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살 좀 쪄야 해" 그것도 몸평입니다

뚱뚱하든 야위든... 내 몸은 내가 알아서 할게요

등록 2018.09.17 07:59수정 2018.09.17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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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키가 더 컸으면 좋겠다, 손, 발, 어깨 등등이 더 컸으면 좋겠다는 말은 듣곤 하지만, 얼굴이 컸으면 좋겠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이 '얼큰이'는 서글프다. 교과서에 <큰 바위 얼굴>이 나오니 친구들이 나를 보며 키득대질 않나. 그날부로 별명은 큰 바위 얼굴. 

지금 찾아보니 그 작품은 <주홍글씨>의 저자 너새니얼 호손의 문학적 상징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란다. 까맣게 몰랐다. 국어 과목을 그리도 좋아했건만, 부끄러움에 그 작품만큼은 완전히 잊고 말았나 보다. 

'큰 바위 얼굴'의 비애는 또 있다. 두툼한 옷으로 몸을 감싸는 겨울이 지나고 옷이 얇아지기 시작하면, 난데없이 몸에 관한 품평을 들어야 한다. 올여름도 어김없이 그랬다. 내 몸은 최근 몇 년간 변한 것 없이 그대로건만, 얼굴로는 좀처럼 가늠되지 않는 몸이 드러나니 사람들은 계속해서 내 몸을 지적한다. 오래 알고 지내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매년 보고도 매년 놀랄 만큼 큰 바위 얼굴의 위력이 대단한가 보다. 

일 때문에 정기적으로 찾아뵙던 중년의 어르신이 있었다. 나는 그분의 인품을 존경하고 어떠한 악의도 없음을 의심하지 않지만, 번번이 반복되는 몸매 지적은 반갑지 않았다. 폭염이 지속되는 여름에도, 어르신을 뵙기 전에는 준비해간 카디건을 주섬주섬 꺼내 걸쳤다. 아무리 여름용 옷이라지만, 나는 발가벗어도 더울 판이었는데 말이다. 

더위를 참고 옷을 걸친 효력이 발휘한 걸까. 어느 하루는 아무 소리 듣지 않고 넘어가게 됐다며 속으로 쾌재를 부르는데, 저만치 가시던 어르신이 다시 뒤돌아 오시며 말한다. 

"너무 삐쩍 말랐어. 살 좀 찌워야 한다니까 그러네."

실패다.

몸평, 정중히 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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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기준으로 내 몸을 바라본다는 것은 나를 불행으로 몰아넣는 것이기에, 다른 사람의 지적은 정중히 사양하고 싶다. ⓒ unsplash

 
언젠가 친구 하나가 불쾌한 일을 당해 함께 울분을 토한 적이 있다. 친구는 전화로만 업무를 주고받던 '갑'사 대표를 처음으로 만나 대면 회의를 하게 됐고, 모든 일이 순조롭게 마무리되어 만족하고 있었단다. 그러던 찰나, 다가온 대표가 대략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OO씨 살 빼야 돼. 요즘 세상에 뚱뚱한 거 좋아하는 사람 아무도 없어. 특히 우리 직업은 사람을 많이 만나야 하는 일이잖아. OO씨 아마 몸 때문에 놓친 기회 많을걸? 정말 OO씨 위해서 하는 말이야. 다음번에 만날 땐 꼭 살 빠져 있어야 돼, 알았지?" 

정말이지 기함을 하다못해 속이 울렁거렸다. 나는 친구와 함께 울분을 터뜨리며 상처받은 친구를 위로했다. 그러다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어떤 주제도, 맥락도 없이 쉴 새 없이 계속되는 수다를 떨었고, 나 역시 내 몸을 지적하는 중년의 어르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됐다. 그분 앞에서는 내 몸을 감추고만 싶다고. 공감을 바랐던 나에게, 친구의 반응은 예상과 달리 냉담했다. 

"너, 그래."
"응?"
"너 살찌워야 한다고. 말랐다고." 


나는 친구의 아픔을 이해했건만, 친구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우리의 고민을 같은 범주로 넣지만, 친구에겐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안다. 한국엔 말라서 걱정인 사람보다, 다이어트를 숙원으로 삼은 사람이 많다는 것을. 그들에게 이것은 속 편한 고민으로 보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러나 타인이 내 몸을 개선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고 그것도 모자라 면전에서 품평하고 지적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나는 그들이 내 몸을 샅샅이 훑어봤음을 당당히 말할 때마다 소름이 돋는다. 

나는 다이어트를 하고 있지 않다. 잘 먹고 있고, 그 어느 때보다 건강하다. 아무리 먹어도 살이 안 찌네 어쩌네 하는 복에 겨운 소리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필요하다면 찌울 수도, 뺄 수도 있다), 내 건강에 해가 되는 그 어떤 일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미안하지만, 사람들의 '조언'이 오직 나의 건강을 위한 것이라고만 느껴지지 않는다.

남의 기준으로 내 몸을 바라본다는 것은 나를 불행으로 몰아넣는 것이기에, 다른 사람의 지적은 정중히 사양하고 싶다. 어차피 타인의 기준을 충족시키기란 영원히 불가능하다(최근, 3kg만 빼면 딱 좋겠다는 소리도 들었다). 내 마음에 드는 내가 되기도 얼마나 힘든데 수많은 타인들의 기준을 맞춰야 한다고 생각하면,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옥죄어온다.

시선으로부터의 자유를 꿈꾸며

내 몸을 들여다본다. 나는 걱정할 만큼 마르지 않았다. 근육이 좀 더 늘었으면 좋겠고, 맘에 안 드는 부분은 셀 수 없이 많고 많지만, 살에 한정시켜 말하자면 그럭저럭 괜찮다고 생각한다. 마른 몸을 추종하지 않기에 다이어트를 생각하진 않지만, 반드시 찌우느냐, 빼느냐,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면, 오히려 빼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리저리 튀어나오고 겹쳐지는 살들이 내 눈에는 여지없이 보인다.

문득, 두려움이 몰려온다. 여성의 몸에 대한 대상화가 잘못되었다고, 앙상한 몸을 추구하는 전 사회적인 분위기를 고쳐야만 한다고 생각하던 나도, 어쩌면 그 시선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닐까. 충분히 보기 좋은데도 건강을 해쳐가며 다이어트에 매진하는 친구들을 안쓰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는데, 어쩌면 나 역시 한 치도 다르지 않은 것은 아닐까. 나 역시 내 눈에만 보이는 볼록 거울을 통해,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왜곡된 틀을 통해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원하는 것이, 내가 삼고 있는 기준이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인지, 어쩌면 왜곡된 것은 아닌지 한 번 들여다볼 일이다. 내 욕망과 기준의 근거가 어디서 비롯되는지, 주의 깊게 관찰할 필요가 있다. 

몸에 대한 시선으로부터 모두가 자유로워질 수 있었으면 한다. 설령 시선이 가는 것이야 어쩔 수 없다 해도, 서로의 몸을 도마 위에 올려 함부로 재단하고 품평하는 것만큼은 재고해볼 일이다. 물론 나부터 조심할 일이다. 이렇게 말하는 나도, 뜨끔한 일이 적지 않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폭염이 지나고, 가을이 왔다. 옷이 길어지고, 두툼해지는 계절. 몸을 향한 사람들의 시선에서 조금은 더 자유로워지는 계절이 아닌가 한다. 특히 이 큰 바위 얼굴은, 가을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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