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이여, 잔치는 끝났다

한국에 번지는 '미투' 운동... '아관파천'을 기억하라

등록 2018.02.12 16:47수정 2018.02.12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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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회사에 처음 입사했을 때 같은 부서에 근무하면서 친구처럼 지냈던 동년배들이 있었다. 같은 문화와 경험을 공유한 또래이니 의사소통이 쉽고 의기투합이 잘 되어 함께 만들어낸 추억거리가 매우 많았다.


그 중 한 친구는 재치있는 언어구사력으로 주변을 놀랍고도 즐겁게 해주었다. 그 친구가 원조격으로 사용하고 그 후에는 우리들 사이에서 은어처럼 사용되던 단어가 있었는데, 바로 '아관파천(俄館播遷)'이었다.

중고등학교 때 역사 시간에 졸지만 않았어도 무슨 내용인지 누구든 알만한 단어이다. 구한말 열강이 조선에서 이권다툼으로 각축을 벌일 때 고종이 경복궁을 버리고 러시아 대사관으로 거처를 옮긴 사건을 말한다.

그런데 이런 역사적 배경과는 무관하게 우리는 그 단어를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황당한 상황을 지칭할 때 사용했다. 예를 들면, 어떤 상사가 아무 사전 설명도 없이 주말에 회사에 나와 일을 하라고 전근대적인 갑질을 하면 우리는 "그것 참 아관파천이네" 이런 식으로 그 단어를 사용했다.

상식과 예의에 벗어난 행동에도, 이치에 맞지 않는 독불장군식 주장에도 아관파천을 붙여 우리들의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따지고 보면 한 나라의 국왕이 외세를 낀 신하들의 세력다툼으로 500년을 이어온 왕궁을 버린 사건만큼이나 황당한 일이 없을 터이다. 그 의미로 봐도 그렇게 얼토당토 않은 억지적용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하여튼 80년대 중.후반은 이 사자성어 하나로 설명되는 일이 너무도 많았던 그야말로 '아관파천'의 시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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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모든 '구조적 권력형 성폭력 행위'에 진정한 종언을 고할 때가 왔다 ⓒ pexel


최근 서지현 검사의 폭로로 시작된 성폭력 고발 사태가 한국 사회를 뒤흔들고 있다. 성폭력 범죄를 근절시켜야 할 검찰 조직 내에서 이루어진 주장이라 그 강도가 무엇보다도 세게 느껴졌다.


뒤이어 '서른, 잔치는 끝났다'의 최영미 시인도 문단 내의 뿌리 깊은 성폭력 문화를 낱낱이 공개하기에 이르렀다. 문단에서 내로라할만한 이름들이 줄줄이 거명되면서 그 파장은 겉잡을 수 없이 치닫고 있다.

작년말 헐리우드에서 시작된 '미투(Me Too)운동'은  유명 영화배우, 감독들의 과거 권력형 성폭력 행위를 여과없이 드러내고 그 범위를 스포츠계, 문화.예술계, 정계 할 것 없이 확대하더니 이제는 전세계적인 현상으로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캐나다에서는 온타리오주 보수당(PC Party) 당수인 패트릭 브라운(Patrick Brown)이 10여년 전 그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는 여성 2명의 주장이 제기된 지 하루 만에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면서도 당수직에서 물러났다. 현재 집권당인 자유당(Liberal Party)의 연이은 실정으로 올해 6월 예정되어 있는 주수상 선거에서 당선 가능성이 매우 높이 점쳐지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수치스럽고 창피한 일이라 숨겨도 시원찮을 판에, 책에다 공개적으로 무용담인 듯 늘어 놓고도 한 나라의 최고 권좌에 오르려 선거판에 뛰어들고 그 여세를 몰아 당대표직까지 맡는 후안무치와는 극명히 대조가 되는 사례이다.

스스로 부끄러운 일이지만 '남성우월주의' 하면 어디 내놔도 손색이 없을 '남성중심 사회'가 대한민국이다. 남아선호사상, 가부장제, 장남, 씨받이, 족보, 고부갈등, 가문 등등...한국 문화에 마초이즘(Machoism)이 켜켜이 쌓여있음을 보여주는 실증적이고 역사의 때가 서린 단어들이다.

지금은 한국도 많은 것들이 변해 가고 있어서 앞으로 이런 단어들이 그 명맥 유지가 쉽지 않겠지만 여전히 상당한 무게를 가지고 한국 문화를 떠받들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 중에서도 특히 남자의 성적 자유분방함이 마치 남자의 다른 사회적 능력의 척도라도 되는 냥 치부하는 문화가 문제의 근원이 되어 왔다. 이런 문화적 대물림은 남자의 '아랫도리에 대해서는 관대해야 한다'는 집단적 착시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언제나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가해자보다는 피해자에게 초점을 맞추어 "뭔가 행실이 조신하지 못했겠지"류의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보기 일쑤였다. 거기에 언론들도 방조 내지는 적극적인 동조자 노릇을 하며 그들만의 문화를 공고히 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워왔다.

그러니 피해자들이 문제 해결을 위해 공중 앞에 나서는 것은 말 그대로 '두번, 세번, 아니 여러 번 죽을 각오'를 해야 할 만큼 어려운 구조였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살아있었던 '친고죄'도 그 막강한 구조의 단단한 기둥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이제는 모든 '구조적 권력형 성폭력 행위'에 진정한 종언을 고할 때가 왔다. 지금까지는 몇몇 선구자적인 여성들의 일부 폭로에 그쳤지만 장담컨대, 앞으로 "나도 당했어요"라는 목소리가 한국 사회에서 셀 수 없을 만큼 많아질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많은 파장과 마타도어를 무릅쓰고 용기 내어 박차고 일어서 이 거대한 물결의 물꼬를 튼 그녀들의 행동은 갈채를 받아 마땅하다. 담대한 시작은 언제나 절반의 성공을 담보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녀들이 지목한 그 '괴물'들, 검찰 고위 간부, 이름 높은 노시인, 일하라고 부여받은 권력을 자신의 욕구 해소에 남용하고도 그 권력이 자기를 보호해 줄 것이라는 착각 속에서 살아온 그러나 앞으로 하나둘씩 거명될 이름들.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이런 '괴물 문화'에 속에서 살면서 그 문화에 동조하거나 최소한 맞서 싸우지 못하고 그 열매를 찌꺼기일지언정 일부 맛보며 살아온 나를 포함한 모든 보통의 한국 남자들이여 들어라!

"그대들 생각과 행동, 몹시도 '아관파천'스러웠던 것 아는가? 하지만 이제 잔치는 끝났다"

랫도리에
대했던 과거는 모두
헤쳐서
하에 드러날 것이기에.
#캐나다 #미투(ME TOO) #성폭력 고발 #이민 #아관파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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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캐나다에 살고 있는 김태완입니다. 이곳에 이민와서 산지 11년이 되었습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기간동안 이민자로서 경험하고 느낀 바를 그때그때 메모하고 기록으로 남기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민자는 새로운 나라에서뿐만이 아니라 자기 모국에서도 이민자입니다. 그래서 풀어놓고 싶은 얘기가 누구보다 더 많은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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