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 31일 이후 모든 삶이 정지되었다

[기고]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사고 1년, 실종된 3등 기관사 문원준의 어머니의 편지

등록 2018.03.28 20:32수정 2018.03.28 20:48
0
원고료주기
오는 3월 31일로 스텔라데이지호가 남대서양에서 침몰한 지 1년이 됩니다. 대체복무자로 스텔라데이지호에 승선했다 실종된 3등 기관사 문원준씨 어머니가 <오마이뉴스>에 글을 보내와 싣습니다. 스텔라데이지호가족대책위는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1년을 맞아 오는 31일(토) 오후 5시 서울 광화문 416 광장에서 시민문화제를 엽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 바랍니다. [편집자말]
a

스텔라데이지호 실종자 가족이 지난 1월 2일 오후 서울 청와대앞 분수대광장에서 ‘스텔라데이지호 구조 골든타임 의혹 진상규명과 탈출했던 선원들의 빠른 귀환을 간절히 염원하는 스텔라데이지호 10만인 국민서명 전달 기자회견’ 도중 흐르는 눈물을 손수건으로 닦아내고 있다. ⓒ 최윤석



누군가의 움직임을 통해 세상은 변화되어 왔습니다. 그 움직임은 없던 것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있는 것을 새롭게 하기도 했으며, 잘못된 것을 바르게 하기도 했습니다.

2017년 3월 31일 이후, 사랑하는 아들 원준이가 대체복무자로 승선한 스텔라데이지호가 남대서양에서 침몰한 지 1년 동안 저희들은 움직임을 보이고자 피멍이 들고 살이 찢기는 고통 속에 온몸으로 애를 써왔습니다. 정부와 선박회사인 폴라리스 쉬핑은 침묵했지만, 선박에 갑자기 물이 들어오고 기울어지는 순간 온 몸으로 느꼈을 두려움과 공포 속에서 떨고 있었을 사랑하는 아들 원준이의 모습이 한 순간도 제 뇌리에서 떠나지 않고 아른거려 2017년 3월 31일 이후 저희의 모든 삶은 정지되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생각하며 어떻게든 살아보려 험한 물살 속에서 발버둥치며 사투를 벌였을 사랑하는 아들 원준이가 당했을 고통을 생각하면 부모들은 결코 침묵할 수 없었습니다.

자기가 몸담고 있는 정부와 선사가 반드시 구조선을 보내줄거라고 굳게 믿으며 실낱 같은 희망을 버리지 않고 구조선을 애타게 애타게 기다리고 기다렸을 사랑하는 아들 원준이를 생각하면 편히 잠자리에 눕는 것도 입에 음식을 넣는 것도 죄스럽고 힘이 듭니다. 정부를 향해 선사를 향해 사랑하는 아들을 속히 구조해 달라는 저희의 울부짖는 목소리가 그저 시간의 흐름에 묻혀 흔적 없이 사라지지 않도록 피투성이가 된 몸부림을 기억해 주시고 결코 가벼이 여기지 말아 주시길 간곡히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1년 동안 기다림과 절망, 인내와 분노를 반복하여 경험하며 가슴의 시린 구멍을 안고 깊은 탄식과 한숨을 몰아쉬며 하루하루 지탱하고 있습니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갑자기 다가온, 아직 하고 싶은 것도 많고 해야 할 일이 많은 26세 사랑하는 아들 원준이와의 뜻밖의 이별에 가족들의 삶도 한순간에 절망으로 바뀌었습니다.

실종자 가족들의 사고 후의 삶은 살아 있으나 사는 것이 아닙니다. 시간이 흘러도 계절이 바뀔 때면 그립습니다. 명절이 다가올 때면 더욱 사랑하는 아들이 보고 싶습니다. 아침에 눈 뜨면 그리움에 집 안을 서성이고, 저녁엔 그리움에 깊은 잠에 들 수가 없습니다. 현관문을 열고 "엄마"하고 곧 들어올 것만 같아 멍하니 현관문을 수십 번 바라봅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 깊은 한숨을 내쉽니다. 길을 추적추적 힘없이 걷다가도 사랑하는 아들 원준이를 닮은 키가 훤칠한 청년을 보면 나도 모르게 빠르게 그 청년을 뒤따라갑니다.

그립지 않은 시간은 단 한 순간도 없습니다. 단 한 번, 꼭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 얼굴을 보고 싶고 목소리라도 듣고 싶습니다. 아니, 멀리서 보이는 뒷모습이라도 보고 싶습니다. 잡았던 손의 따스한 체온이 이제는 기억 속에서도 잊혀질까 꿈에서라도 보고 싶어 매일 밤 몸부림을 칩니다. 스치는 바람결에 체취라도 흘러올까 기다리고 또 기다립니다. 1년이 지나도 하루가 지난 듯 아픈 서러운 가슴을 안고 있기에 저희는 움직임을 결코 멈출 수가 없습니다.

소중하지 않은 인생이 어디 있습니까. 정당한 노력의 댓가로 살아가려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조금 더 유리한 이익을 얻으려고 타인의 생명을 담보삼은 폴라리스 쉬핑의 회장도 젊은 시절엔 착하고 소박한 꿈을 꾸었을지도 모르지요.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인정하고 시인하는 용기가 필요하다면 저희가 기다리고 있는 이 시간에 그 용기를 내어 주십시오. 수많은 비슷한 인재(人災)에 비겁한 침묵이 선례가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남대서양에 버려진 22명의 소중한 생명 앞에서 스텔라데이지호 선박 침몰 사고를 덮으려 할 것이 아니라, 뜨거운 참회의 눈물과 자신들의 잘못을 철저히 인정하고 다시는 무고한 생명들의 비통한 희생이 발생하지 않도록, 사고 발생 책임자 폴라리스 쉬핑 선사도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할 정부도 대가를 지불하는 정직한 모습을 보여 주십시요. 그릇된 것을 바로 잡고 세우는 선례가 되어주십시오. 바라보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들과 당신의 가족들과 지인들에게 더 이상 부끄럽지 않은 사람다운 모습으로 돌아오시기 바랍니다.

세상을 떠날 때는 너나없이 빈손으로 가는 것이 인생입니다. 빈 마음으로 잘못함을 인정하고, 또 다른 생명들의 목숨을 넘나드는 위험한 항해가 되지 않도록 노후 선박들을 처분하고 모든 것을 새롭게 정비하시기 바랍니다. 가장 기본적인 인간다움을 버리지 말아 주시고 침묵하지 말아 주십시오. 덮지 말아 주십시오.

정부에 부탁드립니다. 실종된 선원들은 대한민국의 선량한 일꾼들이었습니다. 수고로운 땀방울을 가치 있게 여기며 성실하고 묵묵하게 자신의 일을 감당해온 그들이 눈앞의 이익만 추구한 회사의 탐욕에 희생양이 되었습니다. 실종 선박과 선원들을 찾는 일을 멈추지 말아주십시오. 그리하여 사고의 원인을 명확하게 밝히고, 책임자를 엄벌하여 다시는 이러한 인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반드시 블랙박스를 회수하여 거짓없는 진실된 원인을 밝혀 주시길 간곡히 간곡히 부탁을 드립니다.

모든 국민들이 '사람답게' 사는 대한민국이 되려면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안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디를 가도 안전하고, 혹시 재난 발생 시에는 그 처리가 신속하고 원활하도록 제도적인 장치를 강화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a

스텔라데이지호 가족대책위원회 및 시민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지난 1월 2일 오후 서울 청와대앞 분수대광장에서 ‘스텔라데이지호 구조 골든타임 의혹 진상규명과 탈출했던 선원들의 빠른 귀환을 간절히 염원하는 스텔라데이지호 10만인 국민서명 전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8.01.02 ⓒ 최윤석


누군가는 이제 그만하면 됐다고도 말합니다. 하지만 멀고먼 대서양 바다에 자식을 버려둔 채로 실종자 가족들은 결코 포기할 수 없습니다. 저희가 흘리는 눈물이 마중물이 되어 더 안전하고 상식이 통하는 나라다운 나라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정부 정책을 책임 맡은 자와 기업들의 부정과 부패와 올바르지 못한 결정으로 나라에 더 큰 재앙이 되지 않도록 맡은 자의 책임을 성실히 행해 주십시오.

하늘에 부끄럽지 않도록 나의 사랑하는 자식이 당한 일이라 생각하며 최선을 다해 힘써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저희의 간절한 바람과 움직임이 꽃이 피고 열매 맺는 날까지 기다림에 지쳐서 너무 힘에 겨워 가슴에 더 큰 한으로 사무치지 않도록 신속하게 블랙박스를 찾는 데 최선을 다해 주십시오. 평범한 일상의 삶을 성실히 살아가는 국민들이 이 정부를 신뢰하도록 힘써 주십시오.

지금까지 실종자 가족의 아픔에 마음을 같이 해 주시고 힘써 주신 정부 관계자분들과 힘이 되어 주신 모든 분들께 마음을 담아 감사드립니다.
                             
사랑하는 아들을 기다리며 깊은 슬픔과 탄식의 눈물로 부탁을 드리며,
3등 기관사 문원준 엄마 올립니다.

a

스텔라데이지호 시민문화제가 3월 31일 오후 5시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다 ⓒ 스텔라데이지호가족대책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모든 시민은 기자다!" 오마이뉴스 편집부의 뉴스 아이디

네이버 채널에서 오마이뉴스를 구독하세요

AD

AD

인기기사

  1. 1 "젊은 기자가 미국 허락받았냐 질문하다니"
  2. 2 '고애신' 김태리보다 '쿠도 히나' 김민정이 더 멋져 보이는 이유
  3. 3 "북한 대통령이 미안하다고 보낸 선물이에요" 눈물 흘린 95세 할머니
  4. 4 사라지지 않는 가족단톡창 1, 그렇게 시아버지가 된다
  5. 5 며느리 복장 검사하는 시어머니, 그러지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