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솔이가 '판사 봉'을 잡았습니다

'위기청소년의 좋은친구 어게인'이 마련한 미혼모 돌잔치

등록 2019.02.16 13:32수정 2019.02.16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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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아기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 조호진

 
"다솔아!
우리에게 와줘서 고마워
많은 이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되렴!"


지난 10일(일) 저녁, '다솔'(가명)이 돌잔치가 열렸습니다. 100여 명의 축하객은 다솔이가 사랑받는 아이로 자라길 빌었습니다. 돌잔치에는 경향 각지에서 모여든 축하객뿐 아니라 중국동포와 인도네시아 대학생들도 참석했고, 뉴질랜드와 미국, 독일과 아프리카에서도 다솔이의 돌잔치를 축하했습니다. 미혼모 아기를 향한 축복의 손길이 얼마나 따사롭던지 하늘에서 축복이 쏟아지는 것 같았습니다.

'미숙'(가명, 23)이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눈 화장이 지워질 정도로 울고 또 울었습니다.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지만 그간 흘린 눈물과는 달랐습니다. 아기 아빠 없이 아기를 낳아야 했고 아기를 혼자 키우는 동안 세상이 힘들어서 눈물을 흘리고 삼켰지만 이날 흘린 눈물은 감사의 눈물이었고 기쁨의 눈물이었습니다. 스물셋 인생의 외로움을 다 비우진 못했지만 아픔을 달래고 기쁨을 채운 것은 누가 뭐래도 사실입니다.

미숙이만 운 것은 아닙니다. 오는 4월에 출산 예정인 예쁜 변호사님도 울었고, 눈 맑은 목사님도 울었고, 털보 집사님 부부도 울었고, 축복의 노래를 불러준 성악가도 울었고, 미혼모와 위기청소년을 위해 일하는 경기도의회 이진연 의원님과 부천시의회 임은분, 박찬희 의원님도 울었습니다. 눈물에는 빈부 격차가 없고, 지위 고하도 없고, 잘나고 못난 것도 없기 때문에 다 같이 기쁜 눈물을 적셨습니다.

단칸방에서 아기를 혼자 키우는 스물셋 미혼모
 

2019년 2월 10일 열린 다솔이 돌잔치. ⓒ 민경택

 
지난 1월 1일, 새해 첫날에 분유를 배달하러 갔다가 미숙이를 만났습니다. 11개월 된 다솔이를 혼자 키우며 사는 집은 허름한 단칸방이었습니다. 방 안에는 가제 손수건과 아기 내의 등이 걸린 빨래 건조대와 난방 텐트가 있었는데 미숙이는 난방비를 아끼기 위해 난방 텐트에서 다솔이를 품에 안고 잡니다. 서로의 체온을 나누면서 추위와 외로움을 달랬습니다.

아빠 없이 자란 미숙이는 중학교를 중퇴했습니다. 학교를 그만둔 뒤에는 패스트푸드점과 백화점에서 아르바이트 했습니다. 백화점에서 일할 때 가장 힘들었던 것은 진상 고객에게 시달리는 것이었습니다. 어리다고, 못 배웠다고, 가난하다고 무시하는 고객들 때문에 몸과 마음이 아팠지만 누구에게도 위로받지 못했습니다. 외로워서 남자를 만났는데 덜컥 임신을 하게 됐고 남자가 이 사실을 알면서 떠나고 말았습니다.

미숙이에게 다솔이 돌이 언제냐고 물었더니 2월이라고 했습니다. 돌잔치는 어떻게 할 계획이냐고 물었더니 돈이 없어서 못한다고 했습니다. 아기 첫 생일인데, 아빠도 없이 혼자 키웠는데, 가난하고 외롭게 살아온 세월인데 돌잔치를 못 하면 안 된다면서 돌잔치를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미숙이는 웃으면서 좋아했습니다. 사실은 다솔이 돌잔치를 해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돌잔치를 조촐하게 하거나 생략하는 부모들도 있습니다. 다솔이 돌잔치를 후원한 후배도 자신의 아기 돌잔치를 생략했다고 했습니다. 엄마아빠가 있고 형편이 넉넉하면 그래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미혼모가 돌잔치를 못하면 한이 될 것 같았습니다. 사는 내내 못처럼 박혀서 상처로 남을 것 같아서 돌잔치를 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조촐한 돌잔치를 계획했는데 사랑의 손길이 모이면서 판이 커지고 말았습니다.

소외된 중국동포들이 소외된 아기 돌잔치 음식 마련
 

미혼모 아기를 위해 축복의 노래를 부르는 중국동포들 ⓒ 민경택

 
중국동포들과 함께 지내는 목사에게 미숙이 이야기를 했습니다. 오랜만에 뵈었기에 지나가는 말로 돌잔치 이야기를 했는데 이 목사님이 "소외된 아기이니 소외된 중국동포들의 손으로 돌잔치를 해주고 싶다"고 했습니다.

같은 민족인데 비운의 역사로 인해 국적이 갈린 중국동포들, 이국땅이 되어버린 자기 땅에 와서 가난을 벗기 위해 돈을 버는 동안 얼마나 많은 설움을 당했을지 모를 동포들이 자기 땅에서 소외된 한 아기를 위해 돌잔치 음식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이날 돌잔치 사회는 위기청소년들의 좋은 경찰이자 명사회자인 인천 남동경찰서 조우진 경위가 맡았습니다. 다솔이의 돌 한복을 마련해서 입힌 중국동포들은 고생해서 번 돈 중 한 푼 두 푼을 모아 후원했고, 인도네시아 대학생으로 구성된 하티엘록교회 찬양단이 축하노래를 불러주었습니다. 다솔이는 그 노래가 행복했는지 방긋 웃었습니다.

오는 4월에 출산 예정인 김서영 변호사는 축시를 낭송해주었고, 성악가 구자향 교수는 축복의 노래를 불러주었고, 난곡의 박영하 시인은 동네 주민들로 구성된 하모니카 팀과 함께 등대지기 등을 연주해주었고, 돌잔치 전문 사진가 민경택 작가는 사진 재능을 기부해주었고, 안중걸 화백은 미숙이 모자를 캐리커처로 그려 액자로 담아 선물해주었습니다. 참 많은 이들이 수고해주셨습니다.
 

충남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도담이 엄마가 편지를 낭독한 후 미혼모를 안아주었습니다. ⓒ 민경택

 
충남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도담이 엄마는 난산의 어려움 속에서 인공수정으로 아기를 낳았습니다. 친정 엄마는 귀하게 얻은 손녀 돌잔치를 위해 1년간 돼지저금통에 동전을 모았고 그렇게 모은 32만4420원을 딸에게 주었는데 도담이 엄마는 이를 다솔이 엄마에게 선물했습니다. 지난해 12월에 열린 도담이 돌잔치는 가족끼리 조촐하게 했습니다. 다솔이 돌잔치에 참석하기 위해 충남에서 달려온 도담이 엄마는 예쁜 편지지에 쓴 손편지를 낭독했습니다.

"저는 모두의 도움과 기다림 속에서 (아기를) 맞이했음에도 엄청 힘들고 두려웠는데 저보다 훨씬 어린 나이에 힘든 상황 속에서도 강한 의지로 아이를 지켜주시고 사랑을 주고 계시다는 게 정말 존경스러워요. 아직 누군가로부터 존경스럽다는 말을 들어본 적 없다면 스스로 존경하고 대견하게 여겨주세요. 엄청난 일을 하고 계신 거예요. 제가 (아기를) 낳아서 키워보니 그 힘듦을 알겠어요.

저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해요. 첫 제자는 미숙씨보다 나이가 많을 겁니다. 오랫동안 아이들을 지켜보면서 느낀 것은 가정 형태가 아이들 성장에 제일 중요한 요소가 아니라는 사실이었어요. 부모가 있어도 엇나가는 아이가 있는 반면 소년소녀 가장, 한 부모 가정, 조손 가정 아이들 중에 자기답게 살아가는 학생들을 보면서 행복의 의미를 배웠어요. 미숙씨가 세상을 주도하며 행복하게 살면 다솔이가 행복을 배울 것 같아요. 다솔이 엄마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미혼모 대신 훌륭한 엄마라고 불러주세요
 

성악가 구자향 교수가 축복의 노래를 부르는 가운데 축하객들이 다솔이의 축복을 빌어주자 미숙이는 감사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 민경택

   
미혼모 아들 다솔이가 살아갈 세상은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차별과 멸시, 절망과 좌절 또한 없진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솔이는 이제 혼자가 아닙니다. 다솔이에게 축복을 빌어준 할아버지와 할머니, 이모와 삼촌들이 다솔이가 절망하거나 좌절하도록 놔두지 않을 것입니다. 삶의 용기를 심어주면서 버팀목이 되어줄 것입니다. 저는 그들의 사랑을 믿어 의심하지 않습니다.

다솔이가 돌잡이에서 잡은 것은 판사 봉입니다. 판사는 아무나 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간혹 기적을 보여줍니다. 그 기적이 다솔이에겐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선 안 됩니다. 미국의 대통령 후보 오바마가 2007년 대선 유세 도중에 연방대법원 판사 선임기준을 아래와 같이 밝혔는데 다솔이가 판사가 된다면 대한민국 대법관이 될 적격 조건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미혼모의 아들은 낙인이 아니라 삶의 아픔 속에서 이웃의 아픔을 공감하며 성장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어린 나이에 미혼모가 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아는 마음.
가난하게 살거나, 흑인으로 사는 것.
장애인으로 사는 것.
노인으로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이해하는 마음.
곧 공감을 지닌 사람이 필요합니다."


미숙이가 아들을 기적의 주인공으로 키우기 위해 할 일은 자립하는 것입니다. 검정고시로 중졸을 마친 미숙이는 고졸 검정고시를 준비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면서 취업을 준비하고 경제적으로 자립한 뒤에는 대학을 가겠다고, 아들을 위대하게 키우는 엄마가 되겠다고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미숙이 혼자라면 꿈을 이루기 힘들 것입니다. 하지만 따뜻한 이웃들과 함께라면 꿈을 현실로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미숙이는 훌륭한 엄마입니다. 다솔이를 끝까지 키울 의지도 분명합니다. 이웃의 도움을 감사하게 받을 줄도 압니다. 그러므로 미숙이를 미혼모라고 낙인찍지 말았으면 합니다. 도담이 엄마가 편지에서 밝힌 것처럼 미숙이는 혼자 힘으로 아들을 낳았고 돌이 되도록 잘 키운 훌륭한 엄마입니다. 여러분은 먼 훗날에 아들을 대법관으로 키운 미혼모 엄마의 스토리를 듣게 될지도 모릅니다.

세상을 살만하게 만드는 사람들
 

한 아기를 축복한 따뜻한 사람들. ⓒ 민경택

   
우리 몸은 더위와 추위로부터 스스로 보호할 수 있는 '방어기전'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 몸이 정상체온 36.5-37.0℃ 범위를 유지하는 것은 이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방어기전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거나 추위에 심하게 노출되면 체온이 35℃ 이하로 떨어지는 저체온증에 걸린다고 합니다. 저체온증이 되면 각종 병에 걸리기도 하고 심한 경우에는 목숨까지 잃는다고 합니다.

돌잔치가 열린 그날 한파가 닥쳤습니다. 세상은 추웠지만 따뜻한 사람들로 인해 돌잔치는 훈훈했습니다. 이 바쁜 세상에 아무런 연고도 없는데도 한 아기를 위해 달려온 사람들, 그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온 아기 엄마 선생님, 마음의 온도를 한껏 올리면서 행복한 표정을 지은 사람들… 한 아기를 축복하다 축복을 받은 사람들이 냉랭한 세상을 녹였습니다. 한 아기가 우리 곁에 온 것은 오직 사랑받기 위해서이고 사랑을 나눠주기 위해서라며 축복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세상이 이토록 추운 원인이 지구 온난화 현상 때문만일까요? 가난했음에도 정(情)과 나눔으로 살았던 이 땅이 풍요로운 땅으로 변했는데도 이렇게 추운 것은 마음들이 저체온증에 걸려서 그런 것은 아닐까요? 차고 넘치는데도 살기 힘들다고 아우성인 것은 슬픈 이웃을 보고도 못 본 적 지나치는 무심함 때문이 아닐까요? 마음의 방어기전이 작동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 아닐까요?

마음의 문을 꼭꼭 잠그고 사는 게 속 편하지만 이렇게 사는 게 사는 걸까 싶습니다. 이렇게 사는 게 안타깝고 답답하다가도 간혹 "세상은 아직 살만하다!"고 말하게 됩니다. 마음의 온도가 따뜻한 사람들, 마음의 방어기전이 제대로 작동되는 이웃들 때문입니다. 한 아기를 위해 마음의 온도를 높이면서 살만한 세상으로 만들어준 모든 분들에게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덧붙이는 글 조호진 기자는 '위기청소년의 좋은친구 어게인'에서 '조호진 시인의 소년희망편지'를 쓰면서 '소년 희망 배달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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