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목욕탕은 아버지의 자부심이었다

무쇠솥으로 만든 옛날 목욕탕, 허물지 않고 지키는 이유

등록 2018.02.15 19:00수정 2018.02.15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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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부엌 바닥에 가마니 깔고 빨간 고무통에서만 하던 목욕을 목욕탕에서 한다니 신기하고 놀랄 일이었다. ⓒ pixabay


지금이야 집마다 샤워장이 있고 욕조도 있지만 예전에는 그렇게 살지 못했다. 동네마다 공동목욕탕이 있었고 그것도 없는 시골에서는 빨간 고무통에 더운물을 받아 일 년에 몇 번 행사로 하는 것이 목욕이었다.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 2학년이던 1968년 5월. 새로 이사를 간 우리 집에 목욕탕이 있었다. 그동안 부엌 바닥에 가마니 깔고 빨간 고무통에서만 하던 목욕을 목욕탕에서 한다니 신기하고 놀랄 일이었다.

그 당시 목욕탕은 요즘과는 달랐다. 아래채 맨 끝 작은 방에 무쇠솥보다 큰 솥을 넣고 시멘트로 고정했다. 수도꼭지를 방 안에 두어 솥 안으로 물을 받을 수 있고, 솥 옆으로 구멍을 내 목욕이 끝난 더러운 물은 마개를 열면 방 밖으로 나가게 되어 있다. 이같은 단순한 장치가 전부였지만 동네에서 목욕탕 있는 집은 우리 집밖에 없었다.

물은 데우는 방법도 간단하다. 방 아궁이에 군불을 지피듯 목욕탕이 있는 방 아궁이에 장작을 넣어 불을 피우면 된다. 문제는 불을 너무 많이 넣어 물이 뜨거우면 식기를 기다리거나 찬물을 더 받아 넣어야 하는 것이다.

또 목욕을 하기 위해 솥 안으로 들어갈 때는 솥 바닥이 뜨겁기 때문에 깔판을 넣은 뒤 들어가야 했다. 이 깔판은 솥보다는 작은, 동그랗게 생긴 두꺼운 나무로 만든 것이었다.

솥 안에서 목욕을 마치고 몸을 헹구기 위해서는 목욕 전에 미리 받아둔 깨끗한 더운물로 헹궈야 했는데, 목욕을 하는 동안 식어버려서 미지근한 미온수가 되는 것이 다반사였다. 이 물을 몸에 뿌리면 훅하고 한기가 들기 때문에 나는 반사적으로 피했지만, 어머니는 기어코 나를 잡아 물을 뒤집어씌우셨다.


이렇게 조금은 불편한 목욕탕이지만 추석이나 설날이 되기 전에는 동네 사람들의 예약이 만만치 않게 들어왔다. 물을 데우기 위한 장작도 들고 와야 하고 목욕물도 직접 받아야 하는 수고가 따랐지만 시설 이용료가 없고 물값도 없는, 장작만 들고 오면 해결되는 목욕탕이기에 그 인기는 대단했다.

물값이 없던 건 공공상수도가 아닌 우리 집 우물을 메워 만든 간이 상수도였기에 가능했다. 목욕이 끝나고 사용한 나무 발판만 건조 시켜주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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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대중목욕탕(자료사진) ⓒ 김종성


우리 집 목욕탕의 인기는 동네에 멋진 대중탕이 생기면서 가라앉았다. 물도 우리 집처럼 지하수가 아닌 상수도였고, 찬물 더운물이 따로 나오는 수도꼭지가 있기 때문이었다. 대중탕에서 어쩌다 만나는 친구들과의 장난도 쏠쏠하게 재미있었다. 목욕을 마친 후 아버지가 사 주시는 요구르트도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었고.

하지만 그렇게 좋은 대중탕도 추석이나 설날에는 가지 않고 번거롭더라도 집 목욕탕을 이용했다. 명절에 대중탕을 가지 않는 이유는 사람이 너무 많고 수질도 깨끗하지 않아서였다.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으니까. 목욕을 하러간 것이 아니라 땟국물을 뒤집어쓰러 가는 꼴이었다. 조금 불편하기는 해도 마당 안에 목욕탕이 있는데 그 고생을 할 이유는 없다면서 아버지는 극구 명절 때만은 집 목욕탕을 이용하셨다.   

영화를 누리던 우리 집 목욕탕은 동네 대중탕에 자리를 내어주고 창고로 사용되었지만, 아버지는 그 목욕탕을 허물지 않았다. 어머니의 지청구를 한 귀로 듣고 흘리시며 끝까지 지켰다. 아버지가 목욕탕을 허물지 않으신 이유는 추억 때문이라고 하셨다. 사용 만료가 된 추억도 소중하다면서...
#목욕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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