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에게 허구한 날 시위냐고 혀를 차는 당신께

휠체어 장애인, 2차 지하철 1호선 승하차 투쟁을 다녀오며

등록 2018.07.04 11:16수정 2018.07.04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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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한경덕이다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2일 오후 두 시 서울 영등포구 신길역에서 시청역까지 2차 승하차 시위를 했다. 고 한경덕씨 장애인 리프트 사고에 대한 서울시 공개사과를 요구하기 위해서다. 나아가 장애인 이동권 보장 촉구를 위해 박원순 서울시장과 면담을 요청했다. ⓒ 박승원


지하철은 우리가 즐겨타는 교통수단 중 하나다. 하지만 누군가에겐 목숨 걸고 다녀야 할 정도로 위험하고 서러운 공간이라면 어떨까?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서울장차연)는 지난 2일 오후 2시 서울 영등포구 신길역에서 서울역까지 2차 승하차 시위를 했다. 전동휠체어 탄 장애인들이 열차에 한 줄로 오른 뒤 서울역에서 내렸다가 다시 시청역까지 갔다. 장애인 리프트 사고로 사망한 한경덕씨에 대한 서울시 공개사과를 요구하기 위해서다.

또 이들은 장애인 이동권 보장 촉구를 위해 박원순 서울시장과 면담을 요청했다. 장애인 이동권 보장 핵심 중 하나는 '2022년까지 모든 지하철 역사에 1동선 엘리베이터 100% 설치'다. 서울장차연에 따르면 현재 엘리베이터 설치하지 않은 지하철 역사는 27개에 달한다. 이 중 16개 역사는 엘리베이터 설치 계획안조차 제출하지 않았다고 한다.

2일은 박원순 시장 업무 시작하는 날이기도 하다. 박경석 서울장차연 공동대표는 박원순 시장이 재직할 때 일어난 일이니 먼저 이 문제 해결하고 임기를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휠체어 장애인을 반기지 않는 지하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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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보다 더 무서운 지하철 이용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2일 오후 두 시 서울 영등포구 신길역에서 시청역까지 2차 승하차 시위를 했다. 고 한경덕씨 장애인 리프트 사고에 대한 서울시 공개사과를 요구하기 위해서다. 나아가 장애인 이동권 보장 촉구를 위해 박원순 서울시장과 면담을 요청했다. ⓒ 박승원


처음 승하차 시위를 벌인 지난달 14일 TV조선은 <"이동권 보장" 장애인 시위...지하철 2시간 지연>이라는 제목으로 피해를 강조해 방송한 바 있다. 제목에서 손해를 부각할 뿐 서울장차연 요구사항과 시위 참가 장애인의 목소리도 함께 다루었다. 그 영상에서 한 시민의 목소리가 나온다.

"한 시간 걸렸어, 지금 노량진에서부터 여기까지. 시민들에게 적당히 피해를 줘야 이해를 하지."


시민의 지적도 어느 정도 타당한 면이 있다. 역마다 내렸다 오르길 반복하느라 다섯 정거장을 지나는데 1시간 40분이 걸렸다. 평소보다 5배 이상 시간이 걸린 셈이다. 그러는 동안 1호선의 다른 열차 운행도 지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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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님은 지금 서울메트로 행복열차를 타고 계십니다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2일 오후 두 시 서울 영등포구 신길역에서 시청역까지 2차 승하차 시위를 했다. 고 한경덕씨 장애인 리프트 사고에 대한 서울시 공개사과를 요구하기 위해서다. 나아가 장애인 이동권 보장 촉구를 위해 박원순 서울시장과 면담을 요청했다. ⓒ 박승원


2차 승하차 시위는 1차 시위 때와 달리 방법이 조금 바뀌었다. 신길역에서 시청역까지 가는 동안 서울역에서 한번 그리고 시청역에서 여러 번 타고 내리길 반복했다. 한 활동가에 따르면 지하철 이동 동선을 원활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했다. 최대한 시민에게 피해 주지 않기 위해 고민한 흔적이 보이는 대목이다.

하지만, 그마저 쉽지 않다. 서울역은 전동차와 문 사이 간격이 넓어 전동 휠체어가 올라타기 어렵기 때문이다. 힘겹게 지하철에 들어서도 연결통로를 지나기 어렵다. 턱이 높아서다. 시민이 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할 때 보통 '집단'으로 이동한다고 표현하지 않는다. 장애인 승하차 시위가 유별나 보인다면, 이미 익숙한 일상에 균열을 느꼈다는 증거다.

장애인도 시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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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시간 어떻게 보상할거야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2일 오후 두 시 서울 영등포구 신길역에서 시청역까지 2차 승하차 시위를 했다. 고 한경덕씨 장애인 리프트 사고에 대한 서울시 공개사과를 요구하기 위해서다. 나아가 장애인 이동권 보장 촉구를 위해 박원순 서울시장과 면담을 요청했다. ⓒ 박승원


"애꿎은 시민 붙잡지 말고 서울 시청에 가서 농성해라"라는 말 속에는 장애인과 비장애인 구분하려는 의도가 숨어있다. 보통 우리는 아이로 태어나 노인으로 죽는다. 연약하게 태어나서 연약한 모습으로 돌아가 생을 마감한다. 그 누구도 다른 사람 도움 없이 살아갈 수 없는 게 순리다. 굳이 한자 '사람 인'의 의미를 내세우지 않더라도 우리는 그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모두 연약하다는 점에서 함께 약자를 밀어내는 구조와 싸워야 한다.

욕먹는 게 좋은 사람은 없다. 특히 휠체어 장애인에겐 어느 한 곳에 모인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수고다. 지하철 승하차 시위는 잘 굴러가는 일상에 일어난 걸림돌이 아니다. 잘 돌아가는 줄 알던 일상에 은폐된 차별을 드러내기 위한 투쟁이다. 그 불편을 깨닫는 게 불쾌하다면, 어쩔 수 없이 욕먹는 수모를 감수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어느 장애인이 외친 목소리가 잊히질 않는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시위 때문에 불편하다고 신고해도 좋으니 시청에 연락해주세요. 함께해주길 부탁드립니다!" 엘리베이터가 생기면 그 권리를 장애인만 누리지 않는다. 정작 분노가 향해야 할 곳을 모른 체 서로 싸우는 것은 권력자가 가장 바라는 태도다.

이 기사는 다음 기사를 참고했습니다.

""나가! XXX아" 장애인들이 욕먹을 각오하고 전철 탄 까닭"  <오마이뉴스>, 2018년 6월 14일.

2) "장애인 시위를 대하는 언론, '불편' 부각하거나 눈 감거나"  <오마이뉴스>, 2018년 6월 18일.

#한경덕 #신길역 #장애인리프트 #장애인이동권 #박원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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