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촛불시위의 원조 동독, 통일 후 민주주의 현주소

[동독인의 독일통일 이야기 ④] 동독의 못다 핀 민주주의

등록 2018.10.03 19:50수정 2019.03.14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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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전, 동독의 한 교회에서 시작됐던 '월요시위'가 독일통일의 단초 역할을 했던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작은 기도회로 시작했지만 평화시위 형태로 동독 전체 지역으로 확산됐던 월요시위는 말하자면 '동독판 촛불시위'였다. 베를린 장벽 붕괴 30년이 돼가는 지금, 동독체제 붕괴에 일조했던 평화시위의 사례를 보여줬던 동독의 민주주의는 어떻게 되고 있을까?
 

1989년 11월 동독 라이프치히에서 개최되었던 평화시위 장면. ⓒ Gamlbeck, Friedrich

  
정치 체제의 근간이자 삶의 방식을 규정하는 기본 원칙인 민주주의 체제를 구 동독 지역에 안착시키는 것은 통일 과정에서 핵심 과제 가운데 하나였다. 이에 1990년대 초·중반 정치 체제, 정당, 국가기관 등 민주주의 체제를 구성하는 다양한 제도가 구 동독 지역에 구축됐다. 이를 통해 이미 통일 초반 동독 지역에 민주주의의 외형적 체제가 성공적으로 구축됐다.

그러나 구 동독 지역 민주주의의 실제 상황은 녹록지 않다. 통일 이후 언론을 통해 끊임없이 전해지는 동독 지역의 극우주의 관련 사건은 구 동독 지역 민주주의 상황을 보여주는 예시로 등장하는 단골뉴스다.

실제로 2015년 시리아 사태에 따른 난민 유입이 급증하던 당시 동독 지역의 난민수용시설에 방화사건이 발생하는 등 난민에 대한 극도의 거부 정서가 동독 지역에서 강하게 표출됐다. 지난 8월 말에는 동독의 한 지역에서 이민자·난민에 대한 적대감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대규모 시위가 개최되기도 했다.

더 거슬러 올라가 2007년 동독지역의 지방선거에서 독일 역사상 최저 선거참여율을 보이면서 동독 지역 민주주의에 대한 불안이 가중됐고, 심지어 2006년 독일 월드컵 당시에는 "유색인은 구 동독 지역에 가지 마라"는 경고가 나오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구 동독 지역에 민주주의가 제대로 뿌리내렸는가에 대한 회의의 목소리가 그치지 않고 있다. 동독지역의 민주주의 실험은 정말 실패한 것인가?

체제로서 민주주의는 OK, 하지만

통일 후 1991년 실시된 설문조사에서 70% 이상의 동독인이 민주주의를 가장 적합한 국가형태라고 평가하는 등 통일 초반 동독주민의 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입장은 대체로 긍정적이었다. 이전 체제에서 정치적 억압 등 개인 삶의 제한을 경험했던 동독인이 자유의 확대, 기회 균등 등을 원칙으로 하는 민주주의 체제에 대해 긍정적 반응을 보이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민주주의가 서독의 경제적 풍요와 동일시된 것도 그러한 인식이 형성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음은 물론이다.

한편, 구 동독 지역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는 구 서독과는 다른 양상을 보였다. 민주주의의 핵심 요소인 자유와 평등에 대한 인식에서, 서독인은 평등보다 자유를 중시 여긴 반면 동독인은 평등에 비중을 두는 경향을 보였다.

국가의 역할에 대한 인식에서도 차이가 나타났는데, 빈곤과 실업 같은 문제에 대해 국가가 사회적 평등을 위해 적극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의견에 79%의 동독인이 동의했다. 반면 서독인은 51%만 동의했다. 서독과는 상이했던 사회화 과정의 영향이 이러한 인식의 차이를 가져온 것이다.

이처럼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의 차이가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동독인은 민주주의 체제에 대해 높은 수용도를 보였다. 문제는 외형적으로는 잘 갖춰진 민주주의 체제가 제대로 작동하는 데 필요한 민주주의 인식이 동독 주민 가운데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2005년 독일연방의회 선거 당시, 훼손된 한 극우정당의 선거포스터. ⓒ 강구섭

 
통일 후 15년이 지난 시점인 2004년 실행됐던 몇몇 조사 결과는 동독 주민이 민주주의에 대해 여전히 제한된 이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일례로 동독 주민들은 대체로 민주주의 정치의 기본인 정치 주체 간의 논쟁, 정책 경쟁을 사회를 분열시키고 혼란스럽게 하는 태도라고 판단하는 경향을 보였다.

또한 민주사회의 일원으로 개인 의사를 표현하고 적극 참여하기보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하향식 정책결정 방식을 선호했다. 동독 주민의 상당수는 옳고 그름에 대해 직접 판단해주고 강력한 힘을 가진 권력자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국가를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태도를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주의를 경제적 풍요와 동일시하며 민주주의를 자기의 이익을 관철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이해했다.

통일 후 한 세대가 지난 오늘날에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민주주의 인식에 대한 2018년 조사 결과, 동독 주민 가운데 반다원주의적 인식이 여전히 강하게 나타났다. 난민에 대한 적대감을 공개적으로 표명하는 상황에서 나타났듯이 물리적 힘을 이용한 집단행동에 쉽게 동조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러한 반민주적 태도가 서독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동독 지역에서 훨씬 광범위하고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새로운 정치체제로서 민주주의를 이미 오래 전 수용했지만 민주주의 인식이 여전히 충분히 내면화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 인식 미비의 원인

통일 30년이 돼가는 지금까지 동독주민 가운데 민주주의 인식이 충분히 형성되지 못한 원인에 대한 여러 가지 설명이 제시되고 있다.

먼저, 동독 시절 습득한 정치에 대한 경험이 민주주의 인식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동독 시절, 정치는 개인이 존재기반에 대한 불안없이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기본 토대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인식됐다. 실제로 동독 주민들은 동독 시절 풍요하지는 않더라도 실업 같은 심각한 어려움을 경험하지는 않았다.

이러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 동독 주민은 통일 후 도입된 민주주의를 동독의 '정치'와 동일시했다. 결과적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제한된 이해가 형성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동독 출신 신학자이자 정치인인 슈뢰더는 '구 서독은 2차 대전 이후 경제부흥과 함께 민주주의를 경험했으나 동독의 경우 민주주의를 경제파산과 함께 경험했다'고 지적했다. 이런 과정에서 통일 후 대규모 실업에 직면한 동독 주민에게 자유를 강조하는 민주주의는 경영자의 이해를 대변하는 것으로 비쳤다. 결과적으로 민주주의가 실업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오히려 실업을 가져왔다는 인식이 생겼고, 민주주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강화됐다.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이 제대로 형성되지 못한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민주주의가 국가주도 형태로 이식됐다는 점에 있다. 동독 주민 스스로 만든 저항의 물결 속에서 시작됐지만 구 서독 주도로 통일 과정이 추진되면서 동독인은 수동적으로 따라가는 입장에 놓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새로운 체제에 대해 적극 숙고하기보다 새 체제가 경제적 풍요를 가져다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 속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충분한 논의과정이 생략됐다. 민주주의는 자발성을 전제로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급속한 통일과정에서 민주주의가 이식되면서 민주주의 인식을 근간으로 한 자생적 민주주의 문화가 형성될 수 있는 기회를 가지지 못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동독 시절, 정치를 그저 관망하는 것으로 충분했던 동독주민에게 민주주의의 자연스러운 과정인 토론과 논쟁은 삶의 안정을 깨뜨리고 갈등을 조장하는 비생산적인 것으로 이해됐다.

통일 이후 제도의 이식을 넘어 민주주의가 동독 지역에서 실질적으로 뿌리내리는 데 필요한 노력을 충분히 하지 않았다는 것 또한 중요한 원인으로 지적된다. 나치 국가사회주의에 이어 동독의 독재를 경험한, 다시 말해 민주주의에 대한 경험이 부재한 동독인들에게 민주주의는 전적으로 새로운 것이었다. 이들이 민주주의에 필요한 인식과 능력을 단시일 내에 습득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과제였다.

반면 동독 지역에서 민주주의가 뿌리내리 게 하는데 필요한 충분한 노력이 이뤄지지 못했다. 경제적 수준만 서독과 비슷해지면 다른 문제들은 자연스레 해결될 것이라는 기대 속에서 민주주의 정착에 필요한 노력을 소홀했다는 것이다.

정치 교육 등을 통해 동독 주민의 민주주의 인식 제고를 위한 노력이 있었지만 동독 주민은 그것을 동독 시절의 교화와 동일시하며 부정적 태도를 보였고 충분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제한된 인식이 민주주의 발전의 저해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낮은 민주주의 만족도에 터잡은 극우주의
 

2018년 8월 말, 동독지역의 반난민 시위 장면. ⓒ TV 화면 갈무리

 
민주주의가 개인이 가지고 있는 문제 해결에 크게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하는 동독 주민이 현실 민주주의에 대해 낮은 만족도를 보이는 것은 당연한 것일 수 있다. 1990년 60% 수준이었던 동독 주민 민주주의 만족도가 1993년에는 40% 아래로 내려갔고, 2000년 초반 50% 수준을 보였다. 2006년 라이프치히 대학 연구팀은 단지 27%의 동독주민이 민주주의에 대해 만족하고 있다는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2016년의 조사에서는 민주주의에 대한 동독주민의 만족도가 47%로 나타나 여전히 큰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서독은 77%). 민주주의에 대한 평가가 사회 경제적 상황에 대한 평가와 맞물려 이뤄지면서 계속 낮은 만족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이 민주주의 발전에 심각한 장애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낮은 만족도는 저조한 선거참여를 가져와 의회민주주의에 불안 요인이 되고 있고, 특히 근래에는 정치적 무관심과 냉소를 넘어 극우정당의 세력 확장에 유리한 조건으로 작용하고 있다. 반난민-독일우선주의를 외치는 극우주의 정당이 통일로 인해 피해를 보고 있다는 정서를 가지고 있는 동독 주민의 적극적 지지를 얻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2017년 치러진 연방의회선거에서 극우주의 정당(AfD)은 반난민 정서를 가지고 있는 동독주민의 지지를 주요 기반으로 기민/기사당 연합(CDU/CSU)과 사민당(SPD)에 이은 득표순 3위(12.6%)를 기록하며 독일의 극우정당 역사상 처음으로 연방의회에 진입해 독일 사회의 우려를 자아냈다.

현실 민주주의에 대한 동독 주민의 불만족이 민주주의 자체에 대한 거부감을 보여주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럼에도 민주주의에 대한 경험과 이해가 미비한 상황에서 경제적 요인과 같은 다른 요인의 영향을 받으며 민주주의가 흔들리고 있는 현재의 상황은 민주주의가 구동독 지역에서 아직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되고 있다.

통일 한반도 - 어떤 민주주의가 될 것인가

구 동독 재야운동가 출신의 가욱 전독일연방대통령은 '40년 이상 동독 독재체제에 순응하며 살았던 동독 주민이 과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며 민주주의가 금방 제대로 작동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고 평가했다. 동독 주민 사이에 민주주의에 대한 충분한 인식 형성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통일 후 동독 지역의 민주주의 사례는 위에서부터 시작된 민주주의가 어떻게 개인에게 인식되는지, 그 과정에서 사회 경제적 상황이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실제적 사례를 보여준다. 이는 통일 한반도의 민주주의는 어떠한 방향으로 추진돼야 하는가에 대한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

긴 세월을 넘어 장차 맞이할 통일 한반도에서는 어떤 민주주의가 자리잡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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