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압적 서독인 - 위축된 동독인, 우리 미래 되지 않으려면

[동독인의 독일통일 이야기 ①] 통일 시대를 살아가는 독일 주민의 생각과 삶

등록 2018.07.15 12:31수정 2019.03.14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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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초반 독일통일의 날 행사 풍경. ⓒ 강구섭

2000년대 중반, 5월 어느 토요일 저녁, 베를린 전철 안.




필자가 앉은 좌석 앞의 네 명이 마주보고 앉는 자리에 노부부 두 쌍이 앉아 있었고, 중간 통로 반대편 자리에는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젊은 남자가 앉아 있었다. 서로 담소를 나누던 노부부 일행 가운데 한 할아버지가 일어나 통로 건너편으로 가더니 젊은 남자가 앉아 있는 좌석 옆의 창문을 닫았다.



젊은 남자는 창문을 다시 열었고 할아버지가 창문 쪽으로 다가가자 갑자기 젊은 남자가 할아버지를 밀쳤다. 할아버지는 전철 바닥에 쓰러졌고, 순간 벌어진 일에 주변 승객들이 모두 놀랐다. 이윽고 젊은 남자와 할아버지의 짧은 대화가 이어졌다.




젊은 남자 : "왜 마음대로 창문을 닫냐. 왜 물어보지도 않냐."

할아버지 : "내 아내가 감기를 앓고 있다."

젊은 남자 : "왜 나에게 물어보지 않고 마음대로 하냐. 동독 출신이라서 그러냐? 그때는 그렇게 마음대로 했냐. 지금은 다르다. 그 시대는 1989년 11월 이후 끝났다. 이젠 당신들도 바뀌어야 한다. 더 이상 옛날처럼 그러지 마라."




그제야 상황이 어렴풋이 눈에 들어왔다. 노인 일행은 동독 출신이었고 대화 내용으로 볼 때 맹렬하게 말을 쏟아 붓던 젊은 남자는 서독 출신으로 보였다. 노 부부 일행은 경찰을 부른다고 맞섰지만 젊은 남자는 부를 테면 부르라면서 목소리를 낮추지 않았다. 그렇게 몇 마디 주고받다가 노인 일행은 점차 수그러들었고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바닥에 쓰러졌던 할아버지와 내 눈이 잠시 마주쳤다. 잔뜩 위축된 할아버지의 모습에 괜히 마음이 아팠다.



내려보는 듯한 서독인, 잔뜩 위축된 동독인




이제는 아주 오래 전의 일이지만 그저 쳐다 보기만 하다가 지나쳤던 그때의 일은 시간이 제법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마음 한 구석에 짐으로 남아 있다. '나라도 자리에서 일어나 할아버지, 할머니를 지원하는 말을 한마디쯤 했어야 했는데'라는 자책과 함께….



다소 적합한 예가 아닐 수도 있지만 그때의 일은 동·서독 갈등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내 기억 속에 자리하고 있다. 거친 말로 노 부부 일행을 몰아붙이던 젊은 남자, 그의 말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채 그저 당황하던 노인의 모습이 통일 이후 동·서독인의 상황을 보여주는 듯 느껴졌기 때문이다. 내려다보는 듯한 자세의 큰소리를 치는 주인으로 등장했던 서독인, 주도권을 잃은 채 허탈함을 감추지 못하던 동독인 같은.




통일 후 한 세대가 지나감에도 동·서독인 간의 관계에는 여전히 뭔가 남아있다는 이야기를 접할 때면 항상 오래 전 베를린 지하철에서 겪었던 작은 소동이 떠오른다.




독일 통일이라는 세기적 사건과 함께 삶의 전 영역에서 급격한 변화를 겪어야 했던 동독인의 통일 이후 삶의 모습은 언젠가 맞이할 남북한 통일과정에서 반도 북쪽의 새로운 이웃들이 겪게 될지 모를 상황을 개략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통일 과정에서 동독 주민이 겪어야 했던 여러 가지 상황에 대한 경험을 통해 남북의 하나됨을 준비하는 우리가 무엇을 고민해야 할지에 대한 많은 시사점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동·서독 - 남북한 일대일 등치는 무리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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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초반 노동정책개혁 반대시위에 참여한 구동독주민 모습. ⓒ 강구섭

독일 통일 연구자들에 의해 종종 언급되는 것처럼 상황 자체가 다른 동·서독과 남북한의 경우를 일대일로 등치해 보는 것에는 당연히 무리가 따른다.




그럼에도 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적지 않은 해결 과제를 가지고 있는 독일 상황을 통해 간접적으로 나마 남북한이 이미 발을 담그고 있는 한반도 통일의 '물줄기'가 어떤 방향으로 진행되는 게 바람직할지 고민해 보는 것은 적지 않게 의미있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독일 통일이 주는 긍정적 혹은 부정적 교훈을 통해 우리의 통일 과정을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유도해, 남북한이 겪게 될 어려움을 최소화할 수 있다면 우리가 마주하게 될 한반도 통일의 모습이 독일의 그것과는 분명히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독일 통일은 우리에게 더 없이 좋은 반면교사라 할 수 있다. '우리의 상황과는 너무 다르다'는 생각에 그저 한번 훑어본 후 관심을 닫아버리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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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독일에서 공부했다.

오마이뉴스 정치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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