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간부의 일갈 "바이백, 국가채무 연결은 허황된 것"

바이백 제도 도입 장본인 차현진 부산본부장 "정치이념 들어갈 여지 없어"

등록 2019.01.03 19:46수정 2019.01.03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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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가린 신재민 전 사무관 청와대가 KT&G 사장교체를 지시하는 등 부당한 압력을 가했다고 주장한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이 2일 오후 서울 강남구 한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마친 뒤 기자회견장을 나서고 있다.
얼굴 가린 신재민 전 사무관청와대가 KT&G 사장교체를 지시하는 등 부당한 압력을 가했다고 주장한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이 2일 오후 서울 강남구 한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마친 뒤 기자회견장을 나서고 있다.연합뉴스
       
"신한은행에서 100만원을 뽑아 우리은행에 그대로 예금한다고 해서 잔액이 바뀌는 건 아니잖아요? 국고채 바이백(재매입: buy-back)은 국가채무비율과 아무 관계 없는 문제입니다."

3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차현진 한국은행 부산본부장(전 금융결제국장)이 한 말이다. 그는 지난 1999년 정부가 바이백 제도를 도입할 당시 한국은행 직원으로서 참여했었다. 차 본부장은 "바이백은 어떤 정치적인 이념이 들어갈 수 없는 굉장히 기능적인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최근 바이백 문제가 정치 이슈로 확산되는 것을 경계했다.

앞서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은 2017년 말 문재인 정부 초기 청와대가 기재부 쪽에 바이백 취소를 지시했다고 폭로했다. 바이백은 채권 만기 이전에 이를 다시 사들이는 것을 말하는데, 예를 들어 정부나 기업이 3년 동안 빚을 갚기로 한 내용의 채권을 발행한 다음에, 이를 2년 만에 사들여서 빚을 줄이거나 청산하는 것이다.

통상 기재부는 매달 국고채 발행계획과 실적을 공개한다. 국채는 나라에서 재원을 조달하기 위해 발행하는 채권으로, 그 중 하나가 국고채다. 그런데 정부는 계획돼있던 1조원 규모의 바이백을 지난 2017년 11월 취소했다.

이에 대해 신 전 사무관은 바이백으로 박근혜 정부의 국가채무비율을 낮추면 이후 문재인 정부에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어 세수입이 20조원 이상 남았음에도 이를 취소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차 본부장은 애초에 바이백이 국가채무에 영향을 미칠 수 없기 때문에 이 같은 주장은 허황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바이백 하는 이유는 다시 국고채를 발행하기 위한 것"
 
 차현진 한국은행 부산본부장
차현진 한국은행 부산본부장한국은행
  
그는 "바이백을 하는 이유는 다시 국고채를 발행하기 위한 것"이라며 "바이백은 다시 채권을 발행하는 것을 포함하는 개념"이라고 말했다. 이어 차 본부장은 "이를 통해 1억 원을 갚고 다시 1억 원의 국고채를 발행하면 국채 잔액은 바뀌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국채 규모는 항상 일정하게 유지되며, 정권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오히려 차 본부장은 바이백을 취소한 것보다 바이백 제도가 활성화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지난 2일 페이스북에서 "만일 (기재부가) 바이백을 자주 실시했다면, 2017년 바이백을 갑자기 취소한 것이 아니라 그동안 자주 실시한 것에 대해 대대적으로 감사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오마이뉴스>와 통화에서 그는 "바이백을 했다는 것은 '바보짓'을 했다는 걸 자인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10년짜리 채권을 발행한 뒤 5년 만에 이를 갚는 것은 정책적 판단의 실수를 인정하는 것과 같다는 얘기다. 통상 채권의 만기가 길수록 이자가 높기 때문이다.


차 본부장은 "고속도로를 건설하는데 1조원이 들고, 통행료 징수로 (돈을 거둬들이는 데) 10년이 걸린다고 하면 10년짜리 채권을 발행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그런데 5년 만에 이를 갚게 되면 실질적으로는 돈을 5년 동안 꿔놓고 10년짜리 채권으로 돈을 빌리게 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만약 정부가 이를 5년 안에 보전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면 낮은 이자의 단기채권을 발행해 세금을 아낄 수 있는데, 바이백이 활성화되면 이 같은 판단이 흐려질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바이백 취소가 아니라 오히려 활성화가 문제"
 
 (서울=연합뉴스) 김동연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이 9일 서울 명동 은행연합회에서 이주열 한은총재와 티타임 회동에 앞서 악수하며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2018.2.9 [기획재정부 제공=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김동연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이 9일 서울 명동 은행연합회에서 이주열 한은총재와 티타임 회동에 앞서 악수하며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2018.2.9 [기획재정부 제공=연합뉴스]연합뉴스

과거 바이백 제도 도입 때 차 본부장은 이러한 문제를 경고하기도 했다. 그는 "당시 정부에서 바이백 도입에 대해 어떻겠느냐고 물어봐 '일부 선진국에서 하는 일이지만 적절한 방법은 아니어서 최소화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전달했었다"고 말했다. 자칫 정부가 무계획적으로 높은 이자의 장기 국고채 발행을 남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차 본부장은 "바이백은 국가채무비율과 아무 관계 없이, 시장 참가자들의 요구에 따라 할 수도 있는 것이라는 판단 아래 도입됐다"며 "정치적 이슈로 부각될 것이 전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바이백에 대한 판단은 전적으로 발행당국(기재부)이 하는 것"이라며 "이를 할 수도, 안 할 수도, 혹은 취소할 수도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바이백을 갑자기 취소해 시장에 충격을 주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이로 인해 국가채무비율이 달라졌다는 것은 전혀 다른 얘기"라고 차 본부장은 부연했다.

또 그는 초과세수가 발생해도 이를 반드시 국채 상환에 써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차 본부장은 "기업이 갑자기 휴대전화를 많이 팔았다고 해서 (벌어들인 돈으로) 빚을 모두 갚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예를 들어 이자율 2.7%의 채권으로 자금을 조달한 경우 남은 세금으로 땅을 개발하거나 도로를 닦아 생기는 국가적 이익이 2.7%를 넘는지가 중요한 것"이라고 부연했다. 차 본부장은 "돈이 생기면 빚을 갚아야 한다는 도그마에 빠져 얘기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며 "유연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바이백 #기재부 #신재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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