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명의 페미니스트들, 그리고 또 한 명은

세상을 바꾼 위대한 여성들 '페미니스트 99'

등록 2018.11.29 08:47수정 2018.11.29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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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호주제 폐지 운동에 관한 기사를 썼을 때 달린 악플은 '악질 페미'였고, 유림들은 공청회장 입구에서 내 손목을 비틀기도 했다. 미투 운동이 시작되자 '여자가 행동을 어떻게 했길래'라며 여성에게 책임을 돌렸다. 낙태죄 폐지 운동이 시작되자 '성 관계는 하면서 임신과 출산은 거부하는 여성들의 일탈'로 몰아부친다.

이렇듯 대부분의 남성들은 페미니스트를 남성의 성역을 침범하거나 자신들의 권위에 복종하는 것을 거부하고 남성의 권리를 빼앗는 싸움꾼이라 생각한다. 사실은 남성 중심 가부장 사회가 만든 '여성다움, 여성성, 여성의 역할'을 넘어 평등한 사람으로 살 것을 선언하고 실천하는 휴머니스트들인데 말이다.   


사람답게 사는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용기있게 길을 낸 사람들, 자기 삶의 진정한 주인으로 사는 여성들과 그들을 응원하는 남성들이 페미니스트인 것이다. 여성은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자기 몸의 주인으로조차 살지 못하고 있다.

여성운동의 대모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자기 몸의 결정권을 스스로 선택한 페미니스트다. 그녀는 임신한 사실을 알았을 때 혼자 중절수술을 결정했고 낙태를 했다. 임신과 낙태는 여성의 몸에서 이뤄지지만 여성은 스스로 임신이나 원치 않는 생명을 낙태할 권리를 지니지 못한 채 산다.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중절수술 덕분에 그녀는 원치 않는 삶으로부터 벗어나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의 길을 선택할 수 있었다. 그녀는 낙태 16년 후 그 사실을 자신이 창간한 잡지 '미즈'를 통해 알리며 낙태 허용 운동에 힘을 보탠다. 그녀가 페미니스트였기 때문에 스스로 운명을 선택하고 자신이 원하는 삶의 지도를 그리고 그 길을 따라 간 것이다.
  

페미니스트99 세상을 바꾼 위대한 여성들의 인명사전 ⓒ 민음사

 
<페미니스트 99>의 부제는 '세상을 바꾼 위대한 여성들의 인명사전'이다. 책에는 여성에게 금단의 영역이던 스포츠, 과학, 예술, 문학, 언론, 여성운동에서 개척자로 길을 낸 여성들의 활약이 간략하게 백과사전식으로 나열되어 있다. 아쉽게도 아시아 여성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한국의 여성운동가는 단 한명도 없다.

서양인의 눈으로 본 한계일 것이다. 반면, 각 분야에서 선구자 역할을 한 여성들을 다양하게 소개하고 있어 흥미롭다. 그림과 간략한 소개는 그들이 가부장 사회가 만든 금기의 벽에 어떻게 도전하고 균열을 일으켜 마침내 그 벽을 부수고 삶의 지평을 넓혔는지 잘 보여준다.

아직도 남성 중심 사회이기에 여성이라는 이유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이 너무나 많다. 미국 최초의 외과 의사였던 메리 에드워즈가 바지를 입자 남자들이 남자 옷을 입는다고 비난했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난 남자 옷을 입는 게 아니예요. 내 옷을 입는 거죠." 미국 최초의 여성 외과의는 자신의 취향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녀는 당시에 유행하던 치렁치렁한 롱스커트와 여러 겹의 속치마가 거추장스러울 뿐 아니라 비위생적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 메리 에드워즈 워커(외과의사) 179쪽

모든 여성은 남성과 똑같이 자신이 원하는 길을 선택하고 그 길을 갈 권리가 있다. 비록 그녀가 흑인이고 노예의 자녀로 태어났다 할지라도 말이다. 흑인여성 인권가 소저너 트루스는 이렇게 연설을 했다고 한다.
 
 "여성은 탈것으로 모셔 드려야 하고, 도랑은 안아서 건너드려야 하고, 어디에서나 최고 좋은 자리를 드려야 한다고. 하지만 아무도 내게는 그런 적 없어요. 나는 탈것으로 모셔진 적도, 진흙구덩이를 지나도록 도움을 받은 적도, 무슨 좋은 자리를 받아본 적도 없어요. 그러면 나는 여자가 아닌가요?


날 봐요! 내 팔을 보세요! 나는 땅을 갈고, 곡식을 심고, 수확을 해왔어요. 그리고 어떤 남자들도 날 앞서지 못했어요. 그러면 나는 여자가 아닌가요? 나는 남성만큼 일할 수 있었고, 먹을 게 있을 땐 남성만큼 먹을 수 있었어요. 남성만큼이나 채찍질을 견뎌내기도 했어요. 그러면 나는 여자가 아닌가요?" - 소저너 트루스의 연설. 나는 여성이 아닌가요 중
 
누군가 용기를 내어 첫 걸음을 떼었고 또 누군가 그 발자국을 따라 걸어가 하나의 길이 되었을 것이다. 페미니스트란 남성들과 세상이 가로막은 장벽을 넘어 여성도 남성과 나란히 걸을 수 있다는 사실을 온몸과 마음으로 실천하며 길을 낸 사람들이다.

우리가 선 세상이 아직은 너무 깜깜해 길조차 보이지 않을 때, 우리 앞에 길을 낸 페미니스트들을 기억하며 힘과 용기를 내어 소신껏 길을 걷자. 언젠가 당신의 발걸음 또한 뒤따라오는 이들의 지표가 되어줄지도 모르니. 

길을 낸 아흔 아홉의 페미니스트들

메리 울스턴그래프트 & 메리 셀리. 시몬 드 보부아르. 제인 오스틴. 넬리 블라이. 에밀리 디킨슨. 버지니아 울프. 캐서린 햅번. 마돈나. 마리 퀴리 & 이렌 졸리오 퀴리. 에애다 러브레이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미셀 오바마. 간노 스가코. 오프라. 델 마틴 & 필리스 라이언. 포루그 파로흐자드. 사포. 바바라 조던. 해리엇 터브먼. 알렉산드리아 히파티아. 쿠사마 야요이. 에미 뇌터. 글로리아 스타이넘. 샌드라 데이 오코너. 왕가리 마티아. 마야 엔절루. 카티 콘. 둘로리스후에르타. 레이첼 카슨. 브런테 자매. 니나 시몬. 오마 봄백. 필리스 휘틀리. 비 아서. 프랜시스 퍼킨스. 어밀리아 에어하트. 메리 카사트. 도로시아 랭. 이사도라 던컨. 소저너 트루스. 조세핀 베이커. 윌리엄스 자매. 안네 프랑크. 미라발 자매. 베나지트 부토. 헬렌 켈러. 프리다 칼로. 말랄라 유사프자이. 거트루드 벨. 앤 & 세실 리처즈. 아이다 & 웰스. 샐리 라이드. 벨리 앱저그. 커사 나바게세라. 메리 에드워드 워커. 진싱. 줄리아 차일드. 메이 웨스트. 마샤P. 존슨. 글래디스 엘픽. 마리아 몬테소리. 제인 애덤스. 엘리자베스 1세.루비 브리지스. 마거릿 생어. 다베이 준코. 도로시 아즈너. 안나 폴리트콥스카야. 밤의 마녀들. 헬렌 헤이스. 엘리너 루스벨트. 힐러리 클린턴. 리제 마이트너. 푸시 라이엇. 루크라셔 모트. 후아나 이녜스 델라 크루즈. 오드리 로드. 윌마 맨킬러. 빌리 진 킹. 케라 워커. 루이자 매이 올컷. 셜리 치좀. 그림케 자매. 옐라 베이커. 페이스 스파티드 이글. 마거릿 헤밀턴. 루이즈 부르주아. 마를레네 디트리히.

페미니스트 99

줄리아 피어폰트 지음, 만지트 타프 그림, 정해영 옮김,
민음사, 2018


#페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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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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