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평화' 시대에 맞는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이 필요하다

대체복무제 도입, 북한이탈주민 기본권 등 강화해야

등록 2018.05.10 10:36수정 2018.05.10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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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분계선 넘는 남-북 정상 2018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27일 오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손을 잡고 군사분계선(MDL)을 넘어오고 있다. ⓒ 한국공동사진기자단


분단과 전쟁 시대의 인권 정책은 이제 맞지 않아

한국 사회에서 '국가안보'란 만능이다. 사상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데 그만한 이유가 없다. 안보를 해친다는 이유로 개인의 권리는 쉽사리 무시되었다. 민주화 운동가, 노동 운동가들은 체제에 불안을 가져온다고 체포되고 구금되었다. 군대 내 가혹 행위가 드러나도 군 기강을 흩뜨린다고 자살로 조작되거나 아예 은폐되었다. 신념 때문에 총을 잡기 어렵다는 사람은 범죄인 취급받고 형을 살았다. 이렇게 '안보 만능'이 가능했던 것은 바로 지난 65년간 한반도에 전쟁 상황이 지속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달 27일 남북 정상이 '한반도에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올해 안에 종전을 선언하고 평화체제로의 전환을 꾀한다는 판문점 선언은 앞으로 다가올 평화의 시대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과연 전쟁이 끝나면 인권 상황은 대폭 나아질 수 있을까?

남북정상회담 직전에 '3차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NAP) 초안'이 공개됐다. 안타깝게도 정부가 내세우는 '평화의 시대'에 걸맞은 기본계획인지는 의문이다. 그동안 국가안보를 이유로 유보되거나 무시되었던 인권 과제들이 여전히 제자리걸음 하는데 그쳤기 때문이다.

대체복무제 도입, 국가 안보와 국민 여론 핑계로 십 년 째 유보 중

남북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군사적 긴장 해소와 군사적 신뢰 구축을 위해 단계적으로 군축에 나서겠다고 전향적인 입장을 밝혔다. 그동안 한국 정부는 남북 대치를 핑계로 각종 첨단 무기를 도입하면서도 병력 감축에 소극적인 입장을 고수해 왔다. 이러한 맥락에서 병역기피의 수단이 될 수 있다며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위한 대체복무제 도입을 무기한 연기해 왔다.

국제사회는 한국 사법부의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처벌을 중단하라고 여러 차례 의견을 표명해 왔다. 또한, 대체복무제 도입을 지속적으로 권고해 왔다. 최근에만 해도 2015년 11월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가 현재 수감 중인 병역거부자 전원을 즉각 석방하고 사면할 것을 권고한 데 이어 2017년 11월 국가별 정례 인권 검토(Universal Periodic Review, UPR)에서도 역시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고 병역거부자들을 석방·사면할 것, 대체복무제를 도입할 것을 권고했다.


한국 정부는 국가안보와 국민 여론 때문에 대체복무제 도입이 어렵다고 반복해서 변명하고 있다. 그러나 국가안보에 구체적으로 어떠한 영향이 있는지 설득력 있게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유럽 국가 대부분은 1, 2차 세계대전 중에서도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했고 중국과 대치하고 있는 대만도 인정하고 있는 사실을 볼 때 정부의 국가안보 변명은 궁색하기 그지없다. 또한, 인권의 문제는 여론으로 결정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10년째 국민 여론 수렴을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의 과제로 삼고 있다. 이번 3차 기본계획에서도 2014년 여론조사를 인용하며 대체복무제 도입을 '검토'하겠다는 수준의 계획을 내놓는 데 그쳤다. 또다시 대체복무제 도입을 유보한 것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정부가 대체복무제 도입을 포함한 제도개선에 대한 의지와 계획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이행하는 것이다. 특히 병역거부자에 대한 무죄판결이 거듭되고 있고(2018년에만 21건), 700여 명이 헌법재판소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정부가 인권의 관점에서 대체복무제 도입을 명확히 하고 구체적인 추진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면 앞으로 닥칠 큰 혼란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남북의 경계에서 무시되고 있는 북한이탈주민들의 기본권

'평화의 시대'를 반길 사람들 중 하나는 바로 북한이탈주민들일 것이다. 남북 정상 회담 중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파격 발언으로 여러 차례 놀라움을 안겨줬는데 그중 하나가 "실향민과 탈북자, 연평도 주민 등... 우리 오늘 만남에 기대를 갖고 있는 것을 봤다"라는 발언이다. 남북 대치 상황에서 각종 위험에도 불구하고 고향을 떠나 남한에 정착한 북한이탈주민들에게는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3차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에도 북한이탈주민 보호와 정착지원 과제들이 포함되었는데, 남한 사회에 적응하고 제대로 자립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상당수의 북한이탈주민들은 남한에서 빈곤층에 머무르는 사회적 약자이다. 이들이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은 정부의 당연한 의무이다. 문제는 북한이탈주민의 기본권 보호가 이들이 한국 땅을 밟는 그 순간부터 이뤄져야 함에도 그렇지 못하다는 점이다.

북한이탈주민들이 국내 입국 직후 가게 되는 곳은 국정원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구 중앙합동신문센터)이다. 이곳은 '간첩 제조 공장'이라는 별칭으로 더욱 유명하다. 북한이탈주민 수용 및 조사 과정의 인권침해 논란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탈주민인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씨의 여동생이 겪은 일이 대표적이다. 유우성씨가 국정원에 의해 간첩으로 몰렸을 당시 여동생은 중앙합동신문센터에서 감금과 폭행, 회유와 협박을 당해 오빠가 간첩이라는 거짓 자백을 했다.

2015년 유엔자유권위원회는 국가정보원에 의해 북한이탈주민이 조사를 이유로 '최장 6개월까지 구금될 수 있다는 점', '피구금자들이 변호인 조력을 받지 못한다는 점', '독립적 심의 없이 제3국으로 추방될 수 있다는 점' 등에 대하여 문제를 지적하며 시정권고를 내렸다. 다시 말해 최장 6개월까지 감금하고도 조사과정에서 법적 자문도 받을 수 없고, 그 결과 제3국으로 추방되어도 구제될 방법이 없는 지금의 제도로는 북한이탈주민의 기본권을 보호할 수 없다는 뜻이다. 최근 정부가 최장 6개월간 수용할 수 있도록 했던 규정을 90일로 줄이긴 했으나 여전히 국내법이나 국제기준으로 봐서도 말도 안 되는 수준이다.

제3차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을 위한 간담회에서 시민사회단체들은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 내에서의 인권침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며 위의 문제들이 반드시 기본계획 과제로 포함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러한 요구는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국정원은 그동안 국가안보를 위해 음지에서 일하는 조직이라며 어떠한 감시나 견제도 받지 않았다. 특히 지난 정부 기간 국정원이 행한 전횡과 인권침해는 결국 박근혜 탄핵이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정부가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 초안에 적은대로 북한이탈주민들을 지원하고 보호하고자 한다면 북한이탈주민들이 국경을 넘는 그 순간부터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한반도 평화의 시대에 맞는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을 세워야

한반도 격변의 기로에 놓인 지금 남한의 인권정책, 특히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이 가지는 의미는 너무나 크다. 판문점 선언은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와 더불어 "남북 각계각층의 다방면적인 협력과 교류 왕래와 접촉을 활성화하기로" 약속했다. 남북의 교류와 접촉이 확대되면 과거 유럽이 경험한 '헬싱키 프로세스'와 같은 인권 협력도 가능하리라는 기대도 낳고 있다. 헬싱키 프로세스는 1975년부터 1990년대 초 동구권의 붕괴, 냉전의 종식에 이르기까지 정치·안보, 인권, 경제·환경 분야에서 진행된 일련의 합의 과정을 의미한다. 남북이 만일 인권 대화, 사법 대화를 통해 인권과 기본적 자유 보장, 법치주의의 증진, 민주적 제도의 설립 등 논의를 하게 된다면 남측의 법 제도는 앞으로 남북이 함께 만들어 가야 할 '평화의 시대' 한반도 인권 실태를 비추는 거울이 될 것이다.

이번 3차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은 그동안 인권·시민단체들이 요구해 온 제도적 변화를 제대로 담고 있지 못하다. 대체복무제 도입과 국정원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 문제만이 아니다. 실망스러운 부분이 한두 개가 아니다. 청와대는 '평화의 시대'로 나아가자고 외치고 있지만 이번 3차 기본계획을 준비한 각 부처는 여전히 분단과 전쟁의 시대 기준으로 인권정책을 세우고 있었다. 이미 공표 시한이 지났다고 이대로 채택한다면 3차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은 그 누구에게도 의미 없는 한낱 종이 짝에 불과한 취급을 받게 될 것이다. 지금이라도 정부는 시대적 변화와 요구에 맞는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을 내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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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후퇴' 비판 받는 문재인 정부의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

MB정부보다 후퇴한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 실화냐 
덧붙이는 글 이미현 기자는 참여연대 정책팀 선임간사를 맡고 있습니다.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 #NAP #평화 #대체복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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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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