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객 때문에 못 살겠다" 신음하는 북촌

대책 마련 쉽지 않아 주민 반발 계속될 듯

등록 2018.05.30 17:49수정 2018.05.30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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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북촌한옥마을 입구에 관광버스 한 대가 멈춰섰다. 중국인 관광객 40여 명이 줄지어 내리더니 깃발을 든 가이드를 따라 한옥마을 안쪽으로 걸어갔다. 관광객들은 삼삼오오 한옥을 배경삼아 기념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조용했던 골목길은 이내 관광객들의 웃음 소리로 가득찼다. 가이드가 연신 조용히 하라는 수신호를 했지만 그때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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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한옥마을 입구는 이른 시간부터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 채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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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로11길은 이른 시간부터 관광객들로 붐볐다 ⓒ 채경민


이윽고 다른 골목길에서 수학 여행을 온 학생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골목이 '웅성웅성' 소리로 가득찼다. '쉿, 조용히 해주세요'라고 적은 팻말을 든 안내원이 관광객 무리 속을 헤집고 다니며 주의를 주고 나서야 소음은 잠잠해졌다.

"이렇게 안내해도 협조를 안 해주시는 분들이 있어요"

6개월 전부터 이곳에서 안내원으로 일하고 있다는 여성이 말했다. 아침 10시부터 근무하는데 최근엔 자기가 도착하기도 전에 이미 관광객들이 와있는 경우가 제법 많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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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원이 관광객들에게 '조용한' 관광을 당부하고 있다 ⓒ 채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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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원이 '조용히 해주세요'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서 있다 ⓒ 채경민


대화를 나누는 내내 쉴 틈이 없어 보였다. 관광객들 일부가 한옥 대문 앞에 바짝 붙어 단체 사진을 찍으려 하자 뛰어가 말리느라 분주했다. 사진을 못 찍게 하자 "너무 심하다"며 불쾌한 감정을 표출하는 관광객도 눈에 띄었다.

뛰어난 풍경으로 가장 인기있는 북촌로 11길. 모든 주택 대문에 한국어, 영어, 중국어, 일본어로 적힌 '조용히 해주세요'라는 종이가 붙어 있었다. 사진 촬영 금지를 뜻하는 종이를 붙인 집도 눈에 띄었다. '관광객들 때문에 고통받고 있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 등 현수막도 곳곳에 내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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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마다 붙어 있는 '소음 금지' 문구 ⓒ 채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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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촬영을 금지하는 안내문까지 붙었다 ⓒ 채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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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 피해를 호소하는 현수막이 곳곳에 걸려 있다 ⓒ 채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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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로 적힌 현수막까지 내걸렸다 ⓒ 채경민


12년 전 이사를 왔다는 70대 주민 이아무개씨는 "관광객이 많아지면서 마을이 완전히 망가졌다. 골목서 담배를 피우는가 하면 먹던 음식까지 버리고 간다"고 말했다. 60대 주민 박 아무개씨는 "관광버스 수십 대가 마을 입구를 차지해 교통, 매연 문제가 심각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 최아무개씨는 "일부 몰지각한 관광객들은 담장 너머로 한옥 안쪽을 바라보는 경우도 있다. 신경이 예민해져 다른 동네로 이사하는 주민들도 생겨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주민 일부는 집단 행동에 들어갔다. '북촌한옥마을 운영회'는 일대 주민 50여 명과 지난 4월부터 거리 집회를 열고 서울시와 종로구에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하지만 주민 피해를 해결할 뾰족한 대책은 없는 상황이다. 서울 종로구는 작년에 실태 조사를 벌인 데 이어 관광객 출입 제한 시간을 정해 여행사 등에 협조를 요청했다. 하지만 법적 강제성이 없는 권고 사항에 그쳐 사실상 유명무실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종로구청 관계자는 "서울시와 다각도로 추가 대책을 논의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북촌한옥마을 #관광 #촬영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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