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 방위비 '1년계약 10억달러', 좋은 협상일까

[역사로 보는 오늘의 이슈] 군사적 긴장과 방위비 분담이 반비례하는 모양새

등록 2019.02.07 14:17수정 2019.02.07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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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4월 10일 오후 경기도 동두천시 캠프 케이시 아파치 레인지에서 열린 주한미군 2사단·한미연합사단의 최고 전사 선발대회에서 미군 장병이 부상자 모형을 끌고 오르막을 달리는 테스트를 받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2019년도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1년 계약, 10억 달러 미만'으로 잠정 합의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한국돈으로 1조 원 선에서 합의가 형성됐다고 한다. 

지난 5년간 분담한 금액은 해마다 약 8억 달러였다. 이번 협상 전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매년 16억 달러'를 요구했다. 사실상 타결된 액수인 '10억 달러 미만'은 그 금액보다는 낮다. 하지만 협상 초기 트럼프 대통령이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는 점을 고려해봤을 때 16억 달러는 처음부터 협상용 액수에 불과했다고 볼 수 있다.

트럼프 최종승인은 아직 안 났지만... 국무부는 '만족'

지난 5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미국 국무부는 "미국과 한국은 새로운 한미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SMA)에서 원칙적 합의에 도달했다"면서 "미국은 한국이 SMA를 통해 주한미군 유지 비용에 기여하는 것을 포함, 동맹을 지원하기 위해 제공하는 상당한 재원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트럼프의 최종 승인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국무부는 위 조건에 만족하고 있는 모양새다. 

사실 지난해까지 분담한 약 8억 달러도 과도한 금액이었다. 우리뿐 아니라 주한미군에게도 그랬다. 주한미군의 실수요 금액을 넘는 액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또다시 금액을 올려주게 된 것이다. '과한 액수'라는 표현은 결코 과하지 않다. 2018년 12월 27일 JTBC '정치부 회의'에서는 이런 발제가 있었다.
 
"트럼프 미 대통령은 우리가 무임승차하고 있다고 주장하는데, 이미 우리도 주한미군 예산의 40% 정도를 부담하고 있습니다. 50%인 일본보다는 적지만, 18%인 독일보다는 2배가 넘습니다.

또 미국은 우리가 이미 제공한 분담금 중 현금 3300억 원을 은행에 쌓아뒀고요. 현물로 제공하기 위해 마련한 예산 6500억 원은 쓰지도 않았습니다. 수천억 원대 잉여금으로 이자놀이를 한다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미국이 한국 국민들의 반미감정을 의식하면서도 자국의 세계전략 때문에 주한미군을 주둔시키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다. 그런데도 한국은 1991년부터 주한미군 방위비를 분담하고 있다.

1966년 체결된 소파협정(SOFA, 주둔군 지위협정) 제5조 제1항에서는 "합중국은 제2항에 규정된 바에 따라 대한민국이 부담하는 경비를 제외하고는 본 협정의 유효기간 동안 대한민국에 부담을 과하지 아니하고 합중국 군대의 유지에 따르는 모든 경비를 부담하기로 합의한다"라고 규정했다. 주한미군 주둔은 미국의 필요에 따른 것이고, 소파협정에서도 '미국 부담' 원칙이 합의된 점을 감안하면, 주한미군의 실수요 금액을 넘는 분담금을 한국이 부담하고 있는 것은 납득하기 힘든 일이다. 

소파에 명시된 '미국 부담' 원칙, 하지만
 

2001년에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과 실전을 벌이는 미군의 모습. ⓒ 위키백과

  
동아시아와 미국은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있지만, 태평양 상에 큰 나라가 없으며 사실상 뻥 뚫렸다는 점을 감안하면 두 지역은 붙어 있는 거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동아시아 방어선이 뚫리면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가 곧바로 위험해질 수도 있다.

필리핀 주둔 미군이 현지 국민들의 반미감정을 견뎌내면서 주둔한 사실, 1976년부터 기지 사용료를 내면서 주둔한 사실, 미군이 1992년에 쫓겨난 뒤에도 필리핀 재주둔을 위해 노력한 사실은 미군의 동아시아 주둔이 실상은 자국의 이익을 위한 것임을 보여준다.

이런데도 한국 정부가 과도한 분담금을 지불하는 원인 중 하나로 협상력 부족을 꼽지 않을 수 없다. 남창희 인하대 교수는 '한국의 적정 방위비 분담 연구'라는 논문에서 "한국은 능력에 비해 높은 대미 주둔군 지원을 적정 수준으로 재조정해야" 한다면서 협상력 부족을 거론했다.
 
"이러한 여러 요인 외에도 한국의 대미 주둔비용 분담 과다 요인으로는 미국과의 협상에서 한국측의 협상 전략의 미비와 그에 따른 협상의 실패를 들 수 있다." - 한국전략문제연구소가 1999년 발행한 <전략논총> 제11집에 수록
 
한국 정부의 협상력이 부족한 이유와 관련해, 방위비 분담이 1991년부터였다는 점을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1990년 독일 통일을 계기로 냉전이 해체되고 탈냉전 훈풍이 부는 속에서도 한반도에서만큼은 냉전 구도가 계속 유지됐다. 이것은 '안보관(觀)의 전환'이라는 측면에서 한미 양국 사이에 중대한 차이를 초래했다. 그 전까지 방위비를 분담하지 않았던 한국이 이때부터 분담하게 되는 요인 중 하나가 여기서 발생했다.

냉전시대에 미국이 주한미군을 배치한 일차적 목적은 소련(러시아) 견제에 있었다. 이차적 목적은 중국과 북한의 견제였다. 반면, 주한미군을 수용한 한국의 일차적 목적은 북한 견제였다. 소련 및 중국 견제는 한국한테는 부차적인 문제였다. 한국군과 주한미군의 주적이 실상은 서로 달랐던 것이다. 고상두 연세대 교수의 논문 '탈냉전 이후 동맹관계의 변화'에 이런 대목이 있다.
 
"냉전시대 미국은 소련을 제1의 적으로 하였고, 동북아 지역 안정 그리고 한반도의 전쟁 재발 방지는 그 다음 목적이었다. 반면, 한국에게 있어서 안보의 우선순위는 미국과 역으로 전개되었다." - 한국정치학회가 2001년 발행한 <한국정치학회보> 제35집 제2호에 수록

그런데 탈냉전이 시작되고 소련이 해체되자, 주한미군이 소련을 견제해야 할 필요성이 없어지게 됐다. 중국과 북한을 견제할 필요성은 여전히 남았지만, 탈냉전은 적대세력이 한반도를 경유해 미국을 침해할 가능성을 낮추는 데 기여했다.

1990년에 미국이 약 4만 명이던 주한미군을 2만 명까지 감축하기로 결정했던 것은 그 같은 안보관의 전환 때문이었다. 소련이라는 큰 적이 사라졌으므로 한반도에 2만 정도만 배치하면 미국 안보에 지장이 없으리라고 판단한 것이다. 물론 2만 명까지는 감축되지 않았지만, 미국이 그렇게 결정한 것은 안보관의 전환에 기인한 것이었다.

소련의 붕괴, 안보관의 전환... 한국은 달랐다

그런데 그런 전환이 한국 정부에서는 일어나지 않았다. 미국이 주한미군을 통해 일차적으로 소련을 견제하던 냉전시대에도, 한국 정부는 소련은 보지 못하고 북한만 봤다. 북한을 과도하게 의식한 탓에, 한국 정부의 눈에는 주한미군이 북한 견제용일 뿐이지 소련·중국 견제용이 아니었던 것이다. 미국이 한반도 안보 위험이 줄었다는 판단 하에 주한미군을 감축하는 상황에서도, 한국 정부는 북한만 바라보다 보니 안보 위험이 낮아졌다는 점을 실감하기 힘들었다.

이는 1991년부터 한국이 주한미군 분담금을 내는 결과로 이어졌다. 미국은 '이제 미군을 감축해도 될 정도로 이곳이 예전보다 안전해졌다'고 판단한 데 반해, 한국 정부는 '북한이 상존하므로 여전히 위험하다'고 판단했다. 이런 한국 정부를 상대로 미국이 분담금을 받아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당시의 미국이 완전 철군을 계획한 것도 아니었다. 북한과 중국을 견제할 정도로는 병력을 남겨둘 생각이었다. 미국은 소련의 위협이 사라진 점을 감안해서 주한미군을 감축하는 것인데도, 한국 정부는 주한미군을 북한 견제용으로만 인식했기 때문에 탈냉전을 계기로 미군이 완전 철군하지 않을까 염려할 수밖에 없었다.

한반도 안보를 총괄하는 미국은 한반도에서 한숨을 돌리게 된 반면, '주한미군은 북한 견제용'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던 한국 정부는 그런 미국을 보고 더욱 더 긴장했으니 두 나라 사이에 협상력의 차이가 생기는 것은 당연했다. 
 

딕 체니. ⓒ 위키백과(퍼블릭 도메인)

  
당시 미국은 한국의 안보관이 여전히 협소하다는 것을 알고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 점은 1990년 2월 15일 노태우 대통령과 딕 체니 국방장관의 대화에서도 드러난다. <노태우 회고록> 하권에 따르면, 청와대를 방문한 딕 체니는 "저는 기본적으로 북한의 위협은 상존하고 있으며, 미군은 계속 한국에 남아 있어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라면서 "각자의 능력에 상응하는 공동 방위비 분담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한반도 안보환경이 호전돼 주한미군 감축을 고려하는 상황에서 딕 체니는 "북한의 위협은 상존한다"는 말로 한국 대통령에게 심리적 부담을 줬다. 그리고 본국 정부가 주한미군 완전 철수를 고려하고 있지 않은데도 "저는 미군은 한국에 남아 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라는 선심성 발언을 던졌다.

이 말을 듣고 노태우는 "우리의 능력 범위 내에서 최대한 협조할 것"이라고 체니에게 약속했다. 최초의 방위비 분담은 이렇게 이뤄졌다. 기존 안보관에 얽매인 한국 정부의 대미 협상력을 보여주는 장면이자, 미국이 분담금을 받아내기 위해 한국 정부를 어떻게 요리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2018년 9.19 남북군사합의로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은 훨씬 더 완화됐다. 하지만 2019년부터 한국이 방위비를 추가 부담하는 쪽으로 상황이 흐르고 있다. 군사적 긴장과 방위비 분담이 반비례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정부의 협상력이 여전히 향상되지 않는 것은 한국 정부가 냉전 시대의 안보관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결과라고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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