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생기면 결혼해야 하나" 프랑스에선 필요 없는 고민

[비혼주의자로 한국사회에 살아남기 ⑤] 자발적, 비자발적, 반강제적 비혼 이야기

등록 2018.03.12 20:42수정 2018.03.12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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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안 낳을 거면 굳이 결혼할 필요가 있을까?" ⓒ unsplash


주민등록등본 내 이름 밑에
당신 이름 있다고 신기해 들여다보고
밤이면 돌아와 인삼처럼 가지런히
내 옆에 눕는
당신은 누구십니까
나는 당신의 누구여야 합니까

함민복 시 '당신' 중에서

함민복 시인은 평생을 혼자 살다가 쉰 살 즈음 결혼을 하고 이 시를 적었다. 그는 결혼하고 달라진 점이 있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밥 같이 먹고 그런 거죠. 뭐 특별한 게 있겠습니까. 참 김치 찢을 때 상대방 젓가락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거. 4개의 눈과 2개의 심장으로 사는 게 결혼이죠."

시모임에서 함민복 시인을 만났다. '당신'을 낭송하던 언니가 "혼자 살다가 나이가 들어 결혼하면 더 많이 이해하고, 덜 싸울 거 같다"고 해서 내가 맞장구쳤다.

"고독하게 살다가 고독사가 두려울 때 결혼할 걸."

결혼의 삶이든, 비혼의 삶이든 '당신은 누구십니까. 나는 당신의 누구여야 합니까'는 영원한 고민이 아닐 수 없다. 너는 내게 어떤 존재이고, 나는 너에게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는가.

'비혼 동거 커플' 이야기


남자친구와 '비혼 동거 커플'로 살고 있는 친구가 있다. 두 사람은 함께 사는 것에 만족하며 아이를 낳지 않기로 약속했다.

모든 제도는 관계를 나태하게 한다. 그들은 제도로 관계를 구속하지 않기에 서로를 더 깊게 만나고 있다. 독립적인 상태로 함께 살아가는 기쁨을 누리고 있다고 할까.

동거한 지 5년이 지났을 때 친구가 말했다.

"살아 갈수록 그가 더 좋아. 그래서 어떨 때는 결혼을 할까 고민하기도 해. 하지만 안정된 직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형식적인 결혼식을 하긴 싫어."

"아이를 안 낳을 거면 굳이 결혼할 필요가 있을까?"

"그렇긴 해. 하지만 가끔 아이가 있으면 어떨까 상상해보곤 해. 아이를 낳으면 어쩔 수 없이 결혼을 해야겠지?"

만약 이들이 프랑스에 산다면 고민하지 않아도 될 문제이다. 프랑스 사람들은 1999년부터 시행된 '팍스(pacs, 사회연대협약)'를 통해 결혼하지 않고 결혼과 동일한 혜택을 누리고 있다.

팍스(pacs)는 복잡한 결혼식 없이 두 사람이 서류만 제출하면 되고, 한 사람만 신청해도 해체가 가능하다. 또한 세금 공제와 보조금 혜택을 받을 수 있으며, 파트너에게 재산을 상속할 수도 있다.

이 법이 시행되고 프랑스의 출산율은 더 높아졌다. 왜냐면 결혼과 동등한 대우를 받으며 아이를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에서도 결혼하지 않고 차별 없이 아이를 키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2014년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은 동거커플의 권리를 보장하는 '생활동반자법(가칭)'을 발의했다. 이 법은 실질적으로 함께 살며 돌봄의 관계를 나누고 있는 새로운 가족을 인정하고 지원하기 위한 법이다.

또한 작년 대선에서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동반자등록법' 제정을 공약으로 내걸며 "이성 간의 혼인에 의한 '가족 구성' 뿐만 아니라 동거노인, 미혼모, 공동체, 동성커플, 비혼커플 등 다양한 형태의 가족 구성원을 보장하겠다"고 했다.

주위를 봐도 이미 다채로운 가족은 존재한다. 그 누구도 차별하지 않는 법이 제정되어 사회적 안전망을 누릴 날이 곧 오리라.

친구 커플은 여전히 비혼으로 살아간다. 나는 정착하지 않고 유목민처럼 살아가는 친구들의 삶을 동경하고, 그들은 어느 정도(?) 안정을 누리고 있는  나의 삶을 '딱 한 번' 부럽다고 했다.

'비자발적 비혼'과 '반강제적 비혼' 이야기

결혼제도가 마음에 들지 않지만, 필요에 의해 결혼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친구도 있다. 그는 현재 비혼주의자이지만, 상대방이 원하거나 법적인 보호를 받기 위해서는 결혼제도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사실 비혼주의자가 되고 싶어서가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비혼주의자가 된 거나 다름없다"며, "비정규직인데다 집을 얻을 돈도 없는데, 여자친구한테 결혼하자는 말이 안 나온다"고 했다.

결혼의 필수 조건이 된 주택과 일자리 마련의 부담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혼자서도 살기 힘든데 가족을 책임지는 게 부담스러워 어쩔 수 없이 비혼주의자가 되기도 한다.

동성커플이라서 결혼제도 안에 들어갈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영화감독 김조광수 커플은 애초 결혼할 마음이 없었다고 한다. 그들이 '동성결혼 합법화'를 위해 투쟁하게 된 이유는 이러하다.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이 아파서 급하게 수술을 해야 했는데, 가족이 아닌 이유로 보호자 사인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때 서로의 생명을 지켜주기 위해서 결혼을 결심했다고 한다.

이들은 2013년 9월에 결혼식을 올리고, 그해 12월 혼인신고서를 서울 서대문구청에 제출했다. 구청은 동성결혼을 허용하지 않는 현행법을 근거로 접수를 거부했다. 이들은 "성소수자도 평등하고 존엄한 시민권을 갖는다. 다양성을 포용하는 평등한 가족제도를 법제화해야 한다"며 항고 중이다.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비혼주의자가 된 친구와 결혼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동성커플. 이들에게 결혼은 어떤 의미일까. 자신의 의지로 비혼주의자가 되었어도 그게 꼭 자신의 의지라고만 할 수 있을까. 사회가 그들을 비혼주의자로 만들지는 않았을까.

루소는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에서 "인간의 자유는 원하는 것을 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원하지 않는 것을 하지 않는 데 있다"고 했다.

지금까지 나는 원하는 대로 사는 것을 자유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루소의 말처럼 '원하지 않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이 진정한 자유가 아닐까. 그것이 결혼이든, 비혼이든.

[비혼주의자로 한국에서 살아남기]
① '왜 결혼 안 하니' 물으면, 마돈나처럼 대꾸하렴
② "여자를 노예 취급한다" 불편하면서 통쾌한 그 말
③ 동지애만 남은 결혼... 어떻게 사랑이 '안' 변하니?
④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혼자 잘살 겁니다
#비혼 #비혼주의자 #생활동반자법 #동반자등록법 #팍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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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쓸 때는 은둔자가 되고 싶으나, 그저 사람을 좋아하는 여인. 곧 마흔, 불타는 유혹의 글쓰기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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