만여 건에 이른다. 하루에 80건 이상 발생한다는 얘기다. 끔찍하지 않은가. 2010년 9천여 건에 발생했는데, 이에 비하면 6년 사이에 3배 이상 늘었다(자료 : 보건복지부 산하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아동학대의 가해자는 80%가 부모다.

부모 됨의 자격이 없는 사람을 우리 사회는 제대로 격리하고 있을까? 우리 사회는 사회적으로 공론화된 사건이 아닌 경우 법원의 친권제한이나 상실의 선고 자체가 매우 드물다. 보건복지부 2011년 아동학대 실태조사에 따르면 아동복지법에 의한 아동 보호 전문기관의 친권 상실·제한 요청이 받아들여진 경우는 2001년부터 2010년까지 단 1건에 불과했다.


같은 기간 재판 과정 등에서 친권이 제한받은 경우도 9건에 불과했다.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서울가정법원에서 내려진 친권상실선고도 5년간 총 19건에 그쳤다. 그렇다면 아이들은 학대하는 부모에게 다시 돌아갔다는 얘기인가. 그러면 매일 매일 폭력의 공포에서 살고 있다는 말이 아닐까.

부모와 자식 간의 인연을 '천륜'이라고 말한다. 언론 보도 가운데는 원영이 생부와 계모를 향해 '천륜을 어긴' 죄인이라고 말했다. 하늘이 맺어준 부모와 자식의 인연. 그래서 어쩌면 국가와 사회가 개입을 꺼리던 그 인연에 대해 진지하게 법적인 조치를 고민해야 한다. 상습학대에 국가가 가족관계에 개입하는 사회 분위기가 있었다면, 이 많은 아이들 가운데 누군가는 살아있지 않을까. 원영이는 보육기관의 보호를 받으며 즐거운 겨울방학을 보내고 있지 않을까.

2001년부터 16년 동안 모두 178명의 아동이 학대로 목숨을 잃었다. 수사기관이 접수한 사망사례 가운데 아동보호전문기관에 보고하지 않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실제 학대 사망자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 아이들의 입장에서 학대하는 부모는 '천륜'이 아니다. 국가가 나서서 제대로 된 부모 노릇을 해줘야 한다. 상습학대 부모는 친권 박탈이 답이다.
덧붙이는 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그러나 우리 사회가 관심을 가졌다면 막을 수 있었던 비극에 대해 기록 남기고자 합니다.
#원영이사건 #아동학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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