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구 없는 카운터... 야간노동자는 두렵다

[주장] PC방·편의점 폭력범죄 5년 간 1만 건... 이대로는 사고 반복된다

등록 2018.10.29 10:59수정 2018.10.29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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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오전 서울 강서구의 한 PC방 앞 흉기 살인사건으로 목숨을 잃은 아르바이트생을 추모하는 공간에 추모하는 국화가 놓여 있다. 지난 14일 서비스가 불친절하다는 이유로 아르바이트생을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김성수 씨는 이날 공주 치료감호소로 옮겨져 길게는 한 달간 정신감정을 받는다. 2018.10.22 ⓒ 연합뉴스


분노가 높다. 여태 참여자가 100만 명이 넘는 청와대 국민청원은 없었다. 강서구 PC방 알바노동자 피살사건이 격발한 요구는 가해자에 대한 '정당한 처벌'로 집중되고 있으며, 심신미약 감경을 둘러싼 논쟁으로 번지고 있다. 

정작 무엇 때문에 이 사건이 벌어졌는지, 밤에 손님을 접대하는 알바들의 처지가 어떠한지, 유사한 범죄를 막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말하는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살인의 잔혹성에만 집중하면서 가해자를 괴물로 만들어나가는 보도만이 넘쳐난다면, 가해자를 사회에서 말살하는 것으로 사태는 종결되고 만다. 이것으로 끝내지 않으려면 좀 더 진전된 논의와 요구가 필요하다.

무방비 상태

경찰청 범죄통계에 따르면 지난 5년간 편의점, PC방에서만 1964건의 강력범죄가 벌어졌다. 살인은 8건, 강도는 762건 있었다. 폭력범죄는 1만2108건 일어났는데 상해가 1597건, 폭행 및 폭력행위는 8054건 있었다. 따로 야간 통계를 내지는 않고 있으나 대체로 전체 강력, 폭력 범죄의 절반은 저녁 9시부터 다음날 오전 6시 사이에 벌어진다는 점을 감안해서 추정해볼 수 있다.

또한 숙박업소, 목욕탕, 주점 등에서 일어나는 강력범죄는 편의점, PC방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수준이며, 여기서 일하는 상당수 알바노동자가 피해를 입은 것으로 짐작된다.
 

5년간 PC방, 편의점에서 벌어진 강력, 폭력범죄 <출처: 경찰청 범죄통계> ⓒ 최기원


알바노조가 지난 2017년 편의점 알바노동자 40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절반 이상(54.5%)이 근무중 폭언·폭행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그중에서도 '폭행'을 당했다고 응답한 비율은 7.9%였다. 폭행이 발생한 시간대로 범위를 좁혀 보면 야간 근무자의 응답률은 12.2%로, 주간 근무자(6%)보다 두 배가량 높았다. 야간노동자가 더 위험한 상황에 노출됐다는 걸 보여준다. 

예방을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 CCTV 감시와 본인 휴대폰을 이용한 신고만을 의지한 채 불행이 엄습하지 않기를 바라는 현 수준에서는 벗어나야 한다.
 

흔한 편의점 카운터의 모습. 접이식 출입구밖에 없어 위험에 처했을 때 탈출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 ⓒ 최기원


우선 야간영업장과 우범지역을 중심으로 범죄예방환경설계(CPTED) 기준을 적용한 인테리어를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 흔히 '셉티드'로 알려진 이 기준은 선진국에서는 조례 등의 형태로 광범위하게 적용되고 있다. 적절한 조도를 설정하고 내부가 보이도록 하며 효과적인 카메라 배치와 탈출구를 설계하고 간편한 신고시스템을 갖추는 노력만으로도 비극을 막을 수 있다. 사방이 막힌 카운터와 신고가 불가능한 환경에서 꼼짝없이 당하게 된다는 점을 유념하자.   

현장에서 폭력과 분쟁을 일으키게 하는 제도들이 있는데, 이 역시 들여다봐야 한다. 대표적으로 봉투값 문제가 있다. 20년 된 제도지만 여전히 이 때문에 갈등이 벌어진다. 지침에 따라 정당하게 소비자에게 봉투값을 요구하면, 공짜로 주는 곳도 많은데 왜 값을 받느냐는 식이다.


별 것 아닌 문제가 갈등과 폭력으로 번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비슷한 문제로 편의점 음주나 미성년자 주류판매를 둘러싼 갈등이 있다. 이런 문제는 공익을 위한 제도라고 해도 일방적으로 감정노동을 알바에게 전가시키는 방식으로 관철되었기 때문에 야기되는 것이다. 

또한 최근 제정된 감정노동자 보호법이 실효성있게 시행될 수 있게 해야 한다. 손님의 폭언이나 폭행에 사업주가 적극적으로 노동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취지다. 법에 따르면 사업주는 고객응대지침을 마련하고 사건이 터지면 노동자가 작업중단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해결과 치료를 위한 부담 역시 지원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알바노동자 대부분은 여전히 이 법의 존재를 모른다. 계도가 필요하거니와 하청 및 파견으로 일하는 알바들에게도 제대로 적용되지 않으면 유명무실한 제도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다. 사장님 눈치 보지 않고 재량을 갖고 대응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예방이 중요하지만 피해보상과 단속 역시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특히 알바노동자들은 주취폭력에 따른 고통을 많이 호소한다. 이런 신고가 너무 많기 때문에 경찰도 모든 사안에 대해 효과적인 대응을 할 수 없는 상황으로 보인다.

지나치게 경찰의 권한을 강화시키는 방향은 경계해야 하나, 적어도 위협적인 상황에 대한 대비가 철저할 수 있도록 단지 당사자를 쫓아내는 것만으로 상황을 종결시키는 것을 방치해서는 안된다. 피해가 발생할 경우 산재보험은 물론, 상해보험으로 충분한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의무가입을 보장해야 할 것이다. 

이익 얻은 이가 안전비용도 분담해야
 

가맹점이 재주를 부리고 프랜차이즈는 돈을 번다. <자료출처: 공정거래위원회> ⓒ 최기원


언급한 제도와 안전조치에는 필연적으로 비용이 발생한다. 범죄예방 인테리어를 적용하고 상해보험에 가입하고 의무적인 계도와 안전교육을 위해서는 누군가가 이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지금까지 야간노동에 대한 부담은 철저하게 현장의 알바노동자나 자영업자의 몫이었다. 이 비용을 야간노동을 강제하거나, 이를 통해 수익을 얻는 주체가 부담하게끔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야간노동을 강제하다시피 하고 이를 통해 막대한 수익을 올리는 프랜차이즈 본사가 바로 그 당사자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 야간영업을 기반으로 야간에 수익을 창출하거나 서비스를 향유하며 편익을 얻는 이들이 있다. 야간노동의 수혜자가 야간노동자의 안전에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제도로 집행해야 한다. 이 비용을 우리 사회가 크게 느낄수록, 위험할 뿐더러 건강에 해로운 야간노동을 점차 지양해 나갈 수 있다. 

사건을 상기할수록 가슴이 저리고 아프고, 또 분노가 치민다. 일어난 사건에 시비를 가리고 타산지석으로 삼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수만 명에 달하는 야간알바노동자들은 여전히 불안하고 상시적인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다시 이런 소식을 듣지 않을 수 있도록 분석하고 대책을 수립하는 일을 잊어서는 안 된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강서PC방 알바노동자 피살사건 #PC방 #편의점 #범죄 #알바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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