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삶에 치명적인 과학농법, 왜 할까

[서평] 후쿠오카 마사노부의 <자연농법>

등록 2018.01.25 17:07수정 2018.01.25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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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가상화폐라고 하는 비트코인(bit coin)을 두고 논란이 많다. 블럭체인(block chain)이라는 또 하나의 과학기술로 만들어진 가상화폐에서 희망을 찾겠다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는데 나는 절망을 느낀다. 좋은 의도로 만들어진 과학기술도 그 쓰임새와 목적이 정의롭지 못하면 인간의 삶이 황폐화 되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과학기술의 폐해는 농업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 물질의 화학농약과 비료를 만들어 생태계를 파괴하고, 다른 생명체간의 종(種)유전자를 변형시킨 GMO(Genetically Modified Organism) 작물을 만들어냈다. 또한, 일회용 씨앗으로 불리는 F1(first generation) 종자는 본래의 형질을 변형시켜 다음 세대에는 기형씨앗이 되도록 하여 쓸 수 없게 만들었다.


대부분의 F1종자와 상품성을 강조한 육종된 씨앗들의 가격은 어림잡을 수 없을 정도로 천차만별이다. 대기업과 소수의 유통기업이 장악한 농산물 시장경제에 편입된 농민은 씨앗에 대한 선택권과 자신이 생산한 농산물에 대한 가격결정권이 없다.

본래의 유전자가 변형된 씨앗과 화학비료와 농약을 사용하면 많은 수확을 할 수 있다는 과학농법(관행농법)이 강조하는 것은 경제성과 효율성이다. 그러나 그것은 일시적으로 그럴수 있거나 그렇게 보여지는 허상이다. 내가 농업현장에서 느낀 과학농법은 파종에서 수확까지 계속해서 투입해야 하는 농자재의 비용이 높다.

많은 석유에너지와 비용을 써야하는 과학농법으로 다수확을 만드는 농사는 시장상황에 따라서는 가격폭락의 부메랑이 되기도 한다. 높은 생산비용은 농민의 수익감소로 이어지며, 이러한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국가보조금은 상황에 따라서는 뜨거운 감자와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

과학농법의 발전은 4차 산업혁명으로 불리는 스마트팜(smart farm)과 같은 자본집약적 농업에 집중되어 농민을 기계를 조작하는 기능인으로 전락시킨다. 또한, 가족단위의 소농(小農)은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의 농업경쟁에서 밀려나며 그나마 남아있는 농사공동체의 해체를 불러온다. 그 폐해는 국가와 사회구성원 전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은 불온한 상상일까?
인간의 지혜는 모두 가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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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농법 ⓒ 정신세계사

농업대학을 졸업하고 세관에서 식물검사와 농업시험장에서 일했던 후쿠오카 마사노부는 인간의 지혜는 모두 가짜라는 깨달음으로 과학농법을 비판하며, 그 대안으로 50년간 자연농법을 실천했다. 무위자연(無爲自然)의 농사가 가능하다는 것을 실증하며, 그 경험을 담은 책 <자연농법>을 출간했다.


마사노부는 2차대전이 끝난 뒤에 농업시험장을 그만두고 귀농을 하여 자연농법을 실행한다. 흔히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無)농법으로 알려진 자연농법은 흙을 뒤집거나 비료와 농약을 쓰지 않는다. 또한, 작물과 공생하는 곤충과 잡초도 의미가 있는 생명 활동으로 보고 해치지 않는다.

그는 자연농법의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인간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사람들이 이해하게 될 때까지는 과학만능의 신앙은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과학농법은 인간의 욕망 확대와 함께 자연으로부터 멀어져가는, 말하자면 원심적 확산의 농법이고 멈출 줄 모르는 농법이기 때문에, 마침내 자멸하게 되는 농법인 것이다. 아무리 기술을 더한다고 하더라도, 오히려 복잡다난해질 뿐이다. 점점 더 많은 비용과 노력을 필요로 하는 것이 바로 이 과학농법이다. 이에 반하여 자연농법은 단순한, 힘이나 수고를 최소화하는 농법이다." - 본문 중에서


비료와 농약을 포함한 각종 농자재를 투입하는 농사는 유통시장과 소비자가 선호하는 상품을 만들기 위한 것이다. 크고 때깔 좋은 농산물은 자연에 인위적인 행동을 가하지 않으면 어렵다는 것을 농사와 건강한 먹거리의 가치에서 멀어져 있는 소비자는 모른다. 이러한 인식이 바뀌지 않는다면 대부분의 농민은 어쩔수 없이 과학농법에 의존한 고비용 저효율의 (수익이 안 되는)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없다.

내가 농사짓는 인근의 농장들을 봐도 밭에는 작물을 제외한 어떤 것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한다. 나의 농장에서 농약과 비료를 사용하지 않아도 농사가 된다는 것을 보면서도, 오랫동안 익숙해진 것을 바꾸는 것은 모험이라고 생각한다. 그 심정을 헤아리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지속가능한 세상을 위해

과학농법의 폐해는 농민의 건강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며, 자연환경을 파괴하는 것은 물론 인간의 삶에도 치명적인 요소들이 많다. 건강한 생산방식이 담보되지 않는 농사의 먹거리는 독(毒)이 될 수 있음을 누구나 알고 있으면서도 평소에는 잊고 살아간다. 살충제 계란과 같은 먹거리 문제가 발생했을 때도, 근본적인 원인과 대책은 알고 있으면서도 시간이 지나면 또 다시 무감각해진다.

"부자연스러운 식량을 먹으면서 성장한 인간은 부자연스러운 신체와 병든 몸을 갖게 되므로, 결국 부자연스러운 사고방식을 가진 반자연적 인공 인간으로 변모해간다. 농업의 변모는 단순히 농업 그 자체만의 변화에 그치지 않는다는 무서운 사실에 주의해야 한다." - 본문 중에서


세상에는 많은 다양한 농법이 있으며 자연농법도 그것들의 하나에 속한다. 어떤 방식의 농법으로 농사를 짓든, 그것은 농부의 선택이고 자유다. 나와 다른 농법으로 농사를 짓는다고 해서 틀렸다가 아니라 다른 것이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막막한 농업의 현실 앞에 타협하고 좌절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안타깝지만, 농부의 잘못이 아니다.

인류가 1만년이 넘도록 지속가능한 농사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자연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불과 100년 남짓한 시간에 산업화와 첨단 과학기술의 발전은 자연과 공생하는 농업의 모습을 바꿔놓았고, 인간에게서 농사공동체의 유전자를 지워버렸다.

후쿠오카 마사노부의 농사철학을 담은 <자연농법>은 지금의 과학기술로 생겨난 것들은 인간과 자연에게 재앙이 될 수 있음을 경고한다. 그리고 자연과 농업을 보존하고 유지했을 때, 인간의 삶도 지속가능하다는 진리를 말하고 있다.

자연농법 - 농사는 자연이 짓고, 농부는 그 시중을 든다

후쿠오카 마사노부 지음, 최성현 옮김,
정신세계사, 2017


#자연농법 #마사노부 #농사 #관행농법 #G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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