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춤을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께 바칩니다"

'길원옥 할머니의 꿈' 만든 예화여고 댄스팀 다원

등록 2019.01.03 08:27수정 2019.01.03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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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여고 댄스동아리 다원. ⓒ <무한정보> 홍유린

 
13살 때 일본군에게 끌려가 4년이 넘는 고통 끝에 고국으로 돌아왔지만, 남은 건 만신창이 몸뿐이었던 길원옥 할머니. 그를 위로한 건 노래였다. 팍팍한 삶과 속절없이 가는 세월 끝에 90세의 나이가 돼서야 가슴 속에 묻어뒀던 '가수'라는 꿈을 이뤄낸 길 할머니.

한때는 꿈 많은 소녀였던 길 할머니의 인생이 우리 지역 학생들의 가슴과 머리, 손끝에서 재탄생했다. 예화여자고등학교 스포츠클럽 댄스팀 '다원'의 창작댄스 '길원옥 할머니의 꿈'.


지난 9월 15일 예화여고에서 열린 '충남도교육감배 학교스포츠클럽 창작댄스대회'에서 첫선을 보여 화제가 됐다. 고단했던 길 할머니의 삶을 온 몸으로 표현하면서 그들이 담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일까. 지난해 12월 4일 예화여고 체육관에서 '다원'을 만났다.

"어떤 주제를 해야 할지 각자 고민해오기로 했죠. 그러다 우연찮게 인터넷에서 길원옥 할머니의 영상을 보게 됐어요. 그걸 보는 순간 '이걸 해야겠다' 싶더라고요. 의미도 있고 연극처럼 꾸며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다른 단원들한테도 보여줬는데 만장일치로 통과. 바로 연습에 돌입 했습니다."

훈련부장 오지연(2학년)양이 당찬 목소리로 대회를 준비하게 된 배경을 풀어낸다.

다원이 공연을 준비하게 된 건 교육부와 문화관광부가 주관하는 '전국창작댄스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충남도대표 출전자격을 얻으려면 무조건 1등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학생들은 눈에 띄는 화려한 무대가 아닌 길 할머니의 삶을 전하는 울림 있는 공연을 선보였다.

단원들이 길 할머니의 삶을 온전하게 담아내기 위해 공들인 시간만 해도 한 달. 바쁜 시간을 쪼개가며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는 과정은 보람찼지만 '쉽지만은 않았다'고 고백한다.


단장 이해지(3학년)양이 지난날을 되돌아보며 "관객분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의미 있는 공연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조금 막막하기도 했죠. 회의도 많이 하고 계속 맞춰보고 점심시간, 쉬는 시간 가릴 것 없이 모여서 연습했던 것 같아요"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오히려 준비를 하다 보니 이런 고민들이 자연스럽게 사라졌어요. 막상 부딪혀보니 생각했던 것보다는 잘 풀리는 것 같아 뿌듯했죠. '우리 잘해' 서로 격려하고, 셀프칭찬도 하고요. 오히려 주제를 잘 정했다 생각했어요. 위안부 문제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됐으니까요"라며 속 깊은 이야기를 털어냈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아픔을 춤으로 표현한 예화여고 댄스동아리 다원. ⓒ 다원

  
하지만 고대했던 전국 대회의 문턱은 넘지 못했다.

"더 큰 모든 무대에 올라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줬으면 좋았을 텐데 아쉬웠죠. 그렇지만 저희가 이렇게 공연을 한 것 자체만으로도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 춤을 본 사람들 중 단 한명이라도 위안부 문제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면 성공한 거니까요"

아픈 과거로 맘껏 노래할 수 없었지만, 이젠 더 이상 위안부 피해자가 아닌 가수로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길원옥 할머니와 함께하려는 마음이 읽힌다. 임민규 지도교사는 "아이들이 준비해온 과정을 쭉 지켜보면서 울컥하던 때가 많았어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꿈과 성취를 진심으로 표현하기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해준 학생들에게 고마워요"라며 학생들을 향한 애정을 드러냈다.

뜻이 좋으니 예산중학교 축제, 삼국축제 등 찬조공연 무대에 초청돼 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무대를 시작하기 전에는 꼭 "마음으로 봐달라"는 당부를 한다고 한다. 기술적인 춤 실력을 뽐내려는 것이 아닌, 우리니들께 바친다"는 학생들. 다원 단원들이 전하는 따뜻한 온기가 전달되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충남 예산군에서 발행되는 <무한정보>에도 실립니다.
#위안부 피해자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고등학교 댄스동아리 #예화여고 댄스동아리 #예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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