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성근 "그새 아버지 키가 더 커졌네, 하하"

[현장] 고 문익환 목사 부부 동상 처음 세워지던 날

등록 2018.02.25 19:42수정 2018.02.25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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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봄학교 졸업생인 이누리씨(앞줄 한복 입은 이)와 손정휘(뒷줄 오른쪽)씨가 문성근씨와 함께 문익환 목사와 박용길 장로의 동상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 이주빈


초봄조차 아직 오지 않은 남도에 '늦봄'이 찾아왔다. "뜨거운 마음 바람에 실어" 보내듯, "뜨거운 마음 노래에 실어" 보내듯.

24일, 전남 강진군 도암면에 있는 늦봄학교 교정에 '늦봄·봄길공원'이 문을 열었다. 늦봄·봄길공원은 탄생 100돌을 맞이한 고 늦봄 문익환(1918~1994) 목사와 고 봄길 박용길(1919~2011) 장로 부부의 정신을 기리고자 두 사람의 호를 따 만든 공원이다.

공원이 만들어진 늦봄학교는 늦봄 문익환 목사의 생명과 이웃들을 향한 지극한 사랑과 섬김, 겨레의 평화를 위한 순수한 열정과 감성 등을 사표로 삼아 지난 2006년 세워진 중·고통합형 대안학교다.

늦봄·봄길공원에는 한복 차림을 한 늦봄과 봄길 부부의 동상이 봄볕처럼 따뜻하게 서 있다. 그리고 문 목사의 통일시 <꿈을 비는 마음>과 <뜨거운 마음>, 문 목사의 휘호 '민주는 민중의 부활이요, 통일은 민족의 부활이다'와 '남누리 북누리 한누리 되도록' 등도 함께 자리하고 있다. 

늦봄학교 학생들이 늦봄봄길 동상 제막식을 준비하며 활짝 웃고 있다. ⓒ 이주빈


늦봄봄길 동상 제막식에 참석한 이들이 <그대 오르는 언덕>을 함께 부르고 있다. ⓒ 이주빈


공원 개원식과 동상·시비 제막식은 늦봄학교 졸업식 이후인 정오 무렵에 시작됐다. 이 자리엔 늦봄학교 졸업생과 학부모, 교사 그리고 늦봄과 봄길의 아들인 배우 문성근씨, 동상을 만든 홍이현숙 작가, 땅끝 미황사의 주지인 금강 스님 등 약 100명이 참석했다.

홍이현숙 작가는 "(동상을 만드는) 지난 1년은 문익환 목사님 내외분과 만나는 시간이었다"라며 "동상을 만들기 위해 박용길 장로님 옷을 받아오는데 무척이나 행복했다"라고 추억했다. 그는 "작품을 만드는 동안 내 마음 속에 있는 두 분이 나오길 기원했다"며 "찾아오시는 분들이 두 분과 함께 사진도 찍어주고 하면 더 좋은 동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가족을 대표해 인사한 문성근씨는 "목사님의 시비는 세워진 게 있었는데 두 분 동상이 세워진 건 이번이 처음"이라며 "동상이 높이 세워져 경외하는 마음을 강요하는 것 같았으면 싫었을 텐데 옆에 같이 서서 만질 수 있고, 함께 사진 찍을 수 있게 친근해서 좋다"라고 인사했다.

늦봄 문익환 목사와 봄길 박용길 장로의 아들인 배우 문성근씨가 24일 전남 강진군 늦봄학교에 세워진 두 사람의 동상 사이에 서보며 "아버지 키가 더 크신 것 같다"라고 말하며 웃고 있다. ⓒ 이주빈


문씨는 아버지 문익환 목사의 옆에 서 보며 "엇, 그새 아버지 키가 더 커진 것 같다"라고 웃으며 "동상을 만들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리고, 이 소식을 듣고 두 분도 덩실덩실 춤을 추실 것"이라고 기뻐했다.

승가대학 학생회장 시절에 문익환 목사님을 시국강연 연사로 모신 인연이 있는 미황사 주지 금강 스님은 "동상을 보니 목사님 내외분을 다시 만나는 것 같다"라면서 "통일염원을 실천하는 모습에 감동하고 감사하며 살았는데 이제 또 이렇게 가까이 살게 돼서 너무 좋다"고 미소 지었다.

이번에 늦봄학교를 졸업한 이누리(20)씨는 "목사님과 장로님이 너무 잘 생기셨다"라며 "앞으로 어떤 일을 하게 되더라도 늦봄인으로서 늦봄 선생님의 가르침을 잊지 않고 나의 삶을 이어갈 것"이라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번에 졸업한 손정휘(20)씨도 "동상이 목사님의 생을 잘 표현한 것 같다"라면서 "6년 동안 정들었던 늦봄학교 교정에 늦봄·봄길공원이 생겨 기쁘다"라고 말했다.

24일, 전남 강진군 도암면에 있는 늦봄학교 교정에 ‘늦봄?봄길공원’이 문을 열었다. ⓒ 이주빈


늦봄?봄길공원엔 문익환 목사와 박용길 장로의 동상과 문 목사의 시비와 휘호비도 만날 수 있다. ⓒ 이주빈


한편 고 늦봄 문익환 목사는 1918년 항일 독립운동의 주요 거점이었던 만주 북간도 화룡현 명동촌에서 태어났다. 고인은 1976년 이른바 '명동 3·1민주구국선언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이후 6차례의 시국사건에 얽혀 11년 2개월 동안 수감되는 고초를 겪었다. 하지만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민주주의 민족통일을 향한 열정을 포기하지 않았다. 늦봄 정신을 사표로 삼는 늦봄학교는 2018년 2월 현재까지 100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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