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늘 팔아가며 농민 운동했던 변호사라니

[서평] <송기호의 밥과 법>을 읽고

등록 2018.04.06 16:17수정 2018.04.06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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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지방선거와 함께 시행되는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범여권과 범야권의 의석 수 차이가 몇 석 되지 않기 때문에 어느때보다 재보궐 선거의 결과에 귀추가 주목되는 상황입니다. 보통 재보궐 선거가 민심의 풍향계 역할을 했다면, 이번 재보궐 선거는 의석 수에 따라 문재인 정부의 국정 운영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재보궐 선거가 확정적인 곳은 서울 노원병(국민의당 안철수 대통령 출마를 위한 사직), 서울 송파을(국민의당 최명길 의원직 상실), 부산 해운대을(자유한국당 배덕광 의원직 사직), 광주 서구갑(국민의당 송기석 의원직 상실), 전남 무안영암신안(국민의당 박준영 의원직 상실), 충남 천안갑(자유한국당 박찬우 의원직 상실), 울산 북구(민중당 윤종오 의원직 상실)의 7곳입니다.


이중 가장 뜨겁게 관심을 받고 있는 곳은 서울 송파을입니다. 서울 송파을은 석촌동, 삼전동, 가락1동, 문정2동, 잠실본동, 잠실2동, 잠실3동, 잠실7동을 포함하는 곳으로, 바른미래당의 박종진 후보가 표밭을 다지고 있던 곳입니다. 여기에 MBC에서 활동했던 배현진 앵커가 언론탄압(?)에 맞서겠다며 자유한국당 당협위원장을 맡아 출마할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에 맞서는 민주당 후보는 두 명입니다. 최재성 전 사무총장과 송파을 지역위원장인 송기호 변호사가 경선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송기호 변호사는 아직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인물입니다. 다른 당의 후보보다 이름값은 크지 않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가 선거를 앞두고 자신을 소개하는 책을 발간했습니다.

<송기호의 밥과 법>은 더불어민주당 송파을 지역위원장으로서 활동중인 저자가 자신의 인터뷰와 칼럼을 묶어서 출판한 책입니다. 평생 먹을 거리 문제를 두고 농민과 연대해 왔던 삶과 변호사로서 정의를 위해 싸워온 삶을 '밥과 법'이라는 주제로 묶었습니다. 밥과 법은 깊은 관련이 있기에 자주 묶어서 사용하는 단어지만, 농민회 사업부장으로 활동했던 이력과 민변의 국제통상위원장을 했다는 독특한 이력을 알고 보면 책 제목이 나름 의미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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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기호의밥과법 ⓒ 송기호


보통의 변호사라면 농민 운동과는 거리가 멉니다. 사법시험 준비에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운동에는 참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나 농민들과 함께 연대해야 하는 농민 운동에는 참여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송기호 변호사는 YMCA 농촌부 간사와 영암군 농민회 경제사업부장으로 활동했습니다.

어려서부터 수재 소리를 들어 광주에 유학을 다닌 끝에 서울대에 합격했음에도 다시 농촌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농촌을 위해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매우 강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아버지의 반대 때문에 고향인 고흥을 떠나 땅끝 해남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농민에게 부담이 되는 수세(물값) 거부운동을 벌이며 농촌 운동을 벌였습니다.


저자는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에도, 농업법을 자신의 전문 분야로 삼아서 농민과의 연대를 이어 나갔습니다. 그러다가 잊지 못할 귀중한 경험을 합니다. 바로 농민들과 함께 마늘을 팔면서 소송을 준비한 것입니다.

2002년 당시 농민들은 중국산 마늘에 대한 긴급 수입제한조치 소송을 저에게 부탁했습니다. 이것이 어떤 것이냐면, 중국산 마늘이 너무 많이 수입되어 생기는 피해를 줄이게끔 국가가 긴급 수입제한 관세를 매겨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저는 월급쟁이 변호사였어요. 제가 소속된 법률회사에서는 농민들한테서 수임료를 받아야 하는데, 농민들 돈이 부족했어요. 그래서 제가 그분들과 함께 소송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마늘을 팔아 가면서 소송을 진행하였습니다. -34P

저자는 마늘 소송을 끝내고, 나름의 느낀 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농민들과 자유롭게 일을 하기 위해 호주로 유학을 떠나 농업과 국제통상을 공부했습니다. 개방과 FTA의 시대에 통상을 공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는 이후 WTO 쌀 협상, 미국산 쇠고기 검역 협상, 자유무역 협상에 대해 의견을 냈습니다. 자유무역협정의 번역을 바로잡은 일로 서울지방변호사회의 표창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외에도 개성공단 폐지 반대, 남북 동시 사형제 폐지, 한중 FTA 협정문의 서명 전 공개, 검역주권 수호 등을 외치며 국제 통상 변호사로서의 목소리를 높여왔습니다. 일관되게 진보적인 안건에 관심을 가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저자는 95년부터 송파에서 살아왔고, 민주와 법치의 모델 국가를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보입니다. 송파구에서 골목 민주주의의 씨앗을 뿌리고 싶다고도 합니다. 그래서 현재는 송파에서 재보궐 선거 경선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정치 신인으로서 첫 도전을 하는 셈입니다.

책을 읽고 느낀 점은 저자가 굉장히 선명한 삶을 살아왔다는 것이었습니다. 남북 동시 사형제 폐지, 검역 주권을 말하고 젊은 시절을 농민과 함께했던 그의 모습은 확실히 진보적입니다. 농민 운동을 한 사람이면서 동시에 국제 통상에도 해밝고, 자신의 의견을 일관되게 유지해왔다는 점은 신뢰가 가는 부분입니다.

다만 그가 살아온 삶의 이력이 송파구 주민들에게도 깊은 감동을 줄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입니다. 그는 송파구에서 오래 살아오긴 했지만, 정치적 스탠스는 민주당 기준으로도 많이 진보적입니다. 그는 한미 FTA에 매우 비판적이며, 한국에서 진행된 일련의 FTA 가입 과정을 일종의 악순환으로 바라봅니다.

나는 2006년부터 지난 8년간, 한국이 일본을 따돌린다고 자랑하면서 한미 FTA를 맺고, 이것이 일본을 움직여 일본이 TPP에 참가하고, 다시 한국이 여기에 자극받아 TPP에 가입하려고 기를 쓰고, 그러다 보니 중국의 양해를 구하고자 한중 FTA를 하는 악순환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이 악순환이 한국의 허약한 정당 정치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실감했다. -147P


송파을은 강남, 서초보다는 덜 보수적인 지역이지만, 서울 전체를 중심으로 보면 그래도 역시 보수적인 지역입니다. 농민과 함께 한 국제 통상 전문가라는 타이틀이 정계에서 빛을 발하려면, 서울에서도 보수적인 세가 강한 잠실과 문정에서 그의 말에 울림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과연 먹거리와 함께 살아온 그의 도전은 반향을 일으킬 수 있을까요? 경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송기호의 밥과 법 - 더불어 사는 삶, 정의로운 사회를 향한 희망과 실천

송기호 지음,
한티재, 2018


#송기호 #송파 #잠실 #송파을 #재보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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