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어쩌라고' 사회운동가는 왜 외면 당할까

[서평] 생각을 벼리는 글쓰기, 세상을 바꾸는 글쓰기 <공부가 되는 글쓰기>

등록 2018.04.18 21:37수정 2018.04.18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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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졸업하고선 줄곧 '전쟁없는세상'에서 활동했는데, 딱 두 번 다른 세계를 경험했다. 병역거부로 감옥생활을 한 일과 2009년부터 2015년까지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한 경험이 그것이다.

다른 세계를 살아보는 건 내가 속해 있던 세계 내부에서는 보지 못한 것을 볼 수 있고, 생각하지 못하던 것을 생각할 수 있는 거리와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좋은 경험이다. 특히 내게는 출판사 편집자 경험이 사회운동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데 큰 도움이 되었는데, 저자의 생각과 주장을 독자들에게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를 고민하고 훈련해야 하는 특성 덕분이었다.


이 경험은 자연스럽게 사회운동 활동가들의 생각과 주장은 과연 세상 사람들에게 잘 전달되고 있을까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활동가로 살면서는 느끼지 못한 것들을 한발짝 떨어져서 살펴보니 활동가들의 주장과 언어가 세상 사람들에게 과연 잘 전달되지 않고 있다고 여겨졌다.

그들의 주장이나 생각은 세상에서 외면 당하기 일쑤고 때로는 현실을 모른다거나 순진하다는 식으로 치부되기도 했다. 활동가들의 열정과 헌신을 생각한다면, 세상을 바꾸는 사회운동의 중요한 역할을 생각한다면, 이는 무척 안타까운 일이었다.

사회운동이 더 많은 설득력을 가지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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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로 살면서는 느끼지 못한 것들을 한발짝 떨어져서 살펴보니 활동가들의 주장과 언어가 세상 사람들에게 과연 잘 전달되지 않고 있다고 여겨졌다. ⓒ unsplash


무엇이 문제일까? 여러 가지 이유에 대해 생각해봤다. 애초부터 대중적이지 않은 주제를 다루기 때문일까? 예를 들면 병역거부처럼 애초에 대중적인 인기가 없는 주제라면? 그럴듯한 가정이지만 문제의 핵심은 사회운동 이슈에 대한 사회적 호불호가 아니다.

세상 모든 주장과 이야기는 독자의 숫자가 다를 뿐 모두 특정한 독자를 대상으로 상정한다. 인기가 좀 더 있을 수도 혹은 인기가 없을 수도 있지만 결국 세상 모든 사람이 대상이 아니라 특정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고 특정한 독자들에게 적절한 방식으로 말걸기를 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인기의 척도가 중요한 게 아니라 활동가들의 주장과 생각이 사회운동의 특정한 독자들에게 잘 전달되고 있는지가 중요한 지점이다.


또 하나 생각해볼 수 있는 건 기술적인 문제다.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기술이 필요한데, 특히나 요즘 같은 시대에는 이미지나 영상을 다루는 기술이 주장과 정보를 전달하는 데 크게 영향을 끼친다. 그리고 사회운동은 대부분 이미지나 영상을 다루는 데 다른 영역에 비해 취약한 편이다. 돈이 없기 때문에 외부에 의뢰할 수 없고, 또 활동가들 개개인이 이 부분의 역량을 키울 수 있는 토대도 미약하기 때문이다.

사회운동 활동가들이 자신의 주장과 생각을 전달하는 데 기술적인 면에서 취약하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이것을 핵심적인 문제라고 취급한다면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혹은 해야 할 일은 돈을 많이 만드는 것밖에 없다. 이는 제대로 된 문제 해결이 아니며, 기술 외적인 부분에서도 분명 우리는 할 수 있고 해야할 일이 많다.

다른 세계, 특히 출판사 편집자로 일한 경험에서 나는 다른 이유에 주목했다. 활동가들의 주장과 생각이 사람들에게 잘 전달되지 않는 이유는 이슈 자체가 대중적이지 않아서도 아니고, 이미지나 영상 같은 것을 다룰 기술 부족도 핵심적인 이유는 아니다. 가장 중요하게는 활동가들 스스로, 사회운동 스스로가 전달하고자 하는 생각과 주장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무슨 소리냐고, 사회 운동만큼 자신의 주장을 명확하게 제시하는 정치세력이 어디있냐고 반문할 사람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자. 대부분의 사회운동은 어떤 하나의 사건에 대해서는 활발하게 활동하며 여러 주장을 쏟아내지만, 사건 너머에 있는 좀 더 근원적인 사회 변화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만 하거나 좋고 아름답지만 별로 일상 생활에 와 닿지 않는 말만 반복적으로 되풀이하는 경향이 있다.

나부터가 그랬다. 병역거부 이야기를 할 때는 대체복무제라는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할 수 있지만, 군사주의라든지 군사안보 이데올로기를 비판할 때면 내 이야기는 듣는 사람들의 삶과는 상관없는 영역에서 아름다운 상상만을 그리고 있기 일쑤였다. 그런 경우 십중팔구 내 이야기를 듣는 사람은 지루한 표정을 짓거나 혹은 '다 좋은데 그래서 어쩌라고' 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을 짓게 될 것이다.

활동가들과 함께 읽고 싶은 책 <공부가 되는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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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가 되는 글쓰기> 표지. 글쓰기는 직접행동과 더불어 사회운동 활동가들에게 가장 유용하고 강력한 도구이자 무기라고 생각한다. ⓒ 이용석


그렇다면 사회운동이, 내 경우엔 평화운동이 무언가를 주장하고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할까?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활동가 동료들과 함께 <공부가 되는 글쓰기>를 읽고 싶다. 

저자 윌리엄 진서는 저널리스트이자 논픽션 작가이고 글쓰기 교사이기도 하다. <공부가 되는 글쓰기>는 윌리엄 진서가 구스타브아돌프 대학교 교수들에게 '범교과적 글쓰기'에 대한 강의를 하며 기획한 책이다. 범교과적 글쓰기란 '글쓰기는 국어 수업이나 문학 수업 때 배우는 것'이라는 편견에 맞서 모든 과목에서 글쓰기가 배움의 주요한 방식이어야 한다는 윌리엄 진서의 교육이론이다.

윌리엄 진서는 구스타브아돌브 대학교의 교수들-역사학과나 인류학과처럼 글쓰기에 익숙한 전공뿐만 아니라 체육학과, 간호학과, 국제경영학과처럼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글쓰기와 크게 연관 없어 보이는 전공 과목의 교수들까지 두루 만나면서 범교과적 글쓰기에 대해 토론 했다. 각 분야에서 학생들이 꼭 읽어야 하는 빼어난 글을 추천받고, 학생들과 글쓰기 수업을 왜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나갈지를 이야기했다.

책은 크게 1부와 2부로 나뉘어 있다. 1부에서는 글쓰기가 어떻게 배움의 도구가 되는지, 왜 작가가 될 생각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글쓰기 교육이 필요한지를 설명하고, 우리에게 필요한 글쓰기 교육은 어떤 것인지 소개하는 내용이다.

2부는 범교과적 글쓰기를 통해 만난 다양한 분야의 표본이 될 만한 훌륭한 글들을 뽑아서 보여준다. 미술, 수학, 물리, 화학, 음악, 인류학 분야의 탁월한 글들은 깊은 사유를 보여주는데 전공자가 아닌 사람이 읽기에도 어렵지 않고 심지어 유머러스하기까지 해 재밌게 읽을 수 있다. 수포자도 수학에 관심 갖게 하고, 미술알못도 전시회에 가고 싶게 만드는 글들이 소개되어 있다.

바쁜 사람들이라면 1부만 읽어도 충분하다. 그렇지만 2부까지 읽기를 추천한다. 마치 모든 메뉴가 맛있는 뷔페 식당처럼, 각 분야의 수준 높은 글들 만나는 일이 무척 재미 있기 때문이다. 저마다 자신에게 맞는 독서가 가능한 책인데, 나는 이 책을 특히 '활동가들이 글을 써야 하는 이유'에 집중해서 읽었다.

활동가들이 글을 써야 하는 까닭

글쓰기는 사고를 진전시키고 스스로 이해를 높이는 배움을 제공한다. 윌리엄 진서는 이를  "명료한 글쓰기는 곧 명료한 사고를 뜻"한다고 표현한다. 연구의 결과나 사유의 결과를 간결하고 명확한 문장으로 표현하는 것은 남들에게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의 명확한 이해를 돕는다는 것이다.

찰스 다윈이나 레이첼 카슨처럼 빛나는 업적을 남긴 과학자들을 예로 들어 그들이 관찰한 바, 그리고 의문을 품고 천착한 바를 글로 쓰면서 생각을 명확하게 정리하고 이론을 적립했다는 것이다. 활동가들에게 적용한다면, 우리의 주장을 간결하고 명확한 문장에 담는 글쓰기는 우리 스스로도 모호하게 느껴지는 생각이나 주장을 명확하게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뜻이다.

우리 스스로도 명확하지 않은 주장으로 다른 사람을 설득할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주장을 명확하게 만드는 일은 무척 중요하고, 글쓰기가 이 과정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은 우리에겐 퍽 다행이다. 글쓰기는 다른 여타의 기술들, 예컨대 외국어를 배우는 것이나 예술적인 표현력을 갖추는 일에 비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글쓰기는 또한 문제 해결의 실패를 보여주고 사유의 과정을 탐구하게 해 준다. 윌리엄 진서는 이에 대해, 글쓰기를 통해 우리가 "무엇을 알고 있으며,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 만약 모르는 부분이 있다면 지식이나 추론 과정 어디에 허점이 있는지 알려 줄 것'이라고 말한다. 알고 있는 것을 확인하는 과정도 중요하지만 모르는 부분을 찾고 허점이 어디에 있는지 발견하는 과정 또한 굉장히 중요하다.

활동가들은 종종 주장의 '올바름'에 큰 의미를 부여한 나머지 설득력 있는 근거가 논리를 갖추는 일을 등한시 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사회운동이 대통령 한 명 바꾸거나 어떤 법안 하나 바꾸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근원적인 사회 변화를 위한 거라면 결국 사람들의 생각과 마음을 얻는 일이 중요하고, 그러기 위해선 사회운동의 주장이 좀 더 설득력을 갖추어야 한다.

설득력을 갖추는 데 허점을 보완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것만큼 중요한 일은 없다. 글쓰기는 미리 실패를 경험함으로써 새로운 대안을 찾게 해주고 그를 바탕으로 사람들에게 좀 더 설득력 있는 근거와 논리를 만드는 기회를 준다.

사회운동의 실험이 자연과학의 실험과 다른 점은 아무리 통제한다고 하더라도 실험의 결과가 사람들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것인데, 이런 면에서 보자면 글쓰기를 통한 선행 실패는 아주 소중한 경험이 된다.

이토록 사회운동에 뼈가 되고 살이 되는 글쓰기지만, 많은 활동가들이 글을 쓰는 것에 부담을 갖는 게 사실이다. 특히 활동가들은 사회적으로 잘나가는 교수 변호사 같은 이들에 비해 겸손함이 몸에 배어 있는 경향이 강한데, 이 겸손함이 때로는 글쓰기에 부담으로 작용한다. 자기가 잘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게 되는 것이다.

물론 잘 알지도 못하는 것을 무식하고 용감하게 말하는 이들이 사회에 끼치는 나쁜 영향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내가 쓴 글을 보는 이들이 누구고,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를 숙고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글쓰기는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을 정리하는 과정이 아니다. 오히려 모르는 게 무엇인지 찾고, 부족한 지식과 논리를 채워가는 과정이 글쓰기라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우리의 부족함은 글쓰기를 망설일 이유가 아니라 더욱 더 적극적으로 글을 쓰면서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우리의 주장을 명확하게 만들어야 할 이유가 된다.

활동가들이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명확하게 할 때 사회 운동은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이고, 더 강한 힘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이용석 시민기자는 전쟁없는 세상 활동가입니다. 이 글은 전쟁없는세상 블로그(http://www.withoutwar.org/?p=14241)와 땡땡책협동조합 블로그(https://brunch.co.kr/@00books/33)에도 실렸습니다.

공부가 되는 글쓰기 - 쓰기는 배움의 도구다

윌리엄 진서 지음, 서대경 옮김,
유유, 2017


#사회운동과 글쓰기 #활동가와 글쓰기
댓글3

모든 전쟁은 인간성에 반하는 범죄라는 신념에 기초해 전쟁과 전쟁을 일으키는 다양한 원인을 제거하기 위해 활동하는 평화주의자?반군사주의자들의 모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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