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면이 다 그게 그거라고 하면 안되갔구나

본격 평양냉면 가이드북 '냉면의 품격'

등록 2018.07.05 10:54수정 2018.07.05 10:55
4
원고료로 응원
근래 들어 가장 핫한 음식이 있다면 두말할 나위 없이 '평양냉면'이 아닐까. 지난 4.27 남북정상회담 당시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제면기를 직접 공수해오면서까지 문재인 대통령에게 평양냉면을 대접해 화제가 됐다. 남북 정상이 판문점 만찬장에 나란히 앉아 냉면을 맛있게 먹는 모습이 전국에 생중계되면서 전국의 냉면집이 때 아닌 특수를 누리기도 했다.

지난 4월 27일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열린 남북정상 만찬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나란히 평양냉면을 먹는 모습 ⓒ 공동취재단


정상회담이 끝난 지 두 달이나 지났지만, 냉면의 계절인 여름이 찾아오면서 냉면의 인기는 당분간 지속될 성싶다. 이런 인기를 등에 업고 '냉면의 품격'이라는 책도 출간됐다. 전작 '한식의 품격'으로 이름을 알린 음식평론가 이용재가 서울·경기 지역 서른 한 곳의 평양냉면집을 탐방하고 쓴 본격 평양냉면 가이드북이다.


냉면 정복을 위해 집어든 이 책 '냉면의 품격'

사실 내게 있어 냉면은 갈빗집에서 후식으로 먹는 서비스 음식이라는 이미지가 더 강하다. 그런 냉면을 한 그릇에 만 원씩이나 주고 사먹는다고?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물론 한 번도 시도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너는 제대로 된 냉면 맛을 몰라서 그렇다"는 주위 사람들의 핀잔에 일종의 오기가 발동했던 나는 그 길로 시청역 근처의 유명 평양냉면집에 가서 1만 3천 원이라는 거금을 주고 평양냉면 한 그릇을 먹는 모험을 한 적도 있었다. 국물까지 싹 비우고 나서도 본전 생각이 났던 건 두 말 하면 잔소리다.

그때의 악몽에도 불구하고, 이번 '냉면 대란'을 지켜보면서 또 한 번 모험심이 발동했다. 어쩌면 냉면에 대한 내공이 부족해서, 그동안 싸구려 냉면만 먹어오다 보니 진귀한 냉면의 맛을 이해하지 못했던 건 아닐까 싶어 다시 한 번 도전해보고 싶은 충동에 휩싸인 게다.

그래서 집어들게 된 게 바로 이 책이다. 적어도 음식평론가라는 타이틀을 가진 이가 공인된 냉면 맛집들을 일일이 답사하며 기록한 가이드북이라면 냉알못(냉면을 알지 못하는 사람)인 나의 혀도 냉면 품평이 가능한 혀로 업그레이드 시켜줄 수 있지 않을까 은근히 기대하면서.


'냉면의 품격' 책 표지 ⓒ 반비


이 책에 수록된 서른 한 곳의 냉면집들은 서비스음식으로서의 냉면이 아닌 냉면 그 자체로 승부를 보는 공인 점포들이다. 우래옥·평양면옥·을밀대와 같은 공인된 노포들부터 을지면옥·필동면옥·남포면옥 등 노포만큼은 아니어도 나름대로의 역사를 자랑하는 점포들, 정인면옥·능라도 등 평양냉면의 인기를 등에 업고 2000년대 이후 등장한 후발 주자들, 마지막으로 무삼면옥·광화문 국밥 등 정통 평양냉면은 아니지만 평양냉면의 형식으로 국수를 말아내는 점포들까지. 저자는 자신만의 꼼꼼한 기준으로 맛을 평가한 뒤 솔직한 후기를 통해 독자들을 드넓은 평양냉면의 세계로 인도한다.

그렇다면 냉면의 맛은 어떤 기준으로 평가하는가. 모든 냉면마니아들이 같은 기준으로 냉면 맛을 평가하지는 않겠지만, 어쨌거나 국수의 생명인 '면발'과 '육수' 만큼은 필수적인 평가항목이리라.

우선 면발에 대해 저자는 '젓가락으로 풀어 집어 올리면 덩어리 전체가 아닌 일부 가닥만이 딸려 오는지', '가위질이 필요한지', '입에 넣었을 때 이로 힘을 주어 끊어야 하는지' 등 굉장히 섬세하고 꼼꼼한 잣대를 들이댄다.

또 육수에 대해서도 '지나치게 탁하거나 뿌옇지는 않은지', '감칠맛과 짠맛이 균형을 이루고 있는지' 등 나름대로의 기준을 제시한다. 그리고 기준의 충족을 넘어 상회하는 냉면집에 대해서는 "흑마술이나 연금술이 개입한 건 아닐까" 하며 극찬을 보낸다. 반면 기준에 충족하지 못하는 냉면에 대해서는 가차 없이 독설을 날린다.

평양냉면 ⓒ 위키피디아


서울 지역 최악의 평양냉면집은?

대표적으로 을밀대와 필동면옥을 들 수 있다. 두 점포를 '서울 최악의 냉면집'이라 서슴지 않고 말하는 저자는 을밀대의 육수는 '공업의 맛'이고 필동면옥에 대해서는 '평양냉면의 악몽', '아수라장' 등 온갖 부정적 수식어를 다 가져다 붙이면서까지 평가절하한다.

"사실 필동면옥에서는 젓가락을 들기 전부터 실망을 피할 수가 없다. 평양냉면은 한식에서 보기 드문 일품요리고, 가격 또한 높은 축에 속한다. 대신 기본적인 음식의 완성도나 접객 수준은 대체로 갖추는 편인데, 필동면옥은 예외이다. 환경은 극도로 부산스럽고 허술하며, 접객은 찌들었다. 그런 난관을 거쳐 간신히 자리를 잡고 주문하면 수돗물처럼 탁한 국물에 말아 낸 냉면이 등장한다." - p.45


"설계를 논하기 이전에 맛의 지향점이나 설계 자체가 부재하는 듯한 수준의 맛이고, 확실히 완성도가 떨어진다. 탁하고 미지근하며 들척지근한 국물에 질긴 면, 체면치레로 올린 고명과 반찬의 조합은, 그래도 지향점과 의지만은 분명히 의정부에 두고 있는 을지면옥과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 p.46


아니나 다를까. 해당 냉면집들을 비판한 저자의 인터뷰 기사를 찾아보니 자타공인 냉면전문가들이 찬반으로 나뉘어 댓글로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그러나 입맛은 주관적이다. 아무리 위대한 미식가나 음식평론가가 극찬한 음식도 내 입맛에 안 맞으면 최악의 음식일 뿐이다. 그런 점에서 을밀대와 필동면옥에 대한 저자의 혹평도 저자의 개인적인 생각일 뿐. 내 입맛에 맞으면 그냥 나 혼자 맛있게 즐기면 그만이다. 냉면 한 그릇가지고 '내 말이 맞네', '네 말이 틀리네' 하고 유치하게 싸우지는 말자. 남북 정상도 냉면 한 그릇으로 화해 무드를 연출한 상황에서 냉면이 오히려 분쟁의 유발요소가 되어서야 쓰겠는가.

인문학적 통찰이 부족한 점은 다소 아쉬워

이렇듯 평양냉면을 다룬 최초의 음식비평서라는 점에서 이 책은 나름대로 큰 의미를 갖고 있는 듯 보인다. 아쉬운 점이라면, 평양냉면 가이드북으로서의 역할은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는 듯 보이나 '냉면의 품격'이라는 거창한 제목에 비해 내용의 깊이가 얄팍하지 않나 싶다. 평양냉면의 유래와 역사 등 평양냉면에 대해 깊이 있는 인문학적 통찰을 기대했을 독자들에게는 다소 부족함을 느낄 수 있는 구성이다.

남북정상회담으로 평양냉면이 그 어느 때보다 핫한 음식으로 떠오른 지금, 평양냉면이 갖는 의미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있는 설명이 더해졌으면 보다 완벽한 책이 되지 않았을까. 그래도 대부분의 냉면집이 장애인들이 식사하기에 불편한 좌식이라는 점을 꼬집으며 입식으로의 전환을 촉구하는 꼼꼼함은 인상적이다.

어쨌거나 이 책은 나와 같은 냉알못들에게 냉면의 기준을 나름대로 친절하게 제시해주고 있는 책이다. 과연 그 기준을 소화할 만한 혀인지는 자신할 수 없지만, 평양냉면에 도전하기 위한 가이드북으로는 손색이 없어 보인다. 올 여름, 이 책과 함께 평양냉면 정복에 나서보는 건 어떨까.

냉면의 품격 - 맛의 원리로 안내하는 동시대 평양냉면 가이드

이용재 지음,
반비, 2018


#냉면 #평양냉면 #냉면의품격 #남북정상회담 #반비
댓글4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한양대 사학과 박사과정 (한국사 전공) / 독립로드 대표 / 서울강서구궁도협회 공항정 홍보이사 / <어느 대학생의 일본 내 독립운동사적지 탐방기>, <다시 걷는 임정로드>, <무강 문일민 평전>, <활 배웁니다> 등 연재 / 기사 제보는 heigun@naver.com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AD

AD

AD

인기기사

  1. 1 샌디에이고에 부는 'K-아줌마' 돌풍, 심상치 않네
  2. 2 황석영 작가 "윤 대통령, 차라리 빨리 하야해야"
  3. 3 경찰서에서 고3 아들에 보낸 우편물의 전말
  4. 4 '25만원 지원' 효과? 이 나라에서 이미 효과가 검증되었다
  5. 5 하이브-민희진 사태, 결국 '이게' 문제였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