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 놓지 않았어?' 백화점 직원 여전히 서있다

[현장] 서비스 노동자들 "우리에게도 앉을 권리가 있다"

등록 2018.10.02 12:21수정 2018.10.02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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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오전 10시 서울 중구 명동 롯데백화점 본점 정문 앞에서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이하 서비스연맹)이 기자회견을 열고 서비스 노동자들의 '앉을 권리' 보장을 촉구했다. ⓒ 신지수

 
백화점에서 화장품을 판매하고 있는 김연우씨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부동자세로 20년 넘게 일하고 있다. 어깨는 굽어 오고 다리도 저려오지만 앉을 수 없다. 매장에는 직원용 의자가 3개나 있지만 앉을 수 있는 시간이 정해져 있다. 손님이 화장품 상담을 위해 고객용 의자에 앉을 때다. 손님의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그때만 앉는다. 고객이 떠난 순간, 김씨도 일어난다. 의자는 사실상 '투명의자'가 된다.

"대기 자세를 해야 고객이 왔을 때 눈을 마주치고 응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영업시간 내내 서서 일을 하다 보니 하지정맥류, 무지외반증, 허리디스크 등 건강에 문제가 생긴다. 백화점에서 서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화려한 건물 안에서 병들고 있다."

백화점·면세점·대형마트 등에 의자가 비치된 지 10년이 지났지만 많은 서비스 노동자들이 여전히 서서 일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이하 서비스연맹)은 2일 오전 10시 서울 중구 명동 롯데백화점 본점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비스 노동자들의 '앉을 권리' 보장을 촉구했다.

노동·시민사회단체는 지난 2008년 '서서 일하는 서비스 노동자들에게 의자를'이라는 캠페인을 벌였다. 그 결과 몇몇 매장에 의자가 놓였다.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에 의자를 비치하라는 규정도 마련됐다. 하지만 강제성이 없어 여전히 의자 없이 일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면세점에서 20년째 근무 중인 김인숙씨는 "면세점 특성상 최소한의 공간에 최대한의 상품을 집어넣고 최대한의 매출을 올리려고 한다"라며 "의자를 놓는 공간은 고려되지 않는다"라고 했다.

김씨는 이어 "그(의자가 놓일) 공간에 집기나 물건 하나라도 더 진열하려고 한다"라고 했다. 그러다보니 경력에 따라 '직업병'이 따라 온다고 했다. 그는 "5년 일하면 족저근막염이 생기고 10년 경력을 쌓으면 허리 통증, 20년이면 디스크 판정을 받는다"라고 했다.


그나마 쉴 수 있는 공간인 휴게실도 '그림의 떡'인 경우가 많다고 했다. 김씨는 "9층, 10층에 근무하는데 휴게실이 지하 1층에 있는 경우도 있다"라며 "한 번 다녀오는데 왕복 20분이 걸린다"라고 했다. 그는 "그래서 비상계단에 잠깐 앉아있거나 2,3층 위에 있는 직원 식당에 가서 있는다"라고 했다.

김경자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은 "10년 동안 서비스연맹 노동자들이 중심이 돼 앉아서 일할 권리를 달라고 이야기했고 실제로 의자가 놓였다"라면서 "하지만 소비자로서 마트나 백화점에 갔을 때 앉아있는 노동자를 본 적이 없다"라고 했다. 김 수석부위원장은 "어떤 노동자가 앉아서 일을 하고 있느냐"라며 "이미 앉을 권리가 있다고 10년 전에 확인했지만 현장은 전혀 달라진 게 없다"라고 지적했다.

의자가 있어도 앉지 못 하는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서비스연맹 소속 노동자들은 지난 1일 오후 3시에 '의자앉기 공동행동'에 돌입했다. 강규혁 서비스연맹 위원장은 "매장에 놓인 의자는 전시용으로 전락했다"라며 "눈으로만 볼 수 있다. 고객이 없는 시간에도 앉을 수 없다"라고 했다.

강 위원장은 이어 "일부 대형 유통매장들이 조치를 취하고 있다지만 그마저도 노동부에 제출하기 위한 형식적인 조치라고 생각한다"라며 "의자와 휴게실 등을 점검해 열악한 곳들은 고발 조치 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앉을 권리 #투명의자 #서비스노동자 #백화점 #면세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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