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전셋값의 1/3" 건설사 광고에..."기가 막혀"

지방민들 두 번 울리는 집값 양극화의 단면

등록 2018.10.02 15:08수정 2018.10.02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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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29일경, 서울 강남 고속버스터미널 경부선 방향의 한 건설사 광고판 앞에서 한 모녀가 기가 막힌듯 혀를 찼다.

"서울에 집 못 산 사람 약 올리는 건가요?"

김아무개씨(57)는 건설사 광고에 적힌 문구를 가리켰다.
 

고속버스터미널 경부선에 게시된 광고판 문구에 시민들의 지적이 이어졌다. ⓒ 정주영

 
안그래도 치솟는 집값으로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지방으로 내려가는 버스표를 끊었다는 김씨는 광고판 앞에서 분노한 듯 목소리가 커졌다.

"서울에서 전세로 살던 집이 매매가만 1년 새 3억이 뛰었어요. 그래서 저는 지방으로 쫓겨나는 입장인데, 정작 지방으로 가기 직전에 저런 문구를 보니 화가 나겠어요 안나겠어요?"

해당 광고판이 붙어 있던 경부선 터미널에서 버스표를 끊고 있던 시민들에게 반응을 좀 더 물어보았다.

경주에서 올라왔다는 윤아무개씨(50)는 "지방은 미분양 대란에 되레 내가 살던 집값도 내려가고 있는데.. 굳이 이런 (서울 아파트)집값 올랐다는 광고를 지방민들이 다수 이용하는 경부선 터미널에서 봐야 하는 게 불편하다"고 대답했다.

서울에서 대학교를 다니는 김아무개씨(23)도 "대학가 주변의 작은 고시원에서 간간이 지내는 입장에서 이런 광고 문구를 보니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된다"며, "(광고문구처럼) 강남 전셋값의 1/3도 없고, 취직도 안 되고 있어서 언제까지 서울에서 버틸 수 있을지 모르는 입장이라 기분 나쁘다"고 대답했다. 


정말 '강남 전세가격의 1/3 가격'이고 '마지막 기회'일까?

업계 관계자들은 이러한 분양 문구들을 볼 때는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2014년 공정거래위원회는 '연 수익률 20%', '900만원대로 만나는 강남 마지막 오피스텔', '1억에 강남 2채'와 같은 객관적인 근거 없이 수익률을 부풀리거나 적은 비용으로 투자가 가능한 것처럼 광고한 21곳의 분양 사업자에 대해 시정조치 명령을 내렸다.
 

2014년 공정거래위원회에 허위과장 광고로 시정명령 받은 분양광고 유형 ⓒ 국민일보

지방민들에게 '유독' 불편하게 다가오는 건설사 광고

한편 왜 지방 시민들에겐 터미널에서의 해당 문구가 유독 불편하게 다가왔을까. 

고강섭 한국청년정책연구원은 "자신의 처한 환경과 동떨어진 광고를 보면서 많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되는 것으로 이는 곧 정부의 부동산정책 비판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며, "이러한 상대적 박탈감은 인생의 실패, 패배로 인식하는 상황으로 확대될 수 있으며, 이는 곧 사회문제화로 확대 될 가능성을 내포"한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건설사들의 이러한 과도한 강남 지역 부동산 시장 자극 현상에 대해 "경제계급의 격차를 통한 물적 우월감 혹은 상급 경제계급에 들어갈 수 있다는 헛된 희망을 시민들에게 가지게 함으로 심적 우월감을 느끼게끔 매매를 부추키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비판했다.
 

특정 과밀 지역인 강남에 대한 건설사들의 과도한 투자 권유 문구들 ⓒ 정주영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이러한 문구들이 불편하게 다가오는 것이 "결국 투기하는 남을 욕하면서, 정작 자신도 일정 부분 투기하고 싶은 심리가 있는 것"이라고 분석하면서, "사회 전반적으로 양극화가 모방의 단계를 넘어 학습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양극화의 쓴 맛은 어느 정도일까?

수도권 집값이 더 오르기 전에 사라던 모 건설사 광고에 불쾌함을 느꼈다던 모녀는 십여분 뒤에 대구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결국 서울은 저한테 맞는 곳이 아니었나봐요. 분수에 맞게 지방에 내려가서 살아야죠."

그러면서 광고판이 있던 쪽을 다시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 내려가면 어쩌면 마지막 기회를 놓친게 아닐까 싶어요."
#지방민 #집값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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