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본 남자가 물었다 "당신은 기적을 믿나요?

[미련 없이, 그곳! 산티아고 순례길 29] 멜리데~살세다

등록 2018.07.12 10:00수정 2018.07.12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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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리데를 떠나며 ⓒ 차노휘



어제 와인 두 병을 비워선지 처음으로 길 위에서 숙취를 느꼈다. 아, 익숙한 이것? 새삼스럽게 반갑기도 낯설기도 했다.

숙취를 느끼며 5.2km를 걸었다. 그곳에 첫 마을이 있었다. 마을에 들어서야 조그마한 식당이라도 구경할 수가 있다. 그래야 요기를 할 수 있다. 어제 문어 요리를 먹었던 식당 옆에 슈퍼마켓이 있었지만 뭔가를 살 만한 정신이 없었다. 아쉬운 대로 숙취 해소로, 커피와 크루아상을 주문했다.

커피는 카페 콘 레체(Cafe con lechel)를 주로 마시는데 한국식으로 말하면 우유 섞은 커피이다. 설탕가루까지 따로 주니, 아주 달달하게 마실 때도 있다(나는 커피 마니아가 아니다). 여기서는 별다른 해장국이 없다. 몸도 적응한다. 커피와 빵이면 족하다. 오늘 아침에 맛본 크루아상은 입안에서 살살 녹을 정도로 바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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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골목 ⓒ 차노휘


아침 식사를 하고 몇 분 걷자 비가 왔다. 비는 이른 아침에도, 아주 기분 좋게 내렸다. 하지만 이 비는 촉촉한 비가 아니었다. 잽싸게 배낭 덮개를 하고 판초우의를 꺼내 입었다.

갈리시아에 오면 수시로 비가 내린다고 했는데 비다운 비는 아직 오지 않았다(이것도 행복이지 않는가). 걷는 동안 햇볕만 쬔다면 그것도 밋밋할 거였다. 가지고 온 판초우의를 제대로 사용하라고 오늘 비는 예고도 없이 내리는 모양이라고 나는 중얼거렸다.

비가 와서 쉬지 않고 걸었다. 바에 들어가서 발을 쉬고 싶었지만 그 축축함이 싫어 그냥 걷기로 했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한 순례자들이 바를 지나쳐 갔다. 비는 아르수아(Arzua)를 지났을 때에야 이울더니 그곳에서 목적지 5km 남겨둔 지점에서 완전히 그쳤다. 살세다(Salceda) 알베르게에서 빨래를 건조대에 널자 시원한 바람까지 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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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녀님과 밀리터리 판초우의 입은 순례자 ⓒ 차노휘


살세다는 주도로 변으로 길게 뻗은 마을이다. 바와 식료품점이 각각 하나씩 있다. 그리고 식당 뒤편 숲길로 접어들면 순례자였던 기예르모 와트의 기념석이 있다. 그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하루 앞두고(20여 km 남겨두고) 죽었다. 1993년 8월 25일. 당시 65세였다. 덕분에 그는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순례자가 되었다.

그리고 나도 목적지를 하루 앞둔 지점에 있는 알베르게 야외 테이블에서 메모를 하고 있다. 그의 죽음을 생각해서인지 하늘이 어두워지고 서늘한 바람은 강도를 더한다. 갑자기 허기까지 밀려온다. 그것도 아주 심한 허기가. 뭔가를 잔뜩 먹어줘야 할 것처럼 아랫배가 휑하게 뚫린 듯하다. 알베르게에 주방이 있지만 음식을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동네 한 바퀴를 돌면서 적당한 식당을 찾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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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자 지팡이를 팔고 있는 길 위 노점 ⓒ 차노휘


마침 동네 끝자락에 식당이 있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식당 입구에 사진으로 된  메뉴판이 세워져 있다. 나는 그 모든 음식을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메뉴판을 찬찬히 보던 나는 사진을 찍었다. 일단 해물 요리부터 주문하기로 했다.

일상이라는 기적

식당에는 카우보이 모자를 쓴 넉넉한 체격의 오십대 중반 남자가 카운터 안에 서 있었다. 나는 조금 전에 찍은 사진을 확대해 보여주면서 내가 먹고 싶은 것을 가리켰다. 토마토소스에 문어와 밥을 넣어 끓인 해물 죽(Guiso de pulpo)이었다. 그리고는 와인 한 병을 추천해 달라고 했다. 그는 자신이 마시고 있는, 제법 용량이 큰 화이트 와인을 가리켰다. 그 지방에서 만든 로컬 포도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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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풍경 ⓒ 차노휘


내가 카운터에서 식탁으로 가려고 하자 그는 나를 불렀다. 내게 다가오더니 선글라스를 한번 벗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했다. 눈을 마주보며 이야기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아서 답답하다고 했다.

나는 내가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지도 몰랐다. 너무나 익숙했다. 도수 들어가 있어서 내 눈에는 편했다. 하지만 그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기에 선글라스를 벗었다. 그가 활짝 웃으면서 엄지를 세웠다. 하지만 나도 변명해야 했다. 나는 그에게 선글라스를 내밀면서 써보라고 했다. 도수 있는 것을 말해주기 위해서였다. 그는 그의 눈에 내 선글라스를 대보더니 미안하다고 했다. 내가 선글라스를 식탁 위에 올려놓고 얌전히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자 그가 미안했는지 질문을 했다. 마침 식당에 사람이 없었다. 어떤 질문을 해도 괜찮을 시간이었다.   

"당신은 기적을 믿나요?"

그의 질문은 다소 엉뚱했다. 하지만 길 위에서의 질문이라 충분히 수용할 수 있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전설이 밑바탕이 되었고 그것은 종교와 관련이 있다. 각자 출발지는 다르지만, 산티아고 성인의 유해가 안장되었다고 믿어지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가는 순례길이다. 이 길을 완주하고 나면 공식적으로 순례자로 인정이 되고, 순례자에게는 성인이 함께하며 기적이 일어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나는 섣불리 대답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눈빛으로 내가 뭐든지 말해주기를 강요하고 있었다. 종교를 떠나서 생각하기로 했다.

"기적을 믿죠. 특히나 이 길 위에서는. 그런데 저는 가톨릭 신자가 아니에요. 어떤 종교도 없어요. 그럼에도 기적을 믿으니, 당신이 요구한 대답이 아닐 수도 있겠군요."

그리고는 기적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라는 평상시에 생각했던 것을 강조했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내가 이 길을 완주하는 것 자체가 내게는 기적과 같은 거예요."

"맞아요. 기적은 어느 시간대나 어느 곳에서나 일어날 수 있어요. 간절히 뭔가를 원할 때, 그 간절함이 하늘과 통한다고 나도 믿으니깐. 간절함만 가졌다고 되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행동으로 옮겨야 하죠. 그 행동이 이 길 위에서 걷는 거죠, 당신한테는. 걷는 것 자체가 간절함을 드러내는 행동이니 기적이라고 할 수 있겠죠. 

오래전에는 공식 순례자가 되면 여태껏 쌓아온 죄를 사해준다고 하여, 순례자 증서를 사고팔기도 했어요. 정말 멍청한 짓이죠. 지금도 그 멍청한 짓을 하는 사람이 있더군요. 완주증. 그것은 종이조각에 불과한데. 그것을 얻기 위해 가짜 스탬프를 찍기도 하니…. 걸으면서 느끼는 소소함을 절대 느낄 수 없죠, 그런 사람들은."

나는 그에게 리곤데(Ligonde) 알베르게에서 차를 타고 스탬프만 찍고 가는 아버지와 아들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내가 진짜 물어보고 싶은 것은 다른 것이었다. 내 허전함이었다.  

"그런데, 나는 기적의 길 위에 있는데 왜 이렇게 허전한 거죠?"

"아마도 걷는 기적이 하루 밖에 남지 않았다는 아쉬움이 아닐까요? 그 기적을 더 이상 체험할 수 없는…. 하지만 너무 서운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지금 바로 느낄 수 없지만 그 기적이 시간이 지나서도 일어난다는 것을 당신은 집으로 돌아가서 알 수 있을 거예요. 기적이라는 것은 아주 평범한 거예요.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 그 일을 실은 용기가 없어서 못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 용기를 이 길은 당신에게 줄 거니까요."

"그렇다면 이 길을 완주하면 죄를 사하여 준다는, 다시 말해 기적이 일어날 수 있다는 그 완주증. 그 완주증의 효력이 사실이라는 말로 들리는데, 제가 당신 말 뜻을 제대로 이해했나요?"

내 질문에 그는 답변을 하지 않고 웃기만 했다. 그리고 그의 와인잔을 번쩍 들어올렸다. 그때 온통 머리가 하얗게 센, 그의 어머니처럼 보이는 여자가 음식을 들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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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세다(Salceda) 알베르게 창문에서 바라본 풍경. 이곳도 완전히 시골이다. ⓒ 차노휘


나는 그날, '기소 데 뿔뽀' 외에도 짭조름한 소금간을 한 칼칼한 고추를 올리브유에 볶은 요리(Pimientos de padron), 오징어링 위에 레몬을 뿌린 스페인 식 오징어 튀김 오징어링(Calamares fritos), 이름을 정확하게 기억할 수 없는 레몬 얹은 생선 구이와 돼지고기와 채소를 넣고 끓인 우리나라 된장국 맛이 나는 스프(Caldo gallego)를 마지막으로 먹었다. 디저트가 필요하냐고 묻는 남자에게 필요하지 않다고 하자 그는 1.5리터 물 한 병을 내게 안겨주었다. 내일 걸을 때 꼭 필요할 거라고 말하면서.

음식 가격으로 55유로를 지불하고 물 한 병을 들고 알베르게로 돌아가는 길, 부른 배만큼이나 허전함은 뒤로 물러나 있었다. 해가 지지 않았지만 흐린 날씨는 공기를 차분하게 했다. 그리고 내일이었다, 드디어 내가 그곳에 도착할 시간이.
덧붙이는 글 ‘산티아고 순례길 프랑스길’은 2017년 6월 13일에 걷기 시작해서 7월 12일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했습니다. 30일만의 완주였습니다. 그 다음 날, ‘세상의 끝’이라는 피니스테레와 묵시아까지(100km)까지 내처 걸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34일 동안 900km 여정을 마쳤습니다. 몇 십 년 인생이라는 길 위에서, 34일의 여정은 짧을 수 있으나 걸으면서 느꼈던 것들은 제게 인생의 축소판처럼 다가왔습니다. 움츠린 어깨를 펴게 하고 긍정적인 미래를 내다보게 했습니다. 이곳에서 34일 간의 힘들었지만 행복했던 시간들을 도란도란 풀어놓으면서 함께 공유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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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차노휘는 소설가이자 광주대 초빙교수이다. 2016년부터 걷기 시작하여 도보 여행을 하면서 ‘길 위의 인생’을 실천하고 있다. 2009년 광주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얼굴을 보다〉가 당선되었고 저서로는 소설집 《기차가 달린다》와 소설 창작론 《소설창작 방법론과 실제》, 여행 에세이집으로는 《쉼표가 있는 두 도시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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