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이 지옥길 된 사나이 "양승태 재판거래만 없었어도"

[인터뷰] 콜텍 해고 노동자 김경봉씨

등록 2019.01.26 20:00수정 2019.01.26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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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해고 13년' 콜텍 기타노동자 끝장투쟁 돌입 정리해고 13년째를 맞은 통기타 제조업체 콜텍 노동자 끝장투쟁 돌입 기자회견이 8일 오전 서울 광화문 세종로공원에서 열렸다. 기타 모형을 멘 해고노동자들이 낙원악기상가를 지나 행진하고 있다. ⓒ 권우성

 
그날은 여느 때와 다르지 않았다. 그는 이른 아침 통근버스에 올랐다. 충남 계룡시에 있는 콜텍(콜트악기 자회사) 대전공장으로 출근하기 위해서다. 회사에 도착하니 문이 잠겨 있었다. 한 주를 시작하는 월요일인데... 그랬다. 뭔가 잘못됐다는 걸 직감한 건 두 장의 안내문을 보고서다. 거기엔 이렇게 쓰여 있었다.
 
2007년 4월 9일~7월 9일까지 휴업 후 7월 10일 폐업, 희망퇴직을 할 경우 퇴직위로금 지급하며 불법집회 시 법적 책임을 물을 것
 
2007년 4월 9일 그가 해고된 날이다. 겨우내 얼었던 세상이 녹아내리는 봄이었고, 들판엔 새싹이 돋아나던 계절이었다. 그 후 12년 그의 삶에 봄날은 찾아오지 않았다. 부당한 해고에, 차가운 현실에 맞서 풍찬노숙하며 4376일째(24일 기준) 거리투쟁 중이다. 그는 콜트콜텍 해고 노동자 김경봉(59)씨다.

그의 마지막 출근길은 생지옥 길이 됐다. '국내 최장기 투쟁'이라는 역사를 쓰게 됐다. 까만 머리카락은 파 뿌리가 됐고 40대 중반의 나이는 이제 환갑을 바라보고 있다.

24일 김경봉씨를 만났다. 콜텍 본사가 있는 서울 강서구 등촌동 농성장에서다. 지독한 싸움을 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조퇴나 월차 한 번 쓰려면 자존심 내팽개쳐야"

- 콜텍에서 어떤 일을 했나?
"기계반에서 일했다. 기타가 완성되기까지 모든 재료를 만들어내는 업무였다. 뭐든지 기초가 튼튼해야 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스스로 가장 중요한 부서에서 일했다고 생각한다. 하하.

그러나 숨 막히는 일터이기도 했다. 공장은 분진과 유독가스가 자욱했다. 이런데도 회사는 마스크 하나를 주며 '아껴 쓰고 다시 쓰고 빨아 쓰라'라고 했다. 아이가 아프거나 애경사가 있어 조퇴나 월차를 한 번 쓰려면 자존심을 내팽개쳐야 했다. 먹고살기 위해 손가락이 잘리고 손톱이 벨트에 깎여 흉해지면서도 때론 노예처럼, 때론 기계처럼 일했다."

- 노동조합이 무리한 요구와 파업을 해서 콜트악기가 폐업했다는 말이 있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고 노예가 아니라 노동자다. 더는 열악한 환경에서 일할 수 없어 용기를 내 지난 2006년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1년 동안 노동자의 권리를 찾기 위해 활동했지 무리한 요구를 한 적은 없다.


관리자 입맛에 따라 호봉표도 없는 월급을 줬다. 최저임금도 지켜지지 않았고, 잔업수당도 안 줬다. 일하다 화장실에 갈 때도 허락을 받아야 했다. (임원은) 여직원들에게 성희롱 발언도 아무렇지 않게 했다. 노동조합이 만들어지고 나서야 직원들 얼굴에 웃음이 찾아왔다.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가 '노동조합이 무리한 요구와 파업을 해서 콜트악기가 폐업했다'는 말을 했다가 (지난 2016년 8월 26일) 국회에서 공개 사과했다. 물론 그의 사과는 자발적인 게 아니었다. 법원이 강제조정 명령을 내렸기에 한 거였다. 보수언론도 비슷한 보도를 했다가 줄줄이 정정보도 했다. 이게 펙트(사실이)다."

"아이들 제대로 뒷바라지 못한 게 가장 힘들어" 
 

콜텍 정리 해고자 김경봉(59)씨 ⓒ 신유아

 
- 왜 부당한 해고라고 생각하나?
"박영호 사장은 허구헌 날 적자 타령을 했다. 근데 나중에 재무제표를 보니 한해 흑자가 100억 원을 넘을 때도 있었다. 이런데도 바지사장을 만들어 폐업 수순을 밟았다.

정당한 해고는 몇 가지 요건을 지켜야 한다.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와 해고 회피 노력이다. 해고대상자를 합리적이고 공정하게 선정했는지, 근로자 대표와 협의를 했는지도 필요조건이다.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출근했다가 공장이 폐업했다는 걸 알았고 해고됐다. 어느 하나 지켜진 게 없다."

- 대법원에서는 콜텍 정리해고가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미래에 도래, 아니 잠깐만요. '미래에 올지 모를 경영상의 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정리해고는 정당하다'라고 했다. 말도 어렵다. 세상에 이런 말이 어디 있냐. 이런 논리라면, '미래에 아이가 다칠 수 있으니 낳지 말아야 한다'라는 말과 뭐가 다르냐. 이런 판결은 사법부의 미래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

- 13년째 농성을 하면서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인가?
"아이들 뒷바라지를 제대로 못 한 것이다. 아이들이 한창 클 때 곁에 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2008년 첫째가 대학교 휴학을 했다. 둘째가 대학에 가야 하는데 두 명의 등록금을 대줄 형편이 안 됐다. 셋째는 초등학교 5학년이었다. 뒤틀린 생활에 아이들 역시 고통이 컸다. '내가 왜 친구들보다 뒤늦은 출발을 해야 하냐'라는 원성에 미안하고 할 말이 없었다.

아내한테도 미안하다. 이런 불만을 혼자서 감당하느라 고생이 많았다. 어떻게 보면 나보다 아내가 더 힘들었을 것이다. 넉넉하지 않았지만 내 몸 움직여 일하면서 부끄럽지 않은 아빠였다. 정리해고가 모든 것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 즐겁거나 행복했던 기억은 없는가?
"4376일째(지난 24일 기준) 농성을 하면서 아픈 기억만 있는 건 아니다. 가장 즐거운 건 밴드를 하게 된 것이다. 그동안 기타를 만들 줄만 알았지 연주할 줄은 몰랐다. 음치였다. 하지만 장기 농성을 하면서 문화예술인들을 만나고, 우리의 이야기(콜텍 정리해고)를 알리기 위해 밴드를 결성해 공연하게 됐다. 지금은 '베이스(bass guitar)봉'이라고 불린다. 전에는 꿈도 못 꾼 연극을 하고 영화도 찍었다."

"농성이 힘들어 다른 직장 가려했는데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 다른 일을 해볼 생각은 없었는가?
"왜 없겠나. 안 해봤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지난) 2015년도에는 농성하는 게 너무 힘들어서 다른 직장을 알아봤다. 그리고 면접까지 오라고 했는데 가지 못했다. 막상 가려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나 혼자 힘들다고 그만두면 남은 사람들은 어떨까. 더 어렵게 투쟁할 걸 생각하니 그럴 수 없었다."
 
- 이렇게 긴 시간 농성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처음엔 너무 억울해서 시작했다. 투쟁을 하다 보니 잘못된 해고여서 바로 잡고 싶었다. 그리고 또다시 시간이 흐르니 부당한 자본의 행태를 바로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우리 투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농성을 멈출 수 없다. 우리가 승리해야 잘못된 제도를 고칠 수 있고, 부당한 자본을 바로 잡을 수 있다. 이 사회의 부조리에 누구나 목소리를 내는 세상이 돼야 한다."

- 최근 최장기 굴뚝 농성이 종지부를 찍었다. 파인텍 노동자들이 일터로 돌아가는 걸 지켜봤을 텐데 부럽지는 않았나?
"정말 기뻤다. (파인텍 노동자들이) 극한투쟁 속에서 협상을 끌어냈다. 솔직히 우리가 먼저 끝날 줄 알았다. 파인텍(농성)은 끝나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하하. 역시 투쟁은 연대하면 상황이 바뀐다. 많은 사람이 한마음으로 응원해줘 가능했다. 나도 일터로 가고 싶다. 거리에서 정년을 맞는 게 아니라 일터에서 정년을 맞고 싶다."

- 24일 새벽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구속됐다. 
"어제 늦게까지 행사를 하고 잠자리에 누웠다. 휴대폰으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구속 여부를 확인하는데 그때까지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잠결에 (이인근) 지회장이 '양승태 구속됐네'라고 하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잠이 들어 오늘 아침 일어나 하늘을 보니 쾌청하더라. 잠시 마음 속 분노가 사그라들었다. 양승태(대법원)가 재판거래만 안 했어도 여기 있는 사람들(콜텍 해고 노동자 3명)은 진작에 가정으로, 일터로 돌아갔을 것이다. 이제라도 심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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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해고 13년' 콜텍 기타노동자 끝장투쟁 돌입 정리해고 13년째를 맞은 통기타 제조업체 콜텍 노동자 끝장투쟁 돌입 기자회견이 8일 오전 서울 광화문 세종로공원에서 열렸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이 거리 행진을 벌이고 있다. ⓒ 권우성

  
지난해 6월 5일 법원행정처는 '재판거래 파문' 관련 문건 등 98개의 법원 내부 문서 원문을 전부 공개했다.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서다. 공개된 파일 98개는 '사법권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이 지난해 5월 25일 발표한 조사보고서에 인용된 내부 문건 파일과 보고서에 인용하지 않은 미인용 문건 파일 등 모두 3개의 폴더로 구분돼 있었다.

여기에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대법원이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청와대와 재판 거래를 시도한 것으로 의심되는 16개 판결이 있었다. 이중 박근혜 정부의 노동 개혁에 기여한 판결로 콜텍 정리해고 사건이 등장한다. 이 판결은 모두 항소심에서 노동자들이 승소했으나 대법원에서 파기 환송됐다.

-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나?
"정년 전에 복직하고 싶다. 여기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이야기에 국민들이 귀 기울여 주고 힘을 보태줬으면 한다. 그리고 콜텍에 묻고 싶다. 정말 한 점 부끄럼이 없는 해고였느냐고. 청춘을 바쳐 일한 사람들인데 이제라도 해결할 생각은 없느냐고."

한편 콜텍은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다. 해고 노동자들의 주장에 대한 회사측의 입장을 물었으나 답변을 거부했다.

콜텍 회사 관계자는 "<오마이뉴스> 기사 다 읽고 있는데, 이야기한다고 해서 써주는 것도 아니고 쓰고 싶은대로 써라"라며 "별다른 입장 없다. 지금까지 언론에 수백번 속았다, 마음대로 써라"라고 반복해 말했다.
#콜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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