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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할인 '러쉬 대란'에 9만원을 썼다, 그런데...

[체험기] 마감시간에도 떠나지 않는 사람들... 국내 로드샵들은 '외면'

등록 2019.02.08 20:00수정 2019.02.0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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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입장' 안내 문구를 받고 기다리는 손님들. ⓒ 정주영


 
"저기, 님부터는 구매할 수가 없대요."

지난 7일 오후 9시 20분 여의도 IFC몰 러쉬 매장. 줄 앞에 있던 여성 손님은 종이쪽지를 사람들에게 보여주며 본인 다음부터는 줄 서도 구매할 수 없다고 알려 주었다.

줄에 선 사람들이 저마다 나가지 않으려 하자, 이번에는 직원들이 '구매하실 수 없다'며 돌려보내기 시작했다. 오기가 찬 손님들 중에 몇몇은 다음날 매장 오픈 시간이 언제인지를 물었고, "(오픈 시간은) 아침 10시"라는 대답에 혼잣말로 9시부터 기다려야겠다고 중얼거리며 손님은 사라졌다.

러쉬코리아는 이날부터 13일까지 50% 세일을 시작했다. 국내 로드샵 화장품들은 한 달이 멀다 하고 50% 할인 행사를 진행해도 고객들이 시큰둥한데,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것일까? 겨우 한 화장품 회사의 할인일 뿐인데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에서 서버 사이트 마비까지... 무엇이 특별하길래 이렇게 사람이 몰리는 건지 직접 찾아가 보았다.
 
싹쓸이된 매장, 하나 남은 제품에 '우르르'
 
"입장 가능하세요."

마지막 입장줄에 속해 있던 손님들을 따라서 직접 현장을 지켜보기로 했다.

"이 바디 제품은 이제 하나 남았어요"라는 말이 들리자, 손님 여러 명이 동시에 그 방향으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정 효과가 이보다 강력할 수 있을까? 하나 남은 제품은 젊은 여성의 손에 이끌려 급하게 사라졌고, 재고가 가득했던 매장은 순식간에 점포 정리를 하는 것처럼 텅 비어 있었다.
 

제품들로 가득했던 매장 진열대(좌)는 행사 첫 날에 모두 사라졌다(우) ⓒ 정주영


"혹시 내일 다시 오면 제품이 좀 채워져 있나요?"는 질문에 직원들은 "이거 빠지면 다시 안 들어옵니다"라고만 대답했다.

강남에서 왔다는 회사원 김아무개씨(32)는 "강남점에서도 재고가 순식간에 사라져서 여의도까지 와 봤는데 여기서도 허탕 쳤다"라며 "일부러 이렇게 줄을 서게 만들고 적게 배치해서 품절 대란을 만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정말 50% 할인일까?
 
"올해 딱 한 번만 있는 행사!"
"영국 본사 정책에 따라 내년에는 안 할 수도."
"이 제품은 이번 기회에 많이 사셔야 합니다!"


직원들이 외칠수록 손님들의 장바구니도 수북해졌다. 몇 개 안 남은 제품에 손이 몰리자, 상황을 지켜보려만 했던 기자의 장바구니도 빠른 속도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18만원 상당의 제품들을 50% 가량 할인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50%도 정말 원래 가격일까? ⓒ 정주영


'할인 금액 9만 2천 원.' 이번 세일로 9만 원 가량을 절약한 셈이다. 그런데 정말 절약한 걸까?
 

1만원대의 영국 본사 가격(좌)과 국내에서 판매하는 동일 제품의 가격(우)의 가격 비교를 통해 두 배나 비싸게 판매되는 것을 알 수 있다. ⓒ 정주영


가장 베스트셀러로 알려진 매그너민티 제품의 경우 영국에서 사면 1만 원 남짓 하지만, 한국 매장에서 구매하는 순간 2만 원대로 가격이 두 배 가까이 올라간다. 심지어 이 제품은 너무 잘 팔려서 세일에서도 제외 품목이었다.

사람들이 너도 나도 구매하던 것을 집에서 풀어헤쳐 봤더니, 특별한 건 없었다.

'원래는 이 작은 비누를 2만 5천 원이나 줬어야 했단 말이지?'
 

기자가 구입해 본 50% 세일 비누. 향이 좋은 것 외에는 특별한 것을 느낄 수는 없었다. ⓒ 정주영


100g당 9천 원이라고 값이 매겨져 있던 비누도 영국에서는 5500원대에 판매하고 있었다. 엄밀히 말하면 이번 행사는 50% 세일이 아니라, 한국에서는 부풀려진 가격의 정상화였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이 이렇게 몰리는 걸까? 현장에서 목소리를 좀 더 들어 보았다.
쇼핑백을 두 개로 나누어 들 만큼 많이 구매한 손아무개씨(29)는 "좀 저렴해 보이는 국산 화장품 로드샵과는 달리 여기는 항상 뭔가 다른 고급스러움이 있어 보였는데, 이번 기회 아니면 쉽게 못 사서"라고 대답했다.

매장 오픈하자마자 달려 왔다는 김아무개씨(31)는 "세계적으로 알려진 브랜드이고 원래는 할인이 없는데 며칠만 할인한다는 특별함 때문에" 구매를 했다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김씨는 기자가 든 쇼핑백을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가리켰다.

"본인도 (놓칠까봐) 많이 사셨네요, 뭐."

"대기줄 중단합니다"
 

계속 이어지는 구매자들의 줄을 한 시민이 벤치에 앉아서 지켜 보고 있다. ⓒ 정주영


사람들의 줄은 마감 시간까지 끝나질 않았다. 판매 종료를 알렸지만, 그럼에도 혹시나 몇 개만 구매할 수 없는지를 묻는 손님들의 발걸음도 이어졌다.

밤 10시. 매장이 종료되자 직원들은 급하게 만든 '마지막 입장' 종이쪽지를 계산대에 올려 두고, 내일을 대비하기 위해 '대기줄 중단합니다'라는 패널을 입구에 정리해두었다.

오늘 하루만 현장에서 40만 원 상당의 화장품을 샀다는 회사원 김아무개씨(28)는 "좀 과하게 산 거 같긴 한데, 그래도 얼마 안 남은 인기 제품들 위주로 구할 수 있었다. 1년에 한 번 세일하는 거니까 잘 샀다고 생각한다"라고 대답했다.

국내브랜드 울고, 외국브랜드 웃고
 

50% 할인 행사를 계속 진행하였지만 소비자들의 외면으로 결국 매장을 5%만 남기고 모두 정리 수순을 밟게 되었다. ⓒ 정주영

 
러쉬의 경우 2002년 국내 사업을 시작한 이래로 2014년까지 두 자릿수 성장을 계속 이어나가고 있다. 시장조사기관인 보떼 리서치에서 발표한 2017년 백화점 화장품 브랜드 매출 상위 10개는 아모레퍼시픽의 헤라와 설화수를 제외한 나머지 8개 모두 외국 화장품 브랜드다.

반면 한국 화장품 브랜드들은 고전 중이다. 그나마 국내 화장품 산업을 견인하던 아모레퍼시픽마저 지난해 영업 이익이 25%나 급감했다. 주요 요인으로는 로드샵 브랜드의 부진이 꼽혔다.

실제로 한국의 대표 로드샵 중에 하나인 '잇츠스킨'은 200개에 달했던 로드샵 매장을 연내 10개까지 줄이는 계획을 세우는 등 살아남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국내 화장품 로드샵들은 50%로 할인 행사를 진행해도 더는 (소비자들이) 반응하지 않는 단계에 이르렀다"라며, "외국 화장품들이 두 자릿수로 성장할 동안, 국내 화장품들은 두 자릿수로 하락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김주덕 성신여대 뷰티산업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직도 외국 제품에 대한 선호와 신뢰가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국내 여성 소비자들의 외국 브랜드, 고가 브랜드에 대한 선호도가 굉장히 높은 편"이라며 "제품 가격이 비싸면 그만한 기대 심리도 생겨서, 똑같은 로드샵이더라도 값비싼 외국 브랜드 제품들은 굉장히 인기 있을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또 국내 화장품산업은 여성 핸드백 같은 럭셔리 산업과 비슷해 외국 화장품들도 가격을 올릴수록 더 품귀현상을 빚는다고 했다.

곽금주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도 "브랜드들은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 중요한데, 국산 화장품 로드샵의 경우에는 국산품이라는 태생적인 한계 때문에 외국 브랜드들에 비해 고급화 이미지를 만들어 내기가 상당히 어렵다"라고 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누가 뭐 한다, 유행이다 할 때 쫓아가는 동조 문화가 크다"라며 "이제는 현명하게 제품을 비교해 보고 좀 더 신중하게 따져보는 소비를 할 때가 되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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