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 결승 보려고 UAE행 예약... 결국 다 취소했다

[일상비틀기] 8강 다음날, 축구여행 덕후가 출국 포기한 사연

등록 2019.01.27 14:04수정 2019.01.27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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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AE에서 아시안컵이 열리고 있다. 언론에서는 연일 대한민국이 59년 만에 우승에 가장 가까워졌다고 떠들어대고 있'었'다. 아직 내게는 2018년 여름의 러시아 월드컵 독일전의 여운이 강하게 남아있는 데다가, 업무로 시간이 나지 않아서 경기장에 들르지 못했던 아시안게임 금메달의 아쉬움도 더해져 있었기에 급하게 여행을 준비했다. 아시안컵 전체 일정을 소화하기엔 무리가 있어서, 4강전과 결승을 예상하며 1월 27일에 출국하는 비행기 표를 예매했다.

석유와 만수르의 나라 UAE에는 처음 가보는 것이라 걱정스러웠지만, 지금까지의 내가 경험했던 모든 축구여행이 그랬듯 '거기 가면 다 될 것'이라는 자신감만으로 일정을 준비했다. 회사에서 1월 말까지 급하게 해야 하는 일들이 걱정스러웠지만, 동료분들께 사정을 얘기하고 25일까지 앞당겨 마무리하기로 했다.

중계방송에서 비추는 관중석의 빈자리는, 적어도 표가 없어서 경기를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은 해결해 주었다. 비행기 티켓을 알아보고 두바이까지의 직항을 예약했다. 대중교통을 찾느라 고생하고 있는데, 현지에서 취재 중인 기자분의 후기를 읽었더니 직접 운전을 하고 다니시길래, 차량 렌트를 생각해내지 못한 내 머리를 쥐어박으며 차도 한 대 빌렸다. 하얗고 하얀 국내 브랜드의 소형 차였다.

벌써부터 머릿속에선 별빛이 쏟아지는 사막 한가운데를 운전하고 있는 내 모습이 보였고, <어린 왕자>가 어딘가에 숨겨놓은 소중한 것이라도 만날 수 있을 것이라며 상상에 상상이 더해졌다. 게다가 UAE라는 나라는 광활했던 러시아에 비해서는 꽤나 아담해서, 경기가 열리는 주요 도시인 두바이, 아부다비, 알 아인 간의 거리도 100킬로미터가 채 안 되는 것을 확인하고 났더니 이동에도 안심이 되며 여행에 대한 기대감으로 한껏 부풀어 올랐다. 2018년 12월에 클럽월드컵 결승전 티켓을 예매해 놓고도 실행하지 못했던 아쉬움이 남아 있었는데, 이번에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불길한 예감은 왜 틀린 적이 없나
 

아시안컵 여행 준비UAE에서 아시안컵이 열리고 있다. 옆나라인 카타르에선 2022년 월드컵이 예정되어 있고, 우리는 저 작은 섬나라인 바레인과 16강을 치렀다. ⓒ 이창희

하지만, 문제는 나에게 있지 않았다. 대한민국은 첫 번째 상대인 필리핀에게조차 제대로 된 공격을 펼치지 못하며 실망스럽게 승점을 따내더니, 두 번째 상대는 (상대에겐 너무나 미안하지만) 어디에 있는 나라인지 나라의 이름을 어떻게 읽는지도 모르겠는데도 간신히 이겼다.

불안감이 점점 밀려 올라왔지만, 지난 2016년 유로에서의 포르투갈을 떠올리며 참았다. (유로 2016에서 포르투갈은 힘들게 결승까지 올라갔으나 결국 우승했다.) 게다가, 손흥민 선수도 중국전 전까지는 복귀한다고 하지 않았나. 우리는 불과 6개월 전에 세계 최강의 독일을 당당하게 이겼고, 2018년 9월의 아시안게임에선 금메달을 땄다는 사실을 애써 기억해내면서 말이다. 

불안은 결국 1월 26일 토요일 아침의 혼란으로 내게 다가왔다.

경기 결과는 다 아시는 것처럼 카타르와의 무기력한 졸전 끝에 패배였다. 벌써 축구를 25년 넘게 현장에서 보고 있는데, 이렇게 맹숭맹숭한 90분은 처음이었다. 긴장감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고 '아시아의 호랑이'라는 별칭이 부끄러울 정도였다.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고 선수들에게선 절실함이 보이지 않았다. 분명 어제저녁 같은 시간에는 베트남 선수들이 마지막 1분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전력 질주를 하는 모습에 감동했었는데, 우리나라의 경기를 보면서는 아쉬움도 느껴지지 않았다. 90분의 경기는 대한민국을 8강에 가둔 채 끝이 났다. 한동안 소파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설마 했던 불안이 눈앞에 펼쳐지니 현실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술이라도 마실까, 잠깐 생각했지만, 냉장고까지 걸어갈 수도 없었다.

'맞다! 내일 출국인데.'

시계를 보니 새벽 1시가 가까워진 시간이었고, 4강전을 보기 위해 일요일 저녁에 비행기를 타기로 했다는 생각이 밀려 들어왔다. 솔직하게 말해서, 가고 싶지 않았다. 아무리 '축구 여행 수집가'로 살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런 마음으로 그들의 잔치에 가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런데, '별빛 쏟아지는 사막에서의 일몰'이 머리의 한 쪽 구석에서 조금씩 빛을 채우기 시작했다. 그렇지, 별빛 쏟어지는 사막여행! 아시안컵의 허탈한 패배는 다시 생각하고 싶지도 않지만, 대한민국의 태극전사들에 대한 허탈한 기억은 8강 대진표에 가둬둔 채, 축구 여행기 한 페이지를 장식할 생각으로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옷장에 걸려있는 수많은 유니폼들 속에서 모드리치의 크로아티아, 피를로의 이탈리아와 이니에스타의 바르셀로나 유니폼을 챙겨 넣었다.

'그래, 축제는 아직 끝나지 않았어. 게다가, 나에겐 별빛 사막에서의 드라이브가 있다고!'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경기에 대한 분노를 삭이며 잠을 청했다.
 

여행준비짐을 쌌다. 유니폼, 모자, 햇빛을 가릴 목적의 스카프와 목베개까지 챙겨넣었다. ⓒ 이창희


여행 하루 전, 눈물을 머금고 예약 취소

아침이 되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이 무척이나 파랗다. 여행을 떠나기에 적당한 날씨라고 생각하며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그런데, 화장실에서도, 물을 마시면서도, 영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자기 전에 분명히 '휴가 가기 전에 해결할 것'이라고 포스트잇을 붙여 놓았는데 움직일 수가 없다. 축구 그 자체로 즐길 수 있는 축제라며 마음을 잡아보아도, 어제저녁의 좋은 점은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없던 경기가 머리를 계속 채우고는 떠날 생각을 안 한다.

정말 가기 싫다. 안 갈 수 없을까? 휴가도 냈고, 사람들한테 동네방네 떠들기도 했는데 어쩌지. 무엇보다, 여기저기 예약한 것들은 다 어쩌지? 머리가 복잡해져서, 한참 동안 소파를 떠나지 못했다. 마음은 어느새 적극적으로 '가지 않을 수 있는 구실'을 찾고 있었다. 임박한 여행을 취소하는 것은 무척이나 번거로운 일이니까.

'인천공항 국제면허증 카운터 운영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며, 주말/공휴일은 운영하지 않습니다.'

뭐라고? 머릿속에서, 실망과 환희가 충돌하며 불꽃이 펑펑 튀기 시작했다. '이거다!' 외치며 급하게 자리를 털고 일어서서, 집에서 가장 좋은 컴퓨터 앞에 앉았다. (장비의 성능은 귀찮음을 만회할 수 있는 중요한 준비물이기도 하다.) 준비해 놓은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야 한다.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스피드'였기에, 마우스를 쥔 손이 떨리기까지 한다.

"이봐, 예약 번호를 얘기할 때, 그게 어느 단어에 속한 것인지 얘기를 해 줘. 사과(Apple)의 A, 하는 식으로 말이야."
"알아. 알겠어!"


내일 출발하는 비행 편을 급하게 취소하려다 보니, 예약한 항공사 24시간 운영 카운터에 전화를 하느라 UAE 국가번호까지 찾아야 했다. 전화기 너머의 상담사가 예약번호를 요청하길래 알파벳을 불렀는데, 명확하게 알아들으려면 그게 어느 단어에 속한 알파벳인지 얘기해 주라며 안내를 한다. 그런데, 태어나서 한 번도 그런 식으로 알파벳을 생각해 본 적이 없으니 쉽지 않다. 결국, 상담사가 알파벳을 짐작하여 단어를 얘기해주면, 맞는지 확인해 주는 식으로 간신히 예약번호를 알려줬다.

"V...인데, 이게 말이지."
"승리(Victory)의 V, 맞아?"
"응. 맞아, 고마워!"


결국, 간신히 UAE까지 전화를 해서 항공편을 취소하는 것을 끝으로 준비한 모든 것들을 취소했다. 여행 막바지에 취소하느라 수수료 부담이 만만치 않지만, 가서 써야 하는 비용을 생각하며 눈물을 삼켰다. 마지막으로 회사 시스템에 연결하여 신청한 휴가까지 회수하고 났더니 기진맥진이다. 아, 배도 고프고 정신도 없는데, 나를 이렇게 고생시킨 축구 국가대표팀의 엉망진창이었던 어젯밤의 카타르전이 갑자기 머리로 밀고 들어온다. 분명히 본선 대진표 안에 가뒀다고 생각했는데, 끈질긴 생명력이다. 기억을 지워버리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환불불가 4강 티켓4강 두 경기와 결승전까지 모두 세 장의 티켓을 예매했습니다만, 결국 쓸 수는 없게 되었습니다. ⓒ 이창희

억울하다. 59년 만에 아시아의 왕좌를 탈환할 것이라며 큰소리를 쳤던 그들의 '졸전'이 떠오를 때마다 억울하다. 분명히 나 개인이 선택한 것이기에 모든 결과는 나의 책임이겠지만, 갑자기 그들의 실망스러운 경기만 아니었다면 지금쯤 인천에서 새로운 축구 여행으로 설레었을 것을 생각하니 너무 속상하다.

이번에는 분명히 대한 축구 협회에 책임을 물어야겠다. 베트남과 일본의 경기를 보면서 베트남 팀의 절실한 플레이가 전해줬던 감동을 우리의 국가대표팀에게서 느끼지 못했다면, 이런 상황에 대한 책임은 대한 축구 협회에게도 분명히 물어야 한다.

지금은 잊히고 있지만, 2018년 러시아 월드컵 직후 국가대표 선수단의 독일전 승리에 비겁하게 숨어있던 대한 축구 협회에 대한 비판이 떠오른다. 축구는 결국 팀의 경기이다. 하지만, 그 '팀'이 대표팀의 선수들만을 얘기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선수들은 경기를 뛰면서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은 팀플레이에 대해 비난을 받으면 된다. 그들의 역할은 경기장 안에서 결정되는 것이므로…

하지만, 우리 축구가 계속 보여주는 무기력한 경기에 대한 최종적인 책임은 '대한 축구 협회'에게 물어야 할 때가 되었다. 독일전의 승리와 아시안게임에서의 달콤한 금메달에 숨어있던, '축구 협회의 개혁'에 대한 논의를 다시 끌어내자고 제안한다. 여행을 급하게 취소하느라 금전적인 손실까지 입었으니, 나에겐 분명히 지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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