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광' 자부하는 당신, 혹시 저항시 '야구'를 아시나요?

[모이] 당진 필경사에서 만난 심훈 선생의 민족정신

등록 2018.04.18 16:16수정 2018.04.18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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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훈 선생(1901~1936년)이 지난 1935년 대표적 농촌소설인 '상록수'를 집필했다는 당진의 필경사. '필경'은 선생의 1930년 7월 동명 작품의 이름이기도 한데, 조선인의 마음을 '붓으로 논·밭 일구듯' 표현한다는 의지를 담아 자신의 집을 '필경사'라 이름 붙였다.


18일 오전에 찾은 필경사는 예상외로 한산했다. 근처 학교에서 견학을 나온 한 무리의 아이들만 있을 뿐이었다. 생가 주변을 둘러보고 심훈 기념관에 들어서니 입구에는 의외의 문학작품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오오, 조선의 남아여!'와 '야구'라는 시가 바로 그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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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훈 기념관 입구에는 ‘오오, 조선의 남아여!’와 ‘야구’라는 시가 가장 먼저 관람객을 맞이한다. ⓒ 김학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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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훈 선생이 지난 1935년 대표적 농촌소설인 ‘상록수’를 집필한 필경사는 서해안고속도로의 송악 나들목을 빠져나온 뒤, 3km 정도를 직진하여 필경사라는 안내판에서 좌회전하면 상록수교회를 지나서 바로 만날 수 있다. ⓒ 김학용


우선 '오오, 조선의 남아여!' 는 손기정의 우승을 축하하는 즉흥시로 심훈 선생의 생전 마지막 작품이다. 1936년 8월 9일, 거리에서 호외(중앙일보)를 통해 제11회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우승 소식을 접하고 감격에 겨워 그 자리에서 신문 뒷등에 썼다는 바로 그 즉흥시다. 그런데 '야구'라는 작품은 금시초문이다.

일본강점기 우리나라 작가 가운데 유일하게 야구를 소재로 시를 지은 분이 바로 심훈 선생이었다. 대표적인 저항시인 '그 날이 오면'과 농촌계몽소설 '상록수'의 저자 정도로만 알려진 선생이 '야구'라는 시를 썼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실제로 선생은 운동경기를 민족정신을 일깨우는 원동력으로 바라본 민족주의자였다.

선생은 선교사 필립 질레트에 의해 1905년에 들어와 암울했던 시절을 함께한, 야구를 통해 해방을 갈구하며 울분을 대변할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하여 지어진 시가 바로 '야구'였다. '야구'는 1929년 6월 10일에 발표한 것으로 시집 <그날이 오면>에는 빠져 있으나 1966년 발간된 <심훈 문학 전집 1권>에는 실려있다.

시의 구절구절에는 민족정신을 일깨우는 투지와 패기, 그리고 페어플레이를 강조하는 가르침이 흠뻑 묻어있다. '야구'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당시의 표기를 그대로 살렸음)


식지 않은 피를 보려거던 야구장으로 오라!
마음껏 소리질러보고 싶은 자여, 달려오라!


유월의 태양이 끓어내리는 그라운드에
상록수와 같이 버티고 선 점·점·점... ...


꿈틀거리는 그네들의 혈관 속에는
붉은 피가 쭈ㄱ 쭈ㄱ 뻗어 흐른다.


피처의 꽂아넣는 스트라익은 수척의 폭탄.
HOME-RUN BAT! HOME-RUN BAT
배트로 갈겨내친 히트는 수뢰의 탄환,
시푸른 하늘 바다로 번개 같이 날은다.


VICTORY! VICTORY VICTORY, VICTORY!
고함소리에 무너지는 군중의 성벽,
찔려 죽어도 최후의 일각까지 싸우는
이 나라 젊은이의 의기를 보라!
지고도 웃으며 적의 손을 잡는
이 땅에 자라난 남아의 도량을 보라!


식지 않은 피를 보려거던 야구장으로,
마음껏 소리질러보고 싶은 자여, 달려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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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6년 9월 16일 심훈 선생의 작고 80주년을 맞아 한화이글스의 롯데전 홈경기 시구자로 나선 심천보 씨의 사진과 기념 사인볼. ⓒ 김학용


한편 일제강점기 시절 유일하게 야구를 소재로 시를 썼고 실제로도 야구에 관심이 많았던 선생을 기념하기 위해 프로야구 경기에서 이를 기리기도 했다.

심훈 기념관 측의 설명에 따르면 지난 2016년 9월 선생의 종손인 심천보(78) 씨가 선생의 작고 80주년인 9월 16일에 충청에 연고를 둔 한화이글스의 롯데전 홈경기 시구자로 나섰다. 선생을 대신하여 시구자로 나선 심 씨는 소설 상록수에 남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박동혁의 실제 모델인 심재영(심훈 선생의 조카) 씨의 아들이다.

필경사는 서해안고속도로의 송악 나들목을 빠져나온 뒤, 3km 정도를 직진하여 필경사라는 안내판에서 좌회전하면 상록수 교회를 지나서 바로 만날 수 있다. 이곳에는 선생의 집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으며, 오른쪽에는 심훈 기념관이 들어 서 있다. 관람료는 무료다.

야구장에서 마음껏 소리 질러보고 싶은 자여, 필경사에 가서 야구의 가르침 먼저 배워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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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경’은 심훈 선생의 1930년 7월 동명 작품의 이름이기도 하며, 조선인의 마음을 ‘붓으로 논·밭 일구듯’ 표현한다는 의지를 담아 자신의 집을 ‘필경사’라 이름 붙였다. ⓒ 김학용



#모이 #심훈 #야구 #필경사 #상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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