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지는 빙하, 도망가는 펭귄... 여기 남극 맞구나

[파르밧의 모험 여행 ②] 남극 1막 1장, '얼음 궁전'을 만나다

등록 2018.03.31 13:57수정 2018.03.31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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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은 가장 특별한 여행지였다. 하얀 빙원, 눈 폭풍 블리자드, 혹독한 환경에 살아가는 펭귄들... 제자리로 돌아온 지금 여운이 오래 남는다. '남극에서 살아보기' 수첩 한켠에 적어놓은 버킷리스트 한 줄을 지웠다. 2015년 - 2017년 남극 장보고기지 하계 안전요원으로 생활한 파르밧 김진홍 대원의 남극탐사, 극지의 일상으로 초대한다. - 기자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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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 바다 얼음을 깨며 항해하고 있는 아라온호. 기지로 대원들을 수홍하기 위해 헬기가 다가가고 있다 (사진제공 극지연구소) ⓒ 김진홍


출항 전 아라온호는 부산하다. 호주를 떠나야 하기에 출국 심사를 받아야 한다. 이민국 직원들이 배로 방문했다. 여권과 출국카드를 제출한다. 다음 목적지란에 남극(Antarctica)을 적었다. '부우웅, 부우웅' 출항 경적이 울린다. 마지막 홋줄을 걷어낸다. 호바트 연안을 완전히 벗어날 때 까지 해안경비정의 호위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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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해안경비정 아라온호를 호위하며 연안을 벗어나고 있다 ⓒ 김진홍


모든 대원들이 식당에 모였다. 항해 안전교육시간, 비상시 바다에서 체온을 보호하기 위한 생존 슈트를 착용해보고 선상생활 안내를 받았다. 외해로 갈수록 파도가 높아진다. 족히 4~5m는 되는 것 같다. 대원들은 10여 일 항해여정에 뱃멀미 걱정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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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해 안전교육 해상사고 대비 체온을 보호하는 생존 슈트를 착용하고 있다 ⓒ 김진홍


남극으로 가는 크루즈

바닷냄새가 강하다. 지난 기억을 소환해 낸다. 해군 해난구조대에서 구조함을 탔다. 태풍이 오기 전 배들은 안전한 항구로 피항을 간다. 선박들의 안전을 위해 구조함은 마지막까지 버텨야 했다. 침대에 누워도 이리저리 몸이 흔들린다. 제 위치에 온전한 것이 없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 울렁거려야 할 가슴이 파도와 함께 요동친다. 바다에선 물을 아껴야 했다. 신선한 먹거리가 그립게 된다. 입항해 땅을 밟으면 평지인데도 몸이 기울어 걷고 있다.

여름 주문진 바다는 오징어 철이다. 밤이 되면 만선의 어선들이 바다에 불을 밝힌다. 기관고장으로 표류하던 배의 구조신호를 받았다. 안전하게 항구에 예인했다. 선장님은 고맙다며 큰 대야 가득 오징어를 주신다. 가슴 뿌듯한 때였다. 지금도 TV프로그램에 조업 현장을 볼 때면 가슴 뭉클함이 있다. 극한 환경에서의 노고를 알기 때문이다.
   
아라온호는 군함보다 부대시설이 좋다. 남극으로 가는 멋진 크루즈다. 침실은 1층 메인 데크부터 4층까지 다양하다. 엘리베이터가 있어 무거운 짐을 오르내릴 수 있다. 안전요원들에게 배정된 4인1실은 샤워시설과 책상, 소파, TV가 있다. 체력 단련실, 세탁실, 도서실, 사우나 시설도 완비되어 있다. 깨끗한 승조원 식당은 전문 요리사가 있다. 한주 식단표가 공지된다.


크루즈 선상 파티(?)에 준하는 뷔페 만찬이다. 삼겹살, 소고기 스테이크, 꽃게탕 등 다양하다. 배에서 술은 엄격히 제한이 된다. 1주일에 맥주 1캔이 허용된다. 항해 중에는 다닐 수 있는 곳이 제한적이다. 트레드밀을 걸으며 신나는 음악을 듣는다. 헷지(창문) 너머로 파도가 높게 친다. 마치 언덕을 오르내리는 듯하다. 뱃멀미에 피로할수록 영양섭취와 자기관리가 중요하다. 민감한 대원들은 식음을 전폐하고 온종일 침대서 기도를 드린다. 너울이 크다 보니 파도를 타고 내려갈 때 배의 함수가 물에 잠길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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헷지(창문) 밖으로 보이는 바다 외해로 나갈 수록 파도가 높다 ⓒ 김진홍


"어, 배가 다른 곳으로 가고 있네!"
   
스크류가 뿜어내는 흰 물살을 보고 갈매기가 몰려든다. 돌아갈 길이 멀 텐데 하염없이 따라온다. 바다가 아니라 산이 보인다. 뉴질랜드로 남섬으로 가고 있다.

남극해에는 항상 강풍이 분다. 남위 40~50도 부근에서 형성되는 저기압은 태풍을 일으킨다. 위성으로 날씨 데이터를 분석해 안전한 길을 찾는다.

처음 탐험을 떠난 사람들은 어땠을까? 바다를 주름잡던 바이킹족도 망망대해를 간다는 것은 무모했을 것이다. 실크로드 사막을 건너는 상인들은 별자리에 의지해 걸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상상했다. 북반구에 위치한 대륙과 균형을 이루는 것, '남극대륙'이다. 가보지 않은 곳에 대한 동경으로 모험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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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어트 섬 뉴질랜드 최남단에 위치하는 섬으로 피항차 이동중이다 ⓒ 김진홍


파도가 높을 때 해야 할 일. 선반 위의 물건을 치운다. 서랍과 의자를 흔들림 없이 묶는다. 움직이는 모든 것은 테이프로 고정을 한다. 다국적 대원들이 함께한다. 러시아, 일본, 뉴질랜드 연구원과 헬기 파일럿, 쇄빙 전문가들이 있다. 선내 병원 의사선생님이 대원들의 건강을 살핀다.
   
스튜어트는 뉴질랜드 최남단 섬이다. 남섬과 포보 해협을 사이에 두고 23km 떨어져 있다. 원주민 마오리족은 '하늘이 붉게 불타는 장소' 라키우라(Rakiura)라고 부른다. 1770년 제임스쿡이 발견했지만 반도의 일부로 여겼다. 1809년 윌리엄 스튜어트 대위가 섬을 정확히 측량하여 그의 이름으로 명명되었다. 연안을 따라 천천히 항해한다.

해협을 통과한 배는 속도를 높인다. 동쪽으로 이동하면서 시차선이 바뀌었다. 1시간 늘어났다. 못 보던 새가 보인다. 진한 갈색의 날개를 넓게 펴고 비행한다. 앨버트로스다. 하늘을 비행하는 모습이 여유와 위엄이 있다. 지구를 한 바퀴 돌 수 있을 만큼 오랜 비행이 가능한 새로 멸종 위기종이다.

'얼음궁전'을 만나다
   
항해 8일째, 남위 65도. 작은 변화들이 나타난다. 낮이 길어졌다. 붉은 노을을 보는 것도 마지막 일지 모른다. 날씨도 추워져 밖으로 나가려면 우모 외투를 입어야 한다. 에어컨 대신 온풍기를 순환시킨다. 겨울이다.

파란 수평선 하얀 점이 점점 크게 다가온다. 유빙(움직이는 빙하)이다. 억만년을 버티다 대륙에서 떨어져 나와 외로운 섬이 되었다. 해수면상에서 보는 것은 일부분이고, 대부분 수면 아래에 숨어 있다. 완전히 녹기까지 수년간 살아남는다. 표류하는 동안 따뜻한 해수와 기온에 의해 다양한 형태와 색깔을 띠게 된다. 얼음이 많은 유빙지대에선 파도가 잔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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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위65도 새벽3시 유빙지대 빙산의 모습 백야때문에 낮이 길어진다 ⓒ 김진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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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 빙산 유빙들이 많은 곳에서는 바다가 고요하다 ⓒ 김진홍


'우두두둑... 쩌억' '쿵쾅 쿵쾅'

머리를 부딪고 싸우는 화난 산양처럼, 배는 속력을 내 얼음을 타고 올라간다. 침실에서 느끼는 충격이 대단하다. 커다란 빙산은 견고한 성과 같다. 펭귄들이 굉음 소리에 놀라 뒤뚱거리며 도망을 간다. 햇빛을 즐기던 물개는 질겁을 한다. 차가운 바닷속으로 숨어버린다.

'놀라게 해서 미안해, 펭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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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 펭귄 유빙(바다에 떠 다니는 얼음)위에서 햇빛을 즐기고 있다. 배의 얼음 깨는 소리에 놀라 도망가고 만다 ⓒ 김진홍


일정보다 늦게 도착했다. 15일 동안 거친 항해 뒤의 남극이다. 장보고 기지를 보니 마치 신대륙을 발견한 기분이다. 설산이 병풍처럼 두르고 있다. 오른편으로는 남극의 3대 화산중의 하나인 멜버른 산이 우뚝 서 있다. 하얀색과 파란색 물감으로 도화지 위에 그린 풍경이다.

배가 얼음의 한가운데 있다. 1m는 넘을 두께다. '찌지직' 소리를 내며 얼음이 갈라진다. 커다란 크랙(빙하가 갈라져 틈이 생김)이 생겼다. 빙하 속내가 드러났다. 배가 얼음을 올라타고 전진과 후진을 반복한다. 최대한 기지와 가깝게 접안을 시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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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온호 쇄빙선의 강한 힘으로 얼음바다가 갈라졌다 ⓒ 김진홍


탐사장비, 유류, 월동대 식량까지 어마어마하다. 선미 크레인으로 물건을 내린다. 기지에서 트럭이 지원되었다. 바다 얼음이 워낙 두꺼워 그 위로 차량이 오간다.

장보고기지 인근엔 독일과 이탈리아 기지가 있다. 이탈리아 기지는 7km 떨어져 있다. 30년이 넘은 오랜 역사를 가진 기지다. 서로가 우호적인 협력을 하고 있다.

살아가면서 특별한 기회들이 온다.  남극의 눈 위에 처음 발자국을 남긴다. 몸이 흔들리지 않고 마음이 평온하다. 전생의 인연이었을 익숙함이 느껴지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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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노바베이 장보고 기지 가까이 접안하기 위해 얼음을 깨며 전진하고 있는 아라온호 ⓒ 김진홍


덧붙이는 글 2015년~2017년 남극 장보고기지 하계 안전요원으로 생활한 파르밧(김진홍 대원)의 탐사경험, 남극의 일상을 소개합니다.
#남극 #남극여행 #남극펭귄 #남극빙하 #남극크루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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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 트레킹 / 남극 장보고기지 안전요원. 해난구조대(SSU)대위 전역 / 산. 바다. 여행을 통해 삶의 가치를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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