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서지 못해 미안하다며 반성문 올린 로스쿨 교수

로스쿨 정상화를 위해 총궐기 하는 제자들에게 보낸 편지

등록 2019.02.15 11:45수정 2019.02.15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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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공부해야 할 학생들이 거리로 나가 대정부 시위를 벌이겠다면 '선생'은 어떻게 해야할까?

지난 3일, 전국 법학전문대학원 학생협의회는 오는 18일에 '로스쿨 정상화와 변호사시험 합격률 정상화를 위한 총궐기대회'에 나서겠다고 선언하였다. 이에 한 로스쿨의 교수가 그 학교 제자들에게 보낸 편지가 로스쿨생들 사이에서 화제다.

그는, "2월 18일 '총궐기대회' 소식을 접하고 저는 매우 부끄럽고 미안합니다"며 교수의 지위임에도 학생들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하였다. 그간 가파르게 추락한 합격률 하에서 로스쿨이 고시학원화 되고, 이른바 변시낭인이나 오탈자 등이 늘어나는 등 로스쿨이 안고 있는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로스쿨 교수들이 적극 나서지 못했으니 미안하다는 것. 

또 그는, "애당초 로스쿨은 결코 우호적이지 않은 환경 속에서 출범하였고 출범 이후에도 끊임없이 시계바늘을 사법시험의 구시대로 되돌리려는 퇴행적인 도전들에 직면해왔다"며 로스쿨 제도가 겪는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러면서도 "그래도 당당하게 맞서며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곧 법률가가 되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면서 2010년 12월 6일 과천에 모여 외쳤던 선배 로스쿨생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편지는 비단 학생들을 지지하는데에 그치지 않고, "이제라도 교수들도 함께 하겠다"며 교수들의 적극적 노력을 약속하였다. '전국 법학전문대학원 2.18 총궐기대회 TF'에 따르면, 해당 교수가 소속된 '전국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협의회'는 당일 총궐기대회에 참여하여 지지 성명서를 낭독하는 등 학생들과 뜻을 함께 할 예정이며, 추후에는 심포지엄 개최 등 다양한 활동으로 구체적인 해결을 모색한다고. 

이 편지가 로스쿨 커뮤니티 등으로 확산되자, 로스쿨 학생들은 "변호사들은 대한변협이 보호하는데 우리는 홀로 맨몸으로 던져진 것 같아 힘겨웠는데 너무 감사하다", "교수님들이 함께 해주신다니 천군만군을 얻은 것 같다"는 등 감사의 마음을 표현했다.

또 "현재의 파행적 고시학원식 로스쿨이 학생들만 괴롭게 한 것이 아니라 교수님들께도 고통스러운 일터였을 것"이라며 "제발 이번에 로스쿨 교육 좀 제자리로 돌려놓자", "오직 기득권 변호사들 외에는 누구에게도 도움도 안되는 변호사 수 줄이기는 이번에 끝장내자"는 등의 의지를 다졌다.


이하는 편지 전문. 

00대학교 로스쿨 학생 여러분!

오늘, 2010년의 겨울이 떠오릅니다.

법학전문대학원학생협의회가 오는 2월 18일에 '로스쿨 교육 정상화와 변호사시험 합격률 정상화를 위한 총궐기대회'를 개최한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우선 반갑고 고맙습니다. 

이번 '총궐기대회' 소식을 접하고서, 2010년 12월 6일의 '변호사시험 합격자 결정방법 토론회 및 결의대회'를 떠올립니다.

변호사시험 합격자 결정 방법의 결정이 현안이 되어 있던 당시 법무부와 대한변협은 '총입학정원 대비 합격률', '5년간 누적 합격률'이라는 기만적인 개념을 개발하여 합격률을 '총입학정원 대비 합격률 50%'로 하려고, 다시 말해 사법시험 때와 마찬가지로 합격자 1,000명으로 묶어두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맞서 전국의 로스쿨 학생들이 거듭 학생총회를 개최하여 '결의대회'를 꾸려냈습니다. 당시 우리학교 학생회장이었던 1기의 000이 전국 대표를 맡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또 1기의 000는 저를 도와 합격자 1,000명이면 10년 안에 합격률이 13%로 떨어지고 합격자 1,500명이어도 결국 24%까지 떨어진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표를 만들고 합격점을 법률에 명기하고 합격률이 90% 이상 되도록 해서 변호사시험을 완전한 자격시험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을 담은 문건을 전국의 로스쿨 교수와 학생들에게 배포하기도 했습니다.

12월 6일 당일에는 오후 2시부터 약 2시간 반 동안 과천 정부종합청사 대운동장에서 전국 각지에서 대형버스 약 80여대를 이용해 집결한 3,154명의 로스쿨 학생들이
2,601명의 '조건부 자퇴서'가 든 박스를 쌓아둔 채, "우리는 시장에서 평가받고 싶습니다", "국민에 의한 변호사가 되겠습니다, 국민을 위한 변호사가 되겠습니다, 따뜻한 변호사가 되겠습니다, 깨끗한 변호사가 되겠습니다"라고 외쳤습니다.

그 결과 12월 7일에 변호사시험관리위원회에서 합격률이 '총입학정원의 75% 이상'으로 정해졌습니다.

2010년에 로스쿨 학생들은 비록 '완전한 자격시험'이라는 목표는 달성하지 못했지만 '1,000명'에 묶였을 합격자수를 '1,500명'까지 끌어올렸던 겁니다. 그 때 그들이 나서지 않았다면 지금 변시 합격률은 10%대일 것입니다. 

네, 그렇습니다. 2010년의 '결의대회'는 대한민국 로스쿨의 역사를 바꾼 대사건이었습니다. 바로 그러한 노력이 있었기에 지금 대한민국 로스쿨이 이만큼이라도 와 있다고 생각합니다.
  
2월 18일 '총궐기대회' 소식을 접하고, 저는 매우 부끄럽고 미안합니다. 

로스쿨 제도는 '시험에 의한 선발'에서 '교육을 통한 양성'으로 대한민국 법률가양성제도의 축을 획기적으로 옮겨, '다양한 법률가', '인간과 사회와 역사를 이해하는 법률가', '질 높은 법률가'를 길러내고자 도입한 것입니다. 따라서 로스쿨을 진정 로스쿨답게 만들 1차적인 책임은 다름 아닌 '로스쿨 교수들'에게 있습니다.

도입 10년이 지난 지금 로스쿨 학생들은 '시험 지옥'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로스쿨 교수라는 무거운 직함을 이고 사는 사람으로서 그저 부끄럽고 죄스러울 따름입니다.

그래서 저도, 저희 교수들도 이제는 나서야겠습니다. 로스쿨이 출범한 지 10년이 지났고, 제도로서의 사법시험도 완전히 역사 속으로 사라졌으니, 지금이야말로 다시금 로스쿨의 정신을 되새기며 시스템을 다잡아야 할 때입니다.

무엇보다 '교수들은 뭐 하느냐'라고 학생들이 묻고 있는데 더이상은 이렇게 손 놓고 있을 수가 없습니다.

학생들의 '총궐기대회'를 마중물 삼아 이제는 교수들도 나서려 합니다.
  
학생과 교수가 함께 법조인양성교육을 완성합시다!
 

세상에 그냥 주어지는 것은 없습니다. '로스쿨 정상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애당초 로스쿨은 결코 우호적이지 않은 환경 속에서 출범했습니다. 출범 이후에도 끊임없이 시계바늘을 사법시험의 구시대로 되돌리려는 퇴행적인 도전들에 직면해왔습니다. 그래도 당당하게 맞서며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또한 그것이 곧 법률가가 되어가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2010년 12월 6일 과천에 모여 외쳤던 로스쿨 학생들은 분명 그 이전의 법률가와는 다른 법률가가 되어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역사의 현장에 선다는 것은 곧 자신의 정체성을 처절하게 확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왜 법률가가 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심각하게 던지는 과정을 거쳐 법률가가 된 첫 세대입니다. 그들의 그 특별한 경험이 이미 대한민국 법률가의 모습을 바꾸었고 앞으로도 계속 바꾸어가게 되리라고 믿습니다.

로스쿨은 올바른 방향입니다. 지금의 질곡은 로스쿨을 로스쿨답게 만들지 못했기 때문에, 로스쿨을 철지난 사법시험의 틀에 우겨넣으려는 관성이 여전히 작동하고 있기 때문에 생겨난 것입니다. 그 관성을 완전히 잘라내고 로스쿨을 로스쿨답게 만드는 것
그것이야말로 로스쿨에 몸답고 있는 우리 모두의 과제입니다.

2월 18일, 그 역사의 현장에서 또 하나의 역사를 쌓아가게 될 여러분의 소중한 노력에 큰 박수를 보냅니다. 

2019.2.13.

00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000
덧붙이는 글 해당 교수님께서는 본인의 소속 로스쿨과 실명 등을 밝히는 것을 허락하셨으나, 행여 불이익이 있을 것을 우려하여 실명 등을 가린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로스쿨 정상화 #변호사시험 합격률 #2.18. 총궐기대회 #로스쿨 #사법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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