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내식? 아니, 박삼구 때문!"
함께 울먹인 아시아나 직원들

[현장] 기내식 대란 후 첫 촛불집회... 대한항공 직원들도 참석해 "함께 싸우자"

등록 2018.07.06 21:23수정 2018.07.06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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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삼구 OUT!" 뿔난 아시아나항공 직원들 '기내식 대란'이 벌어진 아시아나항공 직원들이 6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박삼구 회장에게 책임을 물으며 경영진 교체와 기내식 정상화를 촉구하는 촛불집회를 열고 있다. ⓒ 남소연


"회사가 두렵습니까? (아닙니다!) 이제는 그들이 우리를 두려워해야 합니다."

갈색 아시아나항공 유니폼을 입은 남성 승무원의 목소리가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일대에 울려 퍼졌다. 스피커를 타고 나오는 그의 목소리에 세종문화회관 앞 계단에 앉은 동료들도 목청 높여 화답했다. 가면을 벗고 나선 그 승무원은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동료들이 손님들의 욕설을 묵묵히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며 뒤돌아서 울었습니다. 이 자리는 그런 목소리들이 하나, 둘 모아져서 만들어진 자리입니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한 사람의 잘못된 결정으로, 그리고 그 사람의 비위를 맞추기 위한 경영진의 판단 미스로 이런 기내식 대란을 맞이하게 됐습니다. 그 책임자가 잘못했다고 말하며 물러날 때까지 우리는 계속 목소리를 높일 것입니다."

'기내식 대란'을 겪고 있는 아시아나항공 직원들이 6일 오후 6시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경영진 교체 및 기내식 정상화 촉구 촛불문화제'를 열었다. 기내식 대란 후 열린 첫 집회다. 이번 사태 후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아시아나직원연대가 주최하고, 아시아나항공노동조합이 주관한 이날 집회에는 주최 측 추산으로 약 500명(경찰 추산 250명)이 모여 "박삼구는 퇴진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삼구가 따뜻한 기내식 먹을 때 승객과 우리는 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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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나항공 직원들 광화문 첫 촛불집회 '기내식 대란'이 벌어진 아시아나항공 직원들이 6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박삼구 회장에게 책임을 물으며 경영진 교체와 기내식 정상화를 촉구하는 촛불집회를 열고 있다. ⓒ 남소연


집회는 직원들의 자유발언을 중심으로 진행됐다. 또 아시아나항공노조위원장 출신 권수정 정의당 서울시의원과 총수 일가의 갑질 및 불법 혐의로 고통을 겪고 있는 대한항공 직원들도 집회에 참석해 힘을 보탰다.

많은 직원들이 각양각색 가면을 쓰고 나온 가운데 얼굴을 공개하고 참석한 직원들도 있었다. 집회를 묵념으로 시작한 참석자들은 집회가 마무리된 후 국화를 헌화하며 이번 사태 와중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협력업체 대표를 추모하기도 했다.


가면을 쓴 채 자신을 객실 승무원이라고 소개한 한 여성은 "박 회장 인터뷰를 보니, 자꾸 '기내식 때문'이라고 하는데 이건 죽은 사람을 한 번 더 죽이는 것이다"라며 "우리는 왜 이 지경까지 왔는지 근본적인 원인을 묻고 싶어서 이 자리에 나왔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그는 "경영은 그들이 잘못했는데 왜 우리가 진이 다 빠지게 승객들에게 죄송하다고 해야 하나"라며 "연세 드신 분들이 (임시로 제공하는) 브리또를 한 입도 넘기지 못하실 때 크루밀(승무원 기내식)로 나온 쌀밥이 목으로 넘어가지 않더라"라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그는 "회장이 기자회견에서 '이제부터 노밀(기내식이 제공되지 않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면 그렇게 되는 건가,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며 "그럼에도 우리 기특한 후배들은 아무렇지 않게 서비스를 제공하더라, 힘내서 우리 '박삼구는 물러가라'고 목소리를 높이자"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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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삼구 OUT!" 뿔난 아시아나항공 직원들 '기내식 대란'이 벌어진 아시아나항공 직원들이 6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박삼구 회장에게 책임을 물으며 경영진 교체와 기내식 정상화를 촉구하는 촛불집회를 열고 있다. ⓒ 남소연


마스크를 벗고 마이크 앞에 선 김지원 아시아나항공 지상여객서비스노조 부지부장은 "오죽하면 승객 분들께서 저희에게 와서 '식사는 하면서 일 하냐'고 묻는다"라며 울먹였다. 이어 "박 회장이 핫밀(뜨거운 기내식)을 드실 때 승객들은 노밀이었고 현장 노동자들도 모두 굶은 상태였다"라며 "박 회장은 뉘우치지 않는 것 같다"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딸의 낙하산 논란과 관련해) 박 회장이 '예쁘게 봐달라'고 말 같지도 않은 언행을 내뱉았더라"라며 "대한민국 대기업에서 상무로 올라간다는 것이, 아니 대기업 입사하는 것 자체가 대한민국에서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대한민국 아들딸에게 사과하고 그 자리에서 물러나라"라고 지적했다.

권수정 의원 울분에 함께 '울컥'

권수정 서울시의원 역시 자신의 노조위원장 시절을 떠올리며 "경영진이 잘못한 것을 우리가 제대로 막지 못하고, 우리 안에서 목소리를 만들지 못했기 때문에 그 결과가 국민들 앞에서 처참한 기내식 사태로 나타나고 있다"라고 울분을 토했다.

권 의원은 "우리 아시아나 직원들 얼마나 열심히 일하고 있나, 정말 우리가 한 일을 사랑하고 있지 않나, 그런데 왜 경영진의 잘못에도 우리가 최전방에서 욕받이로 살아가야 하나"라며 "우리가 이제 뭉쳤으니 우리 일터를 스스로 지켜내자, 잘못된 사람들이 우리 앞에 무릎 꿇고 국민들 앞에서 사죄하게 만들자"라고 힘주어 말했다. 권 의원의 울분에 계단의 직원들은 함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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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먹인 아시아나항공 승무원 6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촛불집회에 참가한 아시아나항공 승무원이 참가자들의 자유발언을 듣으며 울먹이고 있다. ⓒ 남소연


이날 집회가 열린 세종문화회관 앞 계단은 대한항공 직원들이 1차 집회를 연 곳이기도 하다. 이날 대한항공 직원들도 집회에 참석해 발언을 이어갔고, '갑질 근절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가면을 쓴 채 자신을 대한항공 객실 승무원이라고 소개한 한 여성은 "이 자리에서 저희 대한항공 직원들이 1차 집회를 열었을 때가 생각난다, 아시아나항공도 저희처럼 한 데 뭉쳐서 부도덕한 회장을 상대로 열심히 싸워나갈 것이라고 믿는다"라며 "우리는 항공사 연대라는 또 다른 세상을 열고 있다, 연대의 힘은 서로를 격려하고 함께 싸울 수 있는 동력을 만들어낸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노동자의 가장 강력한 권리인 노동권으로 우리의 일터를 지켜내고 우리의 삶을 다시 제자리로 돌려내야 한다"라며 "저들에게 경고한다, 박삼구는 물러나라, 조양호는 물러나라"라고 덧붙였다.

이어서 마이크를 잡은 대한항공 조종사도 "대한민국 항공 산업의 주축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에서 회장이란 사람들이 벌이는 모습을 보며, 이를 그대로 물려주고 있는 상황이 선배로서 창피하다"라며 "아시아나항공, 대한항공 할 것 없이 재벌 기업들이 저지르는 불법들을 우리 세대가 반드시 고쳐내 아름다운 대한민국을 만들어내자"라고 강조했다.

숨진 협력업체 대표 유족 "형의 몫까지 싸워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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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화하는 아시아나항공 직원들 '기내식 대란'이 벌어진 아시아나항공 직원들이 6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경영진 교체와 기내식 정상화를 촉구하는 촛불집회를 열었다. 집회를 마친 이들이 지난 2일 숨진 아시아나항공에 기내식을 납품하는 재하청 협력업체 대표를 추모하며 헌화하고 있다. ⓒ 남소연


이날 집회는 기내식 대란 와중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협력업체 대표를 위해 헌화를 하며 마무리됐다. 집회가 끝난 후 협력업체 대표의 유족으로 추정되는 이는 아시아나직원연대 익명채팅방에 "감사하다, 자유발언대에서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정말 고맙고 응원한다"라는 글을 올렸다.

익명채팅방임에도 실명으로 접속한 그는 "어려워도 제 형처럼 판단하지 마시고 끝까지 싸워주시길 바란다"라며 "형의 몫까지 열심히 싸워달라"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같이 힘들게 고생하시는 분들이 죄송해 하거나 사과할 필요 없다"라며 "오직 경영진 만의 진심어린 사과를 받고 싶다"라고 덧붙였다.

이에 채팅방에 접속한 직원들은 "지켜드리지 못해 정말 죄송하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유족 분들이 가장 힘들 텐데 당부의 말씀까지 주셔서 감사하다" 등의 메시지로 답했다.
#아시아나항공 #기내식 #대란 #대한항공 #촛불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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