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 성추행에 자퇴 결심했지만
서 검사 덕분에 마음 바꿨습니다

검사 성추행 폭로 이후 '미투운동' 봇물... 대학원생·기자도 SNS에 밝혀

등록 2018.01.31 15:29수정 2018.02.01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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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현 창원지검 통영지청 검사의 성추행 폭로 이후 지지와 응원이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서 검사의 용기에 힘을 얻고 '나도 이렇게 당했다'는 '미투(#metoo)' 바람이 곳곳에서 퍼지고 있다.

30일 서울의 한 대학 대학원 석사과정에 재학 중인 강아무개씨는 페이스북에 "글을 쓴 지 8시간 만에 자퇴서를 고쳐 쓴다"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이 글은 이렇게 시작된다. 논문 심사를 빌미로 부적절한 성적 언행을 반복하는 지도교수로 인해 꿈을 접고 학업을 포기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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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 재학중 성희롱을 폭로한 강 아무개씨의 페이스북 게시글 일부. ⓒ 화면캡쳐


40대의 나이로 지난 2016년에 늦게 학업을 시작한 강씨는 입학 전 A 교수 연구실에서 헌법 공부를 시작했다. 그런데 공부를 시작하면서 안면이 익은 A 교수의 친구인 B 강사로부터 "단둘이 만나고 싶다. 열렬한 관계가 되자."는 등의 성희롱 발언이 시작됐다. 성희롱 수위는 언어폭력으로 그치지 않았다. 손을 잡고 신체를 접촉하는 등의 부적절한 행동도 이어졌다.

강씨는 이후 2017년 1학기를 마치고 휴학을 했다. 그러나 이제는 A교수로부터 자꾸 학교에 나오라거나 어딘가에서 단둘이 식사할 것을 요구받기 시작했다. 전화를 받지 않으면 문자나 카톡은 물론 이메일을 보내 확인하고 연락을 채근했다는 것이다.

거부 의사를 명확히 밝히자 돌아오는 것은 더 암담한 결과였다. 오히려 '어찌 되었든 지도교수는 나인데 논문 생각하면 (나한테) 이러면 되겠냐'거나 '오빠라고 생각해라'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한 답변만 돌아왔다. 이후 소름이 끼치는 침묵과 주변의 비겁한 대응에 자퇴까지 결심하게 됐다.

강씨는 이어지는 글에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단 조마조마한 슬픔을 견디고 싶지 않고 괴로운 마음만 피하려고 자퇴하려고 했다"며 "그러나, (공개하기로) 마음을 돌리게 된 것은, '언니, 저희는요~?'라며 힘을 북돋아 준 지인들의 응원 때문이었다"라고 했다.

강씨는 올린 글에 성적증명서를 첨부하며 "제가 성적이 행여 최하위권이었다고 해도 그것이 꽃뱀이라든가 하는 모함의 증거로 쓰여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상식도 말씀드리고 싶다"고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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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 재학중 성희롱을 폭로한 강 아무개씨의 페이스북 게시글 일부. ⓒ 화면캡쳐


한편 같은 날에는 경남 김해의 한 신문사에서 일하는 김아무개 기자가 직장생활 중 경험한 성희롱을 SNS에 폭로했다. 김 기자는 한 회사에서 열린 회식 자리서 남성 간부들 옆은 여성들이 앉아 술잔을 채웠던 경험부터 적기 시작했다.

또 '김 기자 입술 색이 섹시하네.', '2차 가서 블루스나 한 번 추게 해줘.', '오늘은 꿀 빨아야지.', '지난해 겨울 애인이랑 강원도 가서 놀았어.', '내가 후원해줄까.' 등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로 일상화된 취재원의 희롱 경험을 올렸다. 김 기자는 "저들의 성 인권 의식이 저 수준인데 일일이 지적해봤자 입만 아프다는 생각에 그냥 넘어가기 수십 번이었다"며 그동안 문제제기 후 생길 일들을 감당할 용기가 없었음을 고백했다.

김 기자는 성폭력상담소 관계자로부터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라는 말에 위로받으며, 동시에 억울함과 분노가 함께 터져 글을 올리게 되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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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신문기자 활동중 성희롱을 폭로한 김기자의 페이스북 게시글 일부. ⓒ 화면캡쳐


지난 29일 서지현 검사의 JTBC 인터뷰 이후 많은 날 여자로 태어난 걸 괴로워했던 여성들이 용기와 위로를 얻었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검사도 이 지경이니 다른 일터의 여성들은 오죽했을까. 그러나 여전히 서지현 검사 옆에 서려고 몇 번이고 글을 썼다가 지우고 망설이는 여성들이 더 많다. 

자신의 죄 고백하고 용서 구하는 것 우선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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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상처를 입은 것은 내 복장을 물은 사람들의 말이었다. 대다수 성희롱, 성추행, 성폭행을 당한 사람들에게 더 큰 상처를 주는 것은 사람들의 말이다. ⓒ unsplash


피해자가 입을 다물고 있다면 개혁은 영영 이뤄질 수 없다. 추행과 희롱이 난무하는 우리 일상에서의 피해는 결코 피해자의 몫이 아니다. 결코, 피해를 당한 본인의 잘못이 아니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사소한 언행이나 신체접촉으로 피해를 준 경험이 있는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하고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 '미투(#metoo)'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먼저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일이다. 

우리 어머니도 서지현이었고, 내 아내도 서지현이었고, 내 동생도 누나도 서지현이었다. 그리고 우리 아버지도 안 검사였고, 나도 안 검사였고, 내 동생과 친구도 안 검사일 수 있다.

다시 한번 부탁드린다. 부디 피해자에 대한 진지한 지지와 응원을 기대한다. 그리고 만인들에게 이것이 얼마나 커다란 범죄인지 꼭 알려야 한다. 성폭력과 성희롱을 경험한 모든 여성이 이제라도 "나도!"라며 용기를 낼 수 있다면, 이 사회는 반드시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용기를 내 성추행 피해 사실을 폭로한 여성에게 위로는 물론 가해자들에게는 응당한 처벌이 내려지길 기대한다. 검찰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 성폭력 근절의 계기가 되길 바라고 또 바란다.
#서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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