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력 강해야 '민중의 지팡이'? 경찰도 아프다

[후기] 일반직 공무원보다 자살률 1.5배 높은 경찰, 아픈 마음 달래는 '공감힐링' 교육②

등록 2019.01.03 14:19수정 2019.01.03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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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선에서 근무하는 경찰도 소방관들만큼 업무상 스트레스에 노출되어 있다. 경찰은 강해야 한다는 사회 안팎의 인식으로 경찰들은 업무상 스트레스로 인한 고충을 털어놓으려 하지 않는다. 경찰청이 '마음동행센터'를 통해서, 경찰인재개발원은 '인권감성교육센터'를 통해서 경찰들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는 이유다. 본 기사는 2회에 걸쳐 경찰인재개발원 '공감힐링' 과정을 지켜본 기록이다. - 기자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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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아들은 절대 시키지 말라"던 그 경찰은 괜찮을까

경찰인재개발원 감성계발센터 강의실에 20여 명의 경찰공무원이 모였다. 강의 시간 전 경직된 모습은 강사의 자연스러운 터치와 몸동작 이후 훨씬 자연스럽고 여유로운 모습으로 변한다.

심화 과정인 사이코드라마 시간이다. 사이코드라마는 루마니아 정신의학자 '제이콥 레비 모레노'에 의해 처음으로 소개됐다. 일정한 대본이 없이 즉석에서 상황에 맞는 역할을 주고 말과 행동으로 표현하게 한다. 극이 진행되면서 억압된 감정과 내적 갈등이 표출된다. 역할을 바꿔 진행하는 역할 연기(role-playing)를 통해 타자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자신을 보며 상황을 통찰하고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천과 소품으로 감정을 표현한다. 자기의 장점, 버리고 싶은 감정 등을 천과 소품으로 표현하고 있다. ⓒ 권계영

 
권계영 사이코 드라마 전문가를 따라 가벼운 몸동작으로 마음을 연 이들은 둥글게 모여 스트레스나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강점을 떠올리고 그 강점을 상징할 수 있는 색을 고르는 것으로부터 시작했다. 색을 고른 이유와 자기의 강점을 말하고, 고른 색을 자기 앞에 놓는다. 알록달록한 색깔 천으로 원이 만들어졌다. 인간의 내면에 자리한 다양하고 복합적인 감정을 보는 것 같다.

이 원은 안전한 울타리 역할을 하고 이 구조 속에서 안전하게 치유적인 행위를 할 수 있다. 색깔 천 앞에 현재 경험에 장애가 되는 기억들을 상징하는 소지품이나 물건을 택해 상징적으로 놓는다. 과거의 막혔던 지점과 필요한 강점 등을 한두 문장으로 돌아가며 말한다.

사이코드라마는 참가자가 모두 함께하는 시간이다. 사이코드라마 전문가는 주인공의 상황에 적절하게 개입하거나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상처의 깊은 진원지를 스스로 탐색해 찾을 수 있도록 돕는다. 어릴 적 가족에 받은 상처, 가정을 꾸린 후 아내나 남편, 자녀에게 받은 상처, 사회생활을 하며 직무로 인해 받았던 충격 등 다양한 상처의 속살이 드러난다. 전문가는 '아! 라고 큰소리로 외치세요. 이 의자를 치세요. 더 크게 소리 질러요. 더 크게' 등 분노를 마음껏 표출할 수 있도록 이끈다


사이코드라마는 다양한 구성을 거친다. ▲ 감정을 대상화하기(색깔 천, 보조자) ▲감정 분출하기(신문지로 만 막대로 방석치기, 벽에 대고 소리 지르기, 울기 등) ▲ 역지사지 해보기(역할극을 통해 상대방이 되어 본다) ▲ 풀어내기(원망, 분노, 슬픔, 미안함. 서운함 등의 감정을 전한다) ▲ 화해하기(망자·가해자·피해자 등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전한다)

원망, 분노, 회한, 후회, 슬픔을 풀어내기 위해 망자가 등장하기도 하고 다양한 인물의 대역이 등장한다. 심지어 색색의 천으로 자신의 감정을 상징적으로 의자에 걸쳐 놓고 치워내는 과정을 통해 마음 속에 단단히 응어리진 분노를 말과 행동으로 풀어내는 과정이 여러 차례 이어진다.

사이코드라마가 진행되는 동안 크고 작은 상처에 동질감을 느낀 참가자들은 연신 눈물을 훔치고 당사자는 억눌렀던 감정이 풀어지며 어깨를 들먹이며 큰 소리로 울음을 터트린다. 감정을 추스를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시간을 준 뒤, 참가자들에게 그를 안아주고 토닥여주라고 한다. 더 많은 감동을 느낀 참가자가 스스로 나와 오랫동안 따뜻하게 안아주며 서로 치유를 경험한다.
  
인간은 누구나 상처를 안고 산다. 서로 다른 감정과 생각을 지닌 존재들이기에 부지불식간에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으며 살아간다. 때론 그 상처를 극복하지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거나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느껴 스스로를 사람들로부터 유폐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사람은 사회적 존재이며 상처를 주고받을지언정 사람들 사이에서 얽혀 서로를 보듬고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사회 전체가 아이들만이 아니라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모든 존재의 울타리가 되어야 하는 이유다.

트라우마에 시달리다 생의 마지막 결단을 하던 이들은, 사회적 울타리가 전무하다는 절망감과 손 내밀어 잡아줄 사람이 없다는 외로움을 더하며 죽음을 선택했을 것이다.

공감 힐링 과정 중 몸으로 신뢰를 배우는 시간에 누군가 나를 잡아줄 것이라는 믿음으로 뒤로 넘어져 보는 시간이 있었다. 처음에는 뒤에 받쳐 줄 사람들이 있지만 신뢰하지 못해 쉽게 넘어지지 못하고 주저하는 모습도 보였다. 시간이 지나자 주저하던 이들이 뒤에 자기를 받쳐 줄 든든한 지원군을 믿고 의심 없이 몸을 뒤로 눕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몸으로 신뢰를 배우고, 단단히 걸어 잠근 마음의 빗장을 풀고 마음을 열어 내밀한 상처를 드러내 놀라운 자기 치유를 경험하기까지는 세심하게 구성된 일관된 프로그램, 경험이 많은 전문 강사, 담담과목 담임교수의 열정과 헌신이 밑바탕이 되어야 한다. 교육 과정을 통해 상처를 극복할 열쇠를 쥔 사람들은 트라우마라는 옹이가 있지만 정신은 더욱 단단하고 건강해져 자가 치유능력을 갖게 될 것이다.

직무 특성상 죽음이나 변사체 자살 사건 등을 접할 확률이 많은 파출소 근무 경찰들은 교통사고나 강력 사건 사후처리 등 스트레스에 노출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들은 스트레스를 풀거나 호소할 곳이 없었다. 경찰은 정신력이 강해야 하고 믿음직해야 민중의 지팡이가 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약한 모습을 드러낼 수 없었던 것이다. 경찰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 업무상 받는 스트레스를 인권차원에서 관심을 가지고 풀어줘야 한다.
 

만델라 만델라에 담긴 소망은 건강한 경찰 공무원, 건강한 가족 구성원으로 사는 것이다. ⓒ 이명옥

 

김성희 경찰인재개발원 인권감성교육센터 공감 힐링 과정 담당 교수는 말한다.

"경찰인재개발원 감성센터 문을 연 지 5년째입니다. 처음에는 센터에서 문을 두드리고 참여를 호소하는 단계였다면, '인권감성교육센터'로 확대 개편된 이후 스스로 필요성을 느껴 신청하는 이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지금은 심사를 통해 더 시급하게 필요한 대상을 우선적으로 선택해 기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제 트라우마를 숨길 일이 아니라고 생각할 만큼 인식이 변화된 것이죠. 절망의 벼랑 끝에서 생을 포기하려 했을 때, 가족과 동료, 아니 이 사회 전체가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자신을 받쳐주는 힘이 된다는 확신이 있다면, 누구든 어떤 환경에서든 포기 대신 새로운 삶을 시작할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공감 힐링 과정은 그런 신뢰와 희망의 씨앗을 나누는 과정입니다."

  
희망의 씨앗을 가슴에 하나씩 품고 세상을 향해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는 이들은 결코 외롭지 않을 것이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도 않을 것이다. 상처받고 넘어질 때 손잡아 줄 이들이 있고, 상처받아 아파하는 동료와 선후배에게 자신이 전해줄 선물, 소중히 꽃피우고 열매를 맺을 희망 씨앗이 가슴에서 자라나고 있기에.
#사이코 드라마 #권계영 사이코 드라마 전문가 #공감 힐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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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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