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라면 하나쯤 있는 장학사에 대한 기억

윤근혁 기자의 장학사 기사를 보고... 하루 손님 장학사를 위해 분수를 만든 학교

등록 2018.05.20 17:27수정 2018.05.20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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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내가 쓴 기사가 채택이 되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오마이뉴스 홈페이지에 자주 들어왔다. 그러던 도중 우연히 눈에 들어온 기사가 있었다. 윤근혁 기자가 작성한 교육 기사였다.

<장학사가 뭐기에... 전교생에게 '운동장-복도' 금족령?>
<장학사 의전용 '학생 청소와 일제 수업'... 즉시 없앤다>

두 기사 모두 대전 지역에서 있었던 한 사건을 다룬 기사였다. 두 기사의 내용을 종합하면, 얼마 전 대전 지역의 한 초등학교에서 장학사 방문에 대비하여 학생 점심 놀이시간을 없애고 운동장-복도 금족령을 실시했다고 한다. 그래서 의전이 과하여 문제가 있다는 비판이 있었고, 대전교육청은 이를 시정하기 위해 개선방안을 강구한다는 내용이었다.

그 기사의 장학사라는 단어를 보고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한국 사람이라면 학교를 다니면서 장학사가 온다는 소식을 한 두번쯤 이상은 들어보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장학사에 대한 기억이 있다. 엄밀히 말하면 장학사를 마주하고 느낀 장학사에 대한 기억이라기보다는 장학사가 오는 날에 대한 기억이다. 장학사가 오는 날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는 것은 그날 부조리함을 강하게 느꼈기 때문이다.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는 공립 고등학교였는데, 다른 지역에 비해 건물이 많이 낡은 학교였다. 물리적으로 건설된 지 오랜 시간이 지나기도 했지만,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부실한 점이 있었다. 기술 선생님께서 혀를 차고 한심하게 여기실 정도였으니 상당히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건물과 관련하여 여러 문제를 겪었다. 딱히 겨울이라고 더 좋진 않았지만 여름에 특히 문제가 많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힘든 문제가 습기였다. 비가 많이 오는 날이면 물로 인한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습해서 답답함을 느끼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였고, 당장 물과 싸워야 했다. 입학하기 전에는 조금 학교가 낡아보인다는 생각이나 했지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전혀 알지 못했었다.

비가 오면 급식실 사방에 천장에서 새어나오는 물을 담기 위한 물통이 놓여졌고, 수업시간에는 바닥에서 물이 새어나왔다. 지상 1층 교실임에도 물이 지나치게 많이 새어나오자 수업을 하시던 선생님께서 이렇게 되었으니 수업은 그만하고 차라리 청소를 하자고 해 수업을 중단한 적도 있었다. 수업시간에 수업을 하지 말자고 하셨던 선생님께서 어떤 심정이셨을지 지금은 이해가 간다. 오죽하면 고등학교 졸업 후 비교적 일찍 군대를 간 친구가 군대는 그래도 학교보다 시설이 좋아서 다행이었다고 안도할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날, 학교에서 공사를 시작했다. 학교에 있는 작은 연못에서 공사가 시작되었다. 연못은 예전부터 있었지만, 특별히 관리된다는 느낌은 받지 않았었다. 알고 보니, 학교에 있는 작은 연못에 분수처럼 물을 뿜어내는 기계를 설치하는 공사였다. 별다른 기능은 없고 미관을 위한 것이었다. 학교에 대체 왜 이런 공사를 하나, 갑자기 누구라도 왔나 생각이 들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조만간 장학사가 오는 날이 예정되어 있었다.

연못에 공사를 하는 것을 보고 국어 선생님께서 얼굴에 노기를 띠시고 장학사가 온다고 저런 공사까지 하냐며 날카로운 비판을 하셨다. 과잉 의전이라고 생각하셨던 걸까. 그때도 같은 생각이 들었고, 지금도 같은 생각이 든다. 연못에 공사를 할 돈을 다른 곳에 써서 학생들이 비 피해를 조금이나마 덜 겪게 할 순 없었을까? 그렇게 급한 문제였나?

교실 안에서 학생들이 물 때문에 고통을 겪고 있는데 교실 밖에서 물로 미관을 창출하는 공사를 했다는 것이 부조리하게 느껴졌다. 미관 공사는 나중에 해도 좋으니 교실을 좀 어떻게 할 수는 없었을까. 아니면 꼭 학생들에게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아도 괜찮으니 간접적으로 도움이 되도록 다른 곳에 쓰는 방법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도 국어 선생님도 연못 공사에 회의적이었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장학사는 권력이 있다. 그래서 학교는 장학사만 바라본다. 장학사가 그렇게 강하고 좋은 직업인지 연못 공사가 있고 장학사가 온 날 깨달았다. 장학사가 온 날에, 연못에서 물이 분수처럼 아름답게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장학사가 떠나자 그 기계는 작동되지 않았다. 장학사가 오는 그 하루를 위해 설치된 셈이었다. 나는 그 날 국어 선생님의 노기띤 표정이 아직도 어슴프레 기억이 난다.

이제 곧 있으면 6월 지방선거다. 교육청과 장학사만 보는 학교가 학생을 바라보는 학교보다 좋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의전에 집중하는 속빈 강정보다는 내실있는 학교가 낫다. 교육감을 선거로 선출하는 것에 대해 여러 의견이 있지만, 이왕 지방선거에서 직접 선출하고 있으니 전보다는 교육감들이 유권자들과 유권자들의 자녀인 학생들에게 신경을 좀 썼으면 좋겠다. 학교가 장학사가 아닌 학생을 보고 가르치는 곳이 되길 기원한다.
#장학사 #교육 #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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