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명을 낳으면 한 명을 죽일 수 있다

<편의점 인간> 무라타 사야카의 소설 <살인 출산>을 읽고

등록 2018.03.05 08:12수정 2018.03.05 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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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출산> 책표지 ⓒ 현대문학

<살인출산>이라니. 굳이 표지의 불편한 삽화에 주목하지 않더라도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다. 어떻게 생명의 탄생과 죽음을, 아니 '죽임'을 조합할 수 있단 말인가. 

이야기는 아주 능청스럽게 진행된다. 지금으로부터 백년쯤 뒤를 상정하고 있지만, 일상은 지금과 다르지 않다. 한여름엔 매미가 울어대고, 직장인은 점심을 사먹거나 집에서 싸온 도시락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여자들은 화장실에서 자외선 차단제나 파운데이션을 덧바른다.


다른 것은 하나, 살인의 의미다. 배경은 이렇다. 연애, 결혼, 섹스, 출산으로 이어지는 기존의 시스템이 붕괴된 후 우발적 출산이 없어지며, 인구는 급격하게 줄어든다. 연애나 결혼과는 별개로 생명을 만드는 "좀 더 현대에 맞는, 합리적인"(p18) 살인출산 시스템이 도입된다. 열 명을 낳으면 한 명을 죽일 수 있다.

"연애와 섹스의 결과물인 임신이 사라진 세상에서 우리에게는 어떤 강렬한 '생명의 계기'가 필요했고, '살의'야말로 그 충동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p19)


반대의 목소리도 컸지만, 한 번 받아들여지니 그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 되어버린다. 사람들은 열 명을 출산하는 동안 "그렇게 한결같이 누군가를 죽이고 싶은 마음을 꾸준히 유지할 수"(p15) 있는 사람을 우러러보기에 이른다. 이들은 '출산자'로 불린다. 남자 역시 인공자궁을 삽입해 출산자가 될 수 있다.

이 시스템과 무관하게 살인을 저지른 사람은 산형(産刑)에 처해진다. 죽을 때까지 감옥에서 계속 출산하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비인도적일 수 있을까. 닭에게도 자격없는 죄의식을 느끼곤 하는데, 하물며 산형이라니. 그러나 이 제도에 익숙해진 소설 속 사람들은 기존의 사형제를 야만적으로 느낄 뿐. 생명을 없앤 죗값을 생명의 생산으로 갚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일상은 달라진 것 없이 그대로지만, 하나를 바꿔 모든 것이 바뀐 세상. 다행히, 주인공 이쿠코는 이 제도에 회의적이다. 중학교 때는 "100년 전에는 살인이 전혀 다른 의미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100년 후에는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p20)라고 작문을 했다가 선생님께 꾸중을 듣기도 했다.


엄마의 인공수정으로 태어난 이쿠코와 달리, 언니 다마키는 살인출산 시스템으로 탄생했고, 입양되었다. 이쿠코를 향한 엄마의 편애가 영향을 미쳤을까. 다마키는 스스로를 나쁜 아이라고 생각하고, 어릴 때부터 현실감 없는 살인충동을 느낀다. 벌레나 개구리 등을 죽이는 것으로 살의를 잠재우는 고운 소녀의 모습은 실로 그로테스크하다.

이쿠코는 만류했지만, 다마키는 열일곱의 나이에 출산자가 되길 선택하고 센터로 들어간다. 초등학교 때 벌레를 죽이는 것이 발각돼 '살인귀'라며 전교생에게 규탄 당했던 다마키는, 살인을 하기 위해 출산을 선택한 것으로 이제 "'아름다운 존재' '훌륭한 존재'"(p50)로 추앙된다. 이쿠코는 섬뜩함을 느낀다.

이들에게 환멸을 느낄 때쯤, 이쿠코보다 명확하게 나의 편을 들어줄 사키코가 등장한다. 사키코는 정의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말이지 세상이 너무 끔찍해졌어요. 살인을 미끼로 아이를 계속 낳게 만들다니, 사형보다 훨씬 지독한 고문이에요. 그런데도 거기에 대해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아요. 인류가 멸망하지 않기 위해, 인간이 끊임없이 자손을 남기기 위해 '출산자'라는 이름을 붙여서 미화시키고, 계속 희생양으로 삼는 거죠. (...) 이 세상은 미쳤어요."(p36)


임무를 마친 출산자에 의해 살해당할 사람으로 지목되면, '망자'가 되는 수순을 밟아야 한다. 그에게 선택은 오직 둘이다. 자살 혹은 타살. 결코 죽음을 피할 수는 없다. 망자는 "모두를 위해 희생한 훌륭한 사람"(p54)으로 불리고, 사람들은 하얀 꽃을 뿌리며 이 죽음을 축복한다.

열 번의 출산을 하면서까지 죽여야 하는 사람이라면, 명백하고 의도적이며 커다란 실수를 저질렀어야 하리라. 그 어떤 과오가 살인을 정당화할 수 있겠느냐마는, 적어도 그래야 한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러나 혹자는 치정에 의해, 누군가의 배 속에 잉태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죽임을 당하기도 한다.

"인류에게는 생명을 끊기지 않고 늘려 가는 것이야말로 윤리"(p51)로 자리잡은 세상. 망자의 장례식에서 조문객은 유족에게 감사의 인사를 한다. "우리 대신 죽어줘서 고맙"(p58)다는 의미를 담아. '고맙습니다', 이 곱디고운 이 다섯 글자가 이토록 소름끼치게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이 세계에 사키코는 환멸을 느끼고, 이쿠코는 회의적인 반면, 초등학생인 사촌 미사키는 다른 세계를 상상하지 못한다. 미사키에게는 이 세계가 정의이고, 진리다. 똑똑한 미사키는, "지금보다 훨씬 '출산자'가 많은 멋진 세상을 만드는"(p59) 연구를 하겠다며 포부를 내보인다.

<살인 출산>은 갓 출간된 소설이다. 더이상의 내용을 말하는 것은 책에 대한 예의가 아닐 것이다.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작가 무라타 사야카가 <편의점 인간> 이후로도 멈춤없이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책을 읽으며, 나는 입맛을 싹 잃었다. 어쩌면 나의 이런 반응 역시, 내가 나의 세계의 익숙함에 얼마나 갇혀 있는지 방증하는 것일 테다. 메뚜기조림을 좋아하는 이쿠코가 다른 곤충요리를 혐오스럽게 바라보듯이. 책은 나에게 당연한 '정의'가 정녕 단 하나의 정의인지, 과연 그것을 확신할 수 있는지 질문을 던진다.

"세계를 맹신한다는 의미에서는 사키코 씨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과거 세계를 굳게 믿느냐, 지금 눈앞에 펼쳐진 세계를 굳게 믿느냐의 차이일 뿐이죠. 세계를 의심하지 않고, 사고가 정지돼 있다는 의미에서는 별로 다를 게 없어 보이는데."(p49)


이쿠코는 "특정한 정의에 세뇌당하는 건 광기"(p49)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시대에 따라 정의란 바뀌어야 하는가. 바뀌는 것을 정의라 말할 수 있는가. 어차피 바뀔 거라면, 그것에 연연할 필요가 있는가. 결코 바꾸지 않겠다고 고수하는 것이 정의인가.

내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하나뿐이다. 정의가 무엇이든지간에, 우리는 끊임없이 의심하고 질문하며 성찰해야 한다는 것.

종종, 이런저런 사건의 당사자들로부터 '관행'이었다는 변명을 듣게 된다. 우리가 끊임없이 스스로를 성찰한다면, 실체가 불분명한 그 관행이란 존재 때문에, 확실한 실체로서 내 앞에 살아 숨 쉬는 인간을 해하게 되는 일은 줄어들지 않을까.

무라타 사야카의 이야기는 쓰다. 그러나 사람이 두려워지는 것이 아닌, 보듬고 싶어진다. 쌉쌀한 봄나물이 입맛을 돋우듯이. 사뭇 끔찍한 이야기로 놀란 마음이 어느 순간 말랑해지고, 나를 성찰하게 된다. 그 성찰 끝에, 인간이 보인다.

살인출산

무라타 사야카 지음, 이영미 옮김,
현대문학, 2018


#살인출산 #무라타 사야카 #현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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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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