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수 유지에 석패율 도입? 나는 반대한다

[주장] 일본식 선거제도는 문제점 많아... '샛길' 말고 '대로'로 가야

등록 2019.01.15 17:57수정 2019.01.16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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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제 협상에서 의원수가 쟁점으로 되고 있는 가운데, 2015년 중앙선관위가 제안했던 "권역별 비례대표제와 석패율 제도"가 '부활'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여당 내에서 의원수를 유지한 채 지역구를 축소하고 대신 석패율을 도입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현역의원의 기득권 보장"... 일본식 석패율 비례대표 제도

석패율 제도란 1위 후보와의 득표율 차이가 적게 나면서 패배한, 즉 석패한 후보를 우선 구제한다는 취지에서 도입된다고 설명된다. 언뜻 상당히 설득력이 있는 제도인 것처럼 들린다.

석패율 제도를 도입하고 있는 대표적인 국가는 바로 일본이다. 일본은 소선거구와 비례대표를 중복 입후보할 수 있기 때문에 소선거구 비례대표의 '병립제'로 칭해진다. 여기에서 소선거구에 입후보하는 후보자는 그 선거구가 포함된 권역의 비례대표 선거에 입후보할 수 있고, 소선거구에서 낙선해도 비례대표 순위에 따라 비례대표로 될 수 있다. 즉, 소선거구에서 낙선할 경우 당선자의 득표에 대한 득표 비율로 비례대표 당선자를 결정하게 된다.

그리하여 결국 비례대표 상위 순번에만 오르게 되면 당선은 "따놓은 당상"이 된다.
하세헌 교수의 "일본형 소선거구 비례대표 병립제의 특징과 정치적 효과" 논문에 따르면, 실제 일본 비례대표 당선자의 반수 정도는 소선거구 출마자로서 2005년 선거에서 117명의 소선거구 낙선자가 비례대표로 '부활'했으며, 2009년에는 97명이 '구제'되었다.

더구나 일본에서 현역의원들이 소선거구와 비례대표에 중복 입후보하는 비율은 96% 내외로서 현역의원들의 기득권은 철저히 보장되는 반면 정치신인의 등용 기회는 현저하게 축소, 봉쇄된다.

극심한 불신을 받고 자질이 너무 떨어지는 정치인을 유권자들이 낙선시켜도 비례대표 상위권에 배치됨으로써 그는 거뜬히 '부활'하게 된다. 유권자들의 유일한 무기인 선거에 의한 '심판'조차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래서 일본에서조차 비례대표제도에 의한 부활 당선이 "거물급 정치인의 보험용 선거"라는 비아냥까지 나오고 있고, 정치 신인의 정계 진출을 막는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따가운 비판을 받고 있다.


'권역별 비례대표제' 역시 거대 정당에 유리하다

한편 중앙선관위는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권한 바 있고, 현재 주요 정당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전국 47개 광역단체를 홋카이도, 도호쿠, 남간토, 도쿄, 북간토, 호쿠리쿠신에쓰, 도카이, 주고쿠, 긴키, 시고쿠, 규슈 등 11개 권역으로 나눠 별도의 비례대표를 선출하는 권역별 비례대표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일본에서도 권역별로 나뉜 이러한 제도에서 거대 정당은 득표율에 비해 의석 배분에서 이득을 보는 반면 군소 정당들은 손해를 보고 있다.

이에 반해 독일의 경우 주별로 정당 명부를 작성하되 각 정당의 의석수 배분은 전국을 하나의 선거 단위로 하여 각 정당이 얻은 제2표의 득표율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비례성이 보다 정확하다. 기본적으로 비례대표제란 선출 단위의 의원 정수가 많을수록 득표율과 의석수의 비례성이 증대된다. 그러므로 전국 단위가 아니라 권역별로 나뉜 비례대표 제도는 비례대표제도의 도입 취지 자체를 퇴색하게 한다.

더구나 모두 인정하는 것처럼 지역분열이 심각한 우리나라에서 일본식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시행할 경우 지역분할 구도가 더욱 심화할 우려가 크다. 그리하여 애초의 기대와 달리 특정 정당의 특정 지역 비례대표 싹쓸이 현상을 초래하기 쉽고, 이로써 그 지역지배 구도를 더욱 심화시키고 고착화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점이 충분히 예측되기 때문에 실제 어느 정당에서는 한 정당이 2/3 이상의 비례대표를 독점할 수 없다는 상한선까지 제시한 바 있었다. 하지만 득표율을 부정한 의석수의 강제할당은 표의 등가성을 본질로 하는 평등선거 원칙과 득표율에 비례하는 의석수 배분에 토대한 비례대표제의 취지 그리고 정당민주주의에 반하는 위헌적 발상일 뿐이다(정연주, "현행 국회의원 선거제도의 비례성 증대 방안" 참조).

연동형 비례대표 시행에서는 초과의석의 문제도 제기된다. 이 점에 있어서도 권역별이 아니라 전국을 하나의 선거 단위로 하는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뉴질랜드가 연동형을 채택했지만 초과의석이 발생하지 않은 이유는 바로 전국 단위 방식을 적용했기 때문이었다.

눈앞의 작은 이익을 버리고 민주주의의 대로를 걸어라

결국 의원수를 유지하는 방식은 어느 경우든 현역 정치권의 기득권 보장으로 귀결된다. 의원 정수를 늘리고 연동형으로 비례성을 강화하는 방식만이 지지율과 의석수를 정확히 반영함으로써 평등선거의 원칙, 대표의 정확성과 비례성을 담보하는 방안이다.

샛길에 있는 눈앞의 작은 이익을 버리고 민주주의의 대로(大路)로 나아가 국민의 신뢰를 얻는 큰 정치를 실현해야 할 일이다.
#의원수 #석패율 #연동제 #권역별비례대표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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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관계학 박사, 국회도서관 조사관으로 근무하였고, 그간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 등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해왔다. <이상한 영어 사전>, <변이 국회의원의 탄생>, <논어>, <도덕경>, <광주백서>, <사마천 사기 56>등 여러 권의 책을 펴냈다. 시민이 만들어가는 민주주의 그리고 오늘의 심각한 기후위기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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