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만 대도시, 자치권 늘려줘야
고양을 '평화경제특별시'로 써달라"

[심층 인터뷰] 이재준 고양시장... '2019년 예산안 편성'에 시민 참여 보장

등록 2018.09.27 13:38수정 2018.09.27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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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준 고양시장 ⓒ 이희훈

 
요즘 유행하는 말 '소확행'.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민선 7기 고양시의 행보를 보면 이 말이 딱 떠오른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소소하지만 확실한 시민의 행복'이다. 경기도의원을 지냈던 이재준(58) 고양시장은 뜬구름 잡는 예산이나 정책을 거둬내고, 시민들의 손에 잡히고 눈에 보이는 생활밀착형 정책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있다.

취임 후 지금까지 '이재준 표 시정'을 살펴보면 이례적인 일들이 많다. 인수위를 사실상 1기와 2기로 나눠 다른 지방자치단체보다 길게 가동했다. 시간이 좀더 걸리더라도 기초작업을 탄탄하게 해놓고 시동을 걸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대부분의 지자체에서 단체장의 최측근을 임명했던 비서실장직도 노조위원장 출신인 계약직 공무원을 승진 발탁해 눈길을 끌었다.

뿐만 아니다. 올해 추가경정예산을 시 스스로 자체 삭감해 시 의회에 제출했다. 중복되거나 실현불가능한 정책에 편성된 예산 166억원을 줄인 것이다. 극히 드문 일이다. 심지어 각 부서별로 제출한 내년 예산안을 '시민이 먼저 보는 예산서'라며 통째로 사전 공개했다. 이후 시민들이 제시한 의견 가운데 합리적이고 타당한 제안을 예산안에 반영해 시의회에 제출하겠다는 것이다. 

이처럼 연타석으로 터지는 이례적인 일들의 초점은 '시민중심'에 맞춰져 있다. 여기에는 "정치권력이 시민권력을 우선할 수 없다"는 이재준 시장의 정치철학이 녹아있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시민의 행복'

고양시는 남북의 정중앙에 위치해 있다. 북한쪽과 가장 가까운 100만 대도시다. 남북의 평화·화해가 무르익는 지금 시기에 가장 주목받는 지정학적 위치다. '남북평화가 밥 먹여줄 수 있는' 대표적인 도시다. 이 시장이 "고양시를 '평화경제특별시'로 지정해달라", "남측 연락사무소를 고양시에 설치해달라", "남북 유소년스포츠센터를 유치하겠다"고 내건 주요 공약들도 그 연장선에서 나온 것이다.

이 시장이 밝힌 "수도권정비계획법, 그린벨트법, 군사시설보호법 등으로 3중고에 시달리고 있는 고양시의 족쇄"를 풀 수 있는 열쇠도 '남북평화 거점 도시'로서의 고양에 있다. "법을 바꾸기 어렵다면 남북경협 기업들의 입주만이라도 허용해달라"는 이 시장의 간청은 100만 대도시 가운데 가장 제약이 많고, 재정자립도가 낮은 고양시의 깊은 고민과 맞닿아 있다. 또한 이제 더이상 '서울의 베드타운'이 아닌 '자족도시'를 지향하는 고양의 간절한 소망이 묻어있다.


이재준 고양시장과의 인터뷰는 지난 9월 14일 낮 12시 고양시정연수원에서 진행됐다. 다음은 이 시장과의 일문일답이다.
   

고조되는 남북평화, 고양시장은 어떤 준비를? ⓒ 정현덕

 
- 민선 7기 고양시장에 취임한 지 세 달이 지났는데.
"새삼 느끼는 것이 갈등 사안이 많다는 것이다. 그것을 합리적으로 조율하고, 이해 당사자 간에 수긍하게 하는 게 가장 어렵고 책임감을 느끼게 한다. 경기도의원일 때는 그런 중압감을 크게 느끼지 못했다. 단체장이라는 게 상당히 무거운 직책이라는 걸 새삼 느끼고 있다."

- 도의원 경험이 시장 직무를 수행하는데 어떤 점에서 도움이 됐나.
"도의원을 하면서 경기도의 평균과 전체 사정을 알게 됐다. 도의원 시절에도 고양시의 상황을 파악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정책이나 행정이 낯설지 않았다. 단체장은 갈등을 조정하는 역할과 시정에 대한 철학이 요구된다. 예를 들어 도시개발을 할 때 개발이 맞는 거냐, 보전이 맞는 거냐? 이걸 제대로 판단하기 위해서는 철학적 고민과 신념이 있어야 한다." 

- 같은 더불어민주당 출신이긴 하지만, 전임 최성 시장은 당내 후보 경선에서 이례적으로 컷오프 돼 탈락했다. 고양시민들의 변화에 대한 갈증이 만들어낸 결과라고 본다. 최성 시장 체제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가.
"전임 시장 시절에는 문화나 행사, 정치적인 구호로 정책을 이끄는 게 많았다. 고양시의 이미지나 이름을 알리는 데는 상당히 많은 기여를 했다.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 보면 그것이 주민들의 삶과 얼마나 밀접하게 연관이 되었을까를 생각하게 한다. 양면이 있는 것이다. 저는 작더라도 시민들에게 감동을 주는 생활밀착형 정책을 만들려고 한다.

기존에 시행했던 정책 가운데 제일 못한 것, 필요 없는 것 5개를 잘라내면 그만큼 새로운 정책을 펼 수 있는 공간이 생긴다. 잘못된 정책을 계속 가져가려는 관성을 없애지 않으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 재정이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공무원들에게) 민선 7기는 시민들한테 감동을 주며 원칙에 충실하자고 이야기한다. 그러한 시정의 관점은 사람과 정의로움을 지향해야 한다."

"정치권력이 시민권력을 우선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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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준 고양시장 ⓒ 이희훈

 
- 지난 6·13 지방선거 결과, 고양시의회는 총 33명의 시의원 가운데 더불어민주당 21명, 자유한국당 8명, 정의당 4명으로 구성됐다. 여당에 압도적인 의석을 줬다. 이러한 의회 구성이 시정을 펼쳐나가는데 '양날의 검'일텐데.
"문재인 대통령께서도 말씀하셨듯이 정말 등골이 서늘하다. 이 책임감을 과연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가 숙제다. 다만, 고양시의 장점은 다른 지자체보다 시민사회의 활동이 왕성하다는 것이다. 비판과 감시 기능이 작동한다면, 잘못된 정책과 오류를 최소화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의원들의 분포를 봐도 초선뿐만 아니라 재선과 삼선이 골고루 섞여있고, 자질도 충분한 분들이다. 

정치권력이 시민권력을 우선할 수는 없다. 그래서 시민들의 뜻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고 본다. 소통하는 정치가 무지개연대 등 고양시 시민사회에서 원했던 것이다. 시민들과 함께 하는 시정, 그러한 바람을 고양시의 거버넌스(governance) 형태로 완성해나가려고 한다."

- 올해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면서 처음으로 시에서 스스로 감액한 예산안을 시의회에 제출했다. 지방정부가 스스로 예산을 줄인다는 게 이례적인 일이다. 어떤 예산을 줄였고, 왜 줄였나.
"똑같은 옷을 입으면 매번 똑같은 모양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옷을 바꾸고, 색깔을 다르게 해보자고 생각했다. 봄·여름·가을·겨울이 모두 다르듯이 예산의 색깔도 그때 그때 달라져야 한다. 그렇다면 지금 시민들이 절실하게 요구하는 예산은 무엇일까를 고민했다. 이에 부합하지 못하거나 낭비성·중복성, 실현불가능한 계획의 예산을 없앴다. 나중에 불용예산으로 갈만한 예산 166억원을 삭감했다.

반면, 생활밀착형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은 정부가 얘기하기 전에 편성했다. 그 돈이 40억 원 가량 된다. (낭비를 줄여 새로 편성한 예산으로) 10년 이상 민원이 제기됐던 몇 가지 사안도 해결할 수 있게 됐고, 교육환경개선 사업비로도 45억원을 편성했다. 이번에 감액 추경을 한 것은 (시 공무원들에게) 메시지를 던지기 위해서다. 내년 본예산을 짤 때도 이렇게 예산의 방향성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걸 행동으로 보여준 것이다." 

(※ 고양시는 9월 21일부터 10월 7일까지 '2019년 고양시 예산안'을 시 홈페이지에 게시한다. 고양시의 전 부서에서 짠 최초 예산안을 시민들에게 공개해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서다. 예산안 전체를 사전 공개한 '시민이 먼저 보는 예산서'는 지방자치단체로서는 처음이다.)
   

"통일시대, 한반도의 중심은 고양" 이재준 고양시장 ⓒ 정현덕

 
- 민선 7시 시정 슬로건이 '평화의 시작 미래의 중심, 고양'이다. 어떤 의미를 담았나.
"우리가 지향하는 최고의 가치가 평화일 수 있다. 판문점에서 열린 4·27 남북정상회담 때 국내·외 기자들 수천 명이 머물렀던 프레스센터가 고양시에 설치됐다. 남북 두 정상이 만난 곳은 판문점이지만, 고양시 프레스센터에서 만난 것이기도 하다.  

현재 고양시는 수도권정비계획법, 그린벨트법, 군사시설보호법 등으로 3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공장을 지을 수도 없고, 대학교를 유치할 수도 없다. 이러한 빗장을 풀어줄 수 있는 게 남북경협이다. 남북경협 기업들을 유치해 자족도시로 나아가자는 게 고양시의 바람이다. 그 출발점은 남북평화다. 이게 고양시가 갖는 '평화'의 의미다.

또하나 미래의 중심이라는 건, 남북통일시대를 가정하면 고양시가 정중앙에 위치해 있다. 남북통일시대를 대비해 대한민국 최고의 도시가 돼야 하고, 세계적으로도 중심도시가 돼야 한다는 고양시의 미래비전을 밝힌 것이다. 얼마 전에는 고양시가 국제협력교류지역으로 선포됐다. 수도권에서는 유일하게 호텔, 벤처, 킨텍스 전시관, 스포츠시설 등 다양한 인프라가 갖춰져 있다."

- 4대 시정 목표의 주요 키워드가 '평화경제', '사람중심', '시민행복', '지속발전'이다. 이 키워드에 담긴 뜻을 풀어달라.
"평화 경제는 이미 말씀드린대로다. 뭐니뭐니 해도 정책은 사람이 중심이 돼야 한다. 도시라는 건 건물이 아니라 사람이 중요하다. 모든 게 사람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니까. 그래서 시민들의 시정 참여를 고민하는 것이다. 시민행복이라는 건 시민들의 소망을 이뤄주는 것이다. 한 예로 300개가 넘는 민원처리 규정을 바꿨다. 기간을 절반 이상 단축시켰고, 일주일이 넘지 않도록 5일 이내, 3일 이내에 처리되도록 앞당겼다. 

지속발전 도시라는 건 자원이나 환경, 공간을 우리가 너무 남용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한다. 그렇게 남용하도록 우리에게 권리가 주어진 게 아니다. 우리에게 꼭 필요한 부분만 사용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져 있다. 그걸 넘어서서 사용하는 건 미래세대에게 부채를 떠넘기는 일이다. 자원이나 환경에 대한 남용을 자성하고 환경과 생태가 어우러진 지속가능한 발전도시를 만들어가자는 것이다."

"인구 3만5천명이나 120만 명이나 똑같은 기초단체라니..."

- 지난 8월 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이재준 고양시장을 비롯해 염태영 수원시장, 백군기 용인시장, 허성무 창원시장이 '인구 100만 대도시 특례 실현을 위한 상생협약'을 체결했다. 소위 '100만 특례시'는 이 시장의 5대 대표 공약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100만 특례시'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10여 년 전쯤 대도시법이 바뀌었다. 인구 50만 명 이상인 대도시에 인·허가나 행정권한을 많이 이양해줬다. 그 당시에는 (특별시와 직할시·광역시를 제외하고는) 100만 명이 넘는 도시가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100만 명이 넘는 도시가 고양·수원·용인·창원 등 4곳이나 생겼다. 이 정도로 도시 규모가 커졌으면 행정 시스템이나 법의 정비가 필요하다. 울산시가 광역시로 승격될 때 인구가 100만 명이 조금 넘었고, 지금은 120만 명에 못 미친다. 그런데 수원시는 지금 120만 명이 넘어 울산광역시보다 더 커졌다.

인구 100만 명이 넘는 도시들이 일제히 광역시로 승격되면, 지역사회에 또다른 문제가 생긴다. 경상남도의 1/3 정도 크기인 창원시가 빠져나가면 광역자치단체인 경남의 타격이 크다. 고양·수원·용인 3곳이 몰려있는 경기도도 마찬가지다. 100만 도시 시장들이 얘기하는 건 절충안이다. 광역자치단체 안에 머무를테니 100만 도시 권한만 인정해달라는 것이다. 이게 '100만 특례시'의 요청이다. 매우 이성적으로 접근하는 것이니만큼, 광역자치단체나 국가가 이런 요구사항을 들어줘야 한다."

- 기초단체로 있는 것과 특례시가 되는 것의 대표적인 차이점은 무엇인가.
"도세(道稅)로 걷어가던 세금의 많은 부분을 100만 특례시로 이양해달라는 거다. 기존 기초단체보다 더 많은 배분 비율로 책정해주어야 한다. 또한 도시개발이나 복지정책을 독자적으로 행사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기초단체는 개발계획이 몇만 평 이상이면 도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그러다보니 100만 도시에는 필요한데도 도에서 부결시켜 제약을 받기도 한다. 100만 특례시도 도의 권한을 침범하지 않을테니, 그 범위 안에서 독자성을 인정해달라는 것이다.

지금은 3만5000명 규모의 기초단체와 120만 명 규모의 기초단체가 똑같은 옷을 입고 있는 셈이다. 중학생 때 입었던 교복은 고등학생이 되면 바꿔줘야 한다. 그런데도 중학생 교복을 고등학생에게 입으라고 하는 건 말이 안 된다. 이제는 우리가 몸이 너무 커져서 중학교 때 교복이 안 맞으니까, 몸에 맞는 고등학생 교복으로 바꿔달라는 요구다."

-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100만 특례시'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지방자치 분권이 제대로 안된 상태에서 특례시를 만들면 다른 시·군 지역의 주민들은 완전히 엉망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광역자치단체인 경기도의 재정 상황도 크게 악화될 것이라고 우려하는데.
"당혹스럽다. 이재명 도시사께서 성남시장이었을 때 100만 대도시 특례를 주장했다. 제가 보기엔 (이재명 지사의 발언이) 한 부분만 잘려서 언론에 노출된 게 아닌가 싶다. 발언의 전후 상황을 살펴보면 (특례시 반대가 아니라) 완급을 조절해야 한다는 취지였을 거라고 본다. 그리고 지방분권이 잘 안 됐다는 건 도지사가 중앙정부에 할 말이지, 기초단체에 할 말은 아닌 것 같다. 

제가 (이재명 지사의) 이야기 전체를 듣지 못해서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 어쨌든 지방자치 측면에서 100만 대도시들은 충분히 자치 능력이 있으니 걱정 안 하셔도 된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이건 도지사께만 말씀드리는 게 아니라, 중앙정부에게도 드리고 싶은 말씀이다. 이미 100만 대도시들은 지방자치를 잘 이해하고 시민 중심으로 민주적인 시정을 펼치고 있다."
   

고양시장이 말하는 '100만 대도시 특례'의 필요성 ⓒ 정현덕

 
- 광역단체와 기초단체, 즉 경기도와 고양시는 어떤 관계여야 한다고 보는가? 도지사와 시장의 시각이나 입장이 다를 수밖에 없을텐데.
"상생 협력하는 관계여야 된다. 경기도 인구가 1300만명에 육박한다. 재정도 30조 원이 넘는다. 도에서 모든 걸 다 알 수 없다. 기초단체에서 하는 일을 도에서는 많이 지원해주고, 대신 도에서 중앙집권적으로 통제해야 하거나 관철시켜야 할 부분은 철저하게 기초단체에서 협조하면서 함께 가는 게 맞다. 

세종특별자치시나 제주특별자치도도 다 100만 대도시보다 작은 규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치 역량이 충분하고 다 인정해주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이제는 기초나 광역으로 구분하는 게 아니라 함께 갈 수 있는 파트너냐, 아니냐가 더 중요하다. 저와 이재명 도지사, 경기도와 고양시가 충분히 협력하면서 함께 갈 수 있는 파트너라고 생각한다."

- 같은 100만 도시라고 해도 사정이 제각각이다. 특히, 고양시는 100만 도시들 가운데 상대적으로 재정이 취약한 걸로 알고 있는데. 새로운 일을 하기 위한 재정 확대 방안은?
"(재정이 상대적으로 열악한 건) 맞다. 재정 확대 방안은 두 가지다. 하나는 국·도비(國·道費)를 많이 확보하는 것이다. '국·도비 확보 특별 TF'를 구성해 활동하고 있다. 또 하나는 재산세, 취득세, 지방소득세 등 자체 세수를 늘려야 한다. 우리와 규모가 비슷한 100만 도시와 비교해보면 지방소득세에서 3000억~5000억의 세수 차이가 난다. 

고양시는 철저하게 서울의 위성도시인 베드타운으로 설계됐다. 공장 하나, 창고 하나 마음대로 못 짓게 돼 있다. 그러나 다른 100만 도시들은 그렇지 않다. 창원시나 수원시는 대규모 공단들이 들어서 있다. 용인시도 마찬가지다. 고양시만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타개책으로 내세운 게 '평화경제특별시'로 지정해달라는 것이다. 북한과 경제 교류·협력하는 기업들은 고양시에 입주할 수 있게 허용해달라는 것이다.

고양시는 더이상 잠만 자는 도시가 아니라 자족시설을 갖춘 도시다. 수도권정비계획법을 바꾸려면 입법 사항이라 어려우니까, 북한과 경제 교류·협력하는 기업들만이라도 고양시에 입주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다. 세수가 늘어나면 남북평화경제의 발전 모델을 만들겠다. 또 다른 하나는 30만평 규모의 영상단지·테크노밸리를 특화하겠다는 것이다. 그걸 빨리 완성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고양시는 더이상 '서울의 베드타운'이 아니다"

- '파리기후변화협약 준수'를 5대 대표 공약에 포함시킨 것도 눈에 띈다. '환경도시 고양'에 대한 목적의식적인 노력을 뜻하는 건가. 
"맞다. 고양에는 (2006년 환경부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된) 장항습지가 있다. 민물과 바닷물이 내륙까지 들어오는 강이 많지 않다. 수도권에서는 유일하게 장항습지가 그렇다. 장항습지를 람사르협약 공식습지로 등록시키려고 한다. 뉴타운지역이나 도시재생 사업도 환경 문제를 우선적으로 고려해 진행할 계획이다. 

파리기후변화협약 시한이 2030년으로 이제 12년 남았다. 그런데도 온실가스 감축 계획을 제대로 세우지 않고 있다. 고양시가 앞장서서 연도별 온실가스 감축 계획을 세우고, 그에 따라 도시계획이나 태양광발전 등을 실천하겠다는 거다. 선진국들은 이미 탄소배출권을 많이 확보했다. 우리도 탄소 배출량을 줄이지 못하면 공장이 서고 비행기가 날지 못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지구와 환경에 대해 참회하는 마음으로 파리기후변화협약 준수 도시가 되겠다는 거다."

- 지역화폐 '고양페이'를 내년부터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는데, 호환성과 범용화의 한계를 지적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는데.
"그래서 검증 절차를 밟고 있다. 지역화폐는 대부분 체크가드나 큐알(QR)코드, 두 가지 가운데 하나를 선택한다. 체크카드로 하면 많은 단점이 해소된다. 기존 카드 가맹점에서 손쉽게 쓸 수 있다. 그런데 큐알카드로 하면 가맹점을 새로 모집해야 한다. 이건 무척 어려운 문제다. 경기도 대부분의 기초단체들은 지역화폐를 체크카드로 하려고 하고 있다."

- 남북평화가 무르익을수록 고양시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주목받고 있다. 이와 관련된 주요 공약들도 많이 내놓았다. 그 가운데 핵심적인 게 무엇인가.
"남북평화시대를 맞아 남북 표준도시를 만들자는 게 하나의 주제다. 예를 들어 직진·좌회전·우회전 등 교통신호 체계가 다를 수 있다. 남북교류가 본격화되면 차량을 운전해 왕래할 수도 있다. 그럴 때를 대비해 미리 남북 표준 교통신호를 만들자는 것이다. 언어는 물론이고, 식수에 대한 표준도 그렇고, 교량의 적정 하중도 마찬가지다. 

지난번 아시안게임이 열렸을 때 인도네시아 가서도 (남북한 체육관계자들을 만나) 말씀을 드렸는데, 남북 유소년스포츠센터를 고양시에 만들자고 제안했다. 나중에 남북 단일팀이 됐을 때를 대비해 스포츠 용어를 통일시켜놔야 선수나 감독의 의사 소통이 원활해지지 않겠나. 그래서 유소년만이라도 먼저 남북 스포츠 표준 용어를 만들어보자는 것이다.

여러 주제의 남북 표준을 테스트하고 만드는 시범 도시로 고양시를 써달라는 거다. 위치나 인프라 등을 고려하면 고양시만큼 적격인 도시가 없다. 그리고 남측 연락사무소도 고양시에 들어서길 희망한다. 서울에 연락사무소를 설치하면 대사급이기 때문에 격에 맞지 않는다. 서울과 맞닿아 있고, 각종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진 고양시가 적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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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준 고양시장 ⓒ 이희훈


- 고양시의 행복한 약속 가운데 하나인 '시민안전보험'이나 '산후조리지원금'은 언제부터 시행되며, 주민들에게 어떤 혜택이 돌아가나.
"둘 다 내년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내년 본예산에 편성하려고 한다. '산후조리지원금'은 50만원을 줄 계획이다. 이제는 한 자녀만 낳아도 고마운 세상이 됐다. 한 자녀부터 적용할 계획이다. '시민안전보험'은 최고 보상금액이 1000만원으로 설계돼 있다. 고양시가 보험사와 계약을 맺어 모든 고양시민들에게 무료로 보험을 가입시켜주는 거다. 산후조리지원금에 비해 시민안전보험은 많은 돈이 들지는 않는다."

- '주민 중심의 뉴타운 해결 방안'도 고양시의 행복한 약속 가운데 하나다. 뉴타운을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발표했는데, 직권해제까지 염두에 둔 것인가.
"그와 같은 원칙에는 변함이 없다. 그런 걸 결정하는 게 행정이다. 뉴타운을 지정한 지 10년이 넘었다. 그런데 아직 첫 삽도 못 떴다. 아직까지도 뉴타운을 해야 할 지, 말아야 할지 주민들 사이에서 찬반이 오가고 있다. 그렇다면 재검토해야 한다. (뉴타운을 추진)하더라도 실제 비용을 정확히 산출해보고, 현 시점에서 사업 타당성을 따져봐야 한다.

뉴타운의 사업성이 높게 나오면 시에서 막을 이유가 없다. 사업성이 낮은 지역의 경우 본인들에게 등기우편을 보내 의사를 다시 물어볼 거다. 관련 조례에 따르면, 주민들의 30% 이상이 반대하면 다시 결정할 수 있고, 50% 이상이 반대하면 무조건 해제하게 돼 있다. 결국 30%와 50%의 차이다. 사업성이 없다고 판단되면 직권해제할 것이다. 정책 결정을 하지 않고 이 상태로 놔두는 게 최악의 선택이다."

- '갈등조정 전문가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했는데, 어떤 사안에 대해 어떤 원칙과 잣대로 조정을 할 것인가.
"뉴타운 외에도 개발지역에 대한 찬반, 조례나 정책에 대한 찬반이 벌어지면 갈등이 생긴다. 이럴 때 현장에서 사전에 의견도 듣고 조율해서 중재하면 가장 좋은 것 아니냐. 물론 공론화 과정도 중요하지만, 공론화 결과를 정책으로 만들 때 또다른 찬반을 낳기도 한다. 지역에서 특정 사안이 집단적인 갈등으로 번지기 전에 갈등조정관이 현장에 가서 사전에 이해당사자들 사이를 중재하고 조절해주는데 힘을 쏟으려고 한다."

'갈등조정관', '동장 직접 선출제' 도입 예정

- 고양시가 추진중인 대규모 사업 가운데 하나가 '대곡역세권 개발'이다. 애초 계획을 수정해 아파트 비율을 낮추려고 한다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대곡역세권은 주거지역보다는 유통이나 산업쪽에 더 적합하다. 지형상 특성을 봐도, 철도가 2개 지나가고 고속도로와 중앙로 하나씩, 대여섯 지역으로 단절돼 있다. 주거지역보다는 단지별 특성에 맞는 산업지구로 조성하는 게 맞다. 그래서 설계를 변경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산업단지를 개발하면 적자라는 거다. 단절된 도로망을 하나로 연결하는데 드는 비용만 1조원으로 추산된다. 이 문제는 고양시, 철도청, 경기도시공사 3자가 머리를 맞대야 한다. 전체적으로 보면 규모를 확대하고, 주거쪽에서 비용을 더 충당할 수 있게 하자는 제안이다."

- 지난 2016년 서울시 금천구에서 전국 최초로 공채를 통한 민간인 동장(독산 제4동장)을 탄생시켰다. 고양시가 추진하는 '동장 직접 선출제'는 어떤 내용인가.
"시의회와 상의해 조례 등 법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시장 선거 때 공약사항이니 의회를 설득할 수 있을 거라고 본다. 전문가들이 개방직으로 지자체나 공공기관에 많이 들어오는데, 동작직도 한번 열어보자는 취지다. 행정의 또 다른 혁신을 불러오고 싶다. 만약 공무원들이 반발한다면 설득할 것이다. 주민자치회 매뉴얼을 바꿔내고 행정의 새로운 변화를 유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 인터뷰 질문에는 없어서 못 다한 이야기가 있다면.
"그동안 멈춤없이 달려왔던 성장이나 발전, 우리가 옳다고 느꼈던 모든 것들에 대해 한번쯤 되돌아볼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쉼없이 달려오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오류가 없었는지, 그것이 나한테 부여된 당연한 권리였는지, 그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한테 불이익과 불편을 주지 않았는지에 대해서. 저는 지금이 그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고도성장기가 멈췄고, 발전으로 모든 걸 설득할 수 없는 시기가 왔다는 걸 인정하고, 그에 맞는 도시전략을 세워야 한다."

- 고양시장으로서 105만 고양시민들께 한 말씀 한다면.
"고양시라고 하면 성장으로만 대변됐다. 그것이 누구를 위한 성장인지, 누구에게 득이 되는 건지 모르겠다. 저는 고양시장으로서 철저하게 105만 고양시민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정책을 펼치겠다. 고양시에 사는 사람들이 행복해야 고양시도 행복해진다. 잘 돌봐주시고 지원해주셔서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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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준 고양시장 ⓒ 이희훈

#고양시 #고양시장 #이재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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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대한 기사에 관심이 많습니다. 사람보다 더 흥미진진한 탐구 대상을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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