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과 함께 다가온 국감... 국회 '갑질' 그만

[주장] 입법부의 무리한 자료요구 개선되길

등록 2018.09.17 14:52수정 2018.09.17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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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저녁으로 선선하다. 계절의 변화를 실감한다. 그야말로 뜨거웠던 지난 여름의 '투정'은 온데간데없다. 지나간 여름에 대한 약간의 아쉬움, 찾아온 가을에 대한 반가움이 교차한다. 인간의 노력 없이 주어진 자연의 몸부림은 계절이란 이름에 각인된 지난 날의 기억을 되살리며, 우리의 몸과 마음을 긴장시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의 섭리에 적응해야 하는 인간은 어느새 유쾌함으로 어제처럼 오늘의 발걸음을 재촉한다.

그러나 가을의 유쾌함은 모두에게 공평하지 않다. 선선한 가을을 넉넉히 반길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가을마다 덧입혀진 기억이 아름답지만은 않은, 그래서 가슴을 졸이고 있는 사람들이다.

가을, 가슴 졸이는 사람들

바로 국회의 국정감사를 준비하는 일선 공무원들이다. 누군가는 기다림의 대상인 가을이 그들에겐 1년 중 가장 버겁고, 피하고 싶은 계절이다. 그만큼 국정감사가 주는 압박이 대단하고, 국회의 자료 요구, 각종 민원에 시달려야 하는 기간이기 때문이다. 나와 나의 조직이 그동안 한 일을 누군가가 들춰보는 것, 생각만 해도 숨이 막힌다. 그것도 우리 사회 최고 권력 집단이라고 할 수 있는 국회를 상대해야 한다면 지레 겁을 먹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삼권 분립을 기초로 운영되는 국가다. 입법, 사법, 행정이 힘의 균형을 이루고, 각자의 영역에서 주어진 임무를 제대로 수행할 때 건강한 사회를 유지할 수 있다. 이런 기본 원리에서 출발해 국회가 행정기관을 정기적으로 감사하고, 지방의회가 지방자치단체를 견제·감시하는 것은 당연하다. 입법(立法)과 함께 감사(監査)는 의회의 가장 중요한 임무 중 하나다. 그래서 '감사'를 의회의 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국정감사가 꽃처럼 아름다운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국회와 피감기관 간의 상시적 소통과 신뢰가 중요하다. 국정감사 기간 이외에도 주요 정책과 행정서비스에 대한 결정과 집행에 대한 자료·정보가 공유되고, 논의돼야 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 국회와 피감기관의 관계 설정은 뒤틀려 있다. 감사 기능을 권력 휘두르는 데 사용하면서, 행정부 '길들이기' '군기잡기'라는 표현이 나온다. 특히, 국정감사 기간에는 이런 잘못된 관행이 심해진다.

과도한 자료 요구...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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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감사가 되면 국회는 행정부에 방대한 양의 자료를 요청한다. 사진은 2016년 9월 26일 오전 서울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국정감사 당시 모습. ⓒ 이희훈

  국정감사 기간 공무원들이 가장 괴로워하는 부분은 '무리한 자료 요구'다. 수천 쪽에서 많게는 수만 쪽에 이르는 방대한 양이다. 제출 기한도 너무 촉박하다. 대략 이렇다.

"최근 10년간 공문서 제목 목록을 전부 다 보내라."
"내일까지 요청한 자료 전부 제출하라."


자료를 요구하는 입장에서는 정책 집행과 예산 사용에 대한 장기간의 기록이 꼭 필요해서 요구할 수 있다. 그러나 자료를 제출하는 입장에서는 난감하기 짝이 없다. 사무실 컴퓨터에 한글이나 엑셀 파일로 보기 좋게 정리돼 있어서 편집을 잠깐 한 뒤 보낼 수 없는 자료가 대부분이다.

전임자가 인계한 자료를 찾고, 옆 부서에 요청하고, 안되면 새롭게 생성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야간근무는 기본이고, 밤샘 근무와 휴일 출근도 빈번하게 이뤄진다. 이로 인한 일상적 업무의 행정 공백이 발생하고, 심지어는 스트레스와 과로로 몸이 망가지기도 한다. 인간적으로 참기 힘든 모욕적인 상황을 빈번히 마주하게 된다. 국민을 위해 일하는 피감기관의 공무원도 사람이다. 이럴 필요가 있을까.

국정감사는 국민의 대표 기구인 국회가 국정 전반에 대해 검토·확인·비판하는 법적 행위으로서, 잘못된 정부 정책의 개선을 요구하고 필요한 부분은 입법과정에 반영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헌법'과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에 근거한 만큼 위상도 상당하다.

감사를 받는 행정부도 국회의 요구에 성실히 응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과도한 자료 요구 등 피감기관을 상대로 한 국회의 행태는 국정감사의 목적과 부합하지 않는다.

'수박 겉핥기' 벗어나 건전한 국감이 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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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감사원에서 국회 법사위 국정감사가 진행되고 있는 모습. ⓒ 권우성

 
또한, 현재의 국정감사는 정부 정책이나 사업의 정당성 또는 적절성을 따지기보다, 국회의원 각 개인의 얼굴 알리기나 소속 정당의 홍보를 위해 언론을 지나치게 의식한다. 그렇다 보니 인기 영합, 무책임한 폭로, 비판을 위한 비판의 장으로 변질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지금과 같은 국정감사는 비효율적이고, 보는 국민의 입장에서 민망하다. '수박 겉핥기식 국정감사'라는 언론의 비난이 단골로 나오는 이유다.

국회의 자료 요청과 관련해 다수의 피감기관이 제시하는 개선 방향은 대략 이렇다. 최근 3년 이내 자료 요청을 원칙으로 하고, 장기 자료가 필요할 경우 먼저 목록 제출 요구·확인 후 선별적으로 상세 자료를 요구하는 것이다.

방식은 전화, 메일과 같은 비공식적 채널이 아닌 의정시스템을 통해 요청할 것을 제시한다. 제출 기한도 최소 3일은 보장하고, 소통 과정에서 인격적 무시나 고압적 자세는 지양해야 할 것이다. 국회와 피감기관간 상호 신뢰와 존중의 문화가 필요하다.

올해 국정감사는 10월 10일부터 29일까지 예정돼 있다. 일선 행정 부서에서는 어김없이 긴장하고 있다. 벌써 분주하다. 감사를 받는 그들에게 이번 가을은 또 어떻게 기억될지 염려스럽다.

여러 기관과 단체가 촉구했듯이 국정감사 기간 불합리한 국회의 행태가 바뀔지, 아니면 변함없이 옛 기억의 아픔을 되돌려줄지 알 수 없다. 행정부가 국민을 위해 예산 낭비 없이 좋은 행정서비스를 제공하고, 질 좋은 정책을 결정할 수 있도록 국회가 '건전하게' 견제·감시·비판하는 모습을 기대할 뿐이다. 이 가을이 모두에게 아름답게 기억되길.
덧붙이는 글 글쓴이 최영조씨는 국가공무원노동조합 정책연구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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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공무원노동조합 정책연구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정부와 사회 이슈, 사람의 먹고 사는 문제에 관심 많은 시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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