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무서워 기도하던 아이가 이렇게 달라졌어요

[그 엄마 육아 그 아빠 일기 117] 대북정책이 우리집에 미친 영향

등록 2019.02.15 17:58수정 2019.02.15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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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교육부와 통일부는 북한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학생들이 1년 전보다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10월 22일∼12월 10일 전국 초중고 597곳의 학생 8만294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학교 통일교육 실태조사 결과다.

정부가 지난 12일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북한이 우리에게 어떤 대상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적으로 생각해야 하는 대상'이라고 답한 학생이 2017년에는 41%에 달했지만, 2018년에는 5.2%로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협력해야 하는 대상'이라는 답은 41.3%에서 50.9%로 늘었다.

물론 그렇다고 북한의 이미지가 갑자기 많이 달라진 것은 아니다. 여전히 북한 하면 '전쟁'이나 '군사'와 관련된 이미지를 떠올리는 학생이 29.7%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다만 눈여겨 볼 만한 점이 있다. 북한의 이미지와 관련해 '독재·인물'이라고 답한 학생이 2017년 49.3%에서 2018년 26.7%로 줄어들었다는 사실이다. 대신 '한민족·통일'이라는 대답은 8.6%에서 24.9%로 대폭 늘었다.

정부는 이와 같은 조사 결과 등을 근거로 학교 통일교육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앞으로도 통일교육 자료 개발과 교사 전문성 제고 등을 위해 두 부처가 협업을 지속하겠다고도 밝혔다. 현실에서의 남북관계 개선이 교육의 변화를 추동한 것이다.
 

북한에 대한 인식이 달라진 아이들 ⓒ 이희동


까꿍이에게 북한이란?

통계로 보는 인식 말고, 실제로 우리 아이들은 현재 북한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저녁을 먹고 뉴스를 보기 전, 아이들에게 북한에 대한 질문을 뜬금없이 던졌다. 첫째 까꿍이는 3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를 쳐들어온 북한이 의심스럽다며, 전쟁이 무섭다고 걱정하던 아이였다. (관련기사: 닫힌 개성공단, 내 딸도 '반공소녀'로 만들 건가요?)

"까꿍아, 요즘은 북한 안 무서워?"
"응? 북한? 왜?"
"예전에는 북한이 쳐들어와서 전쟁이 날 것 같다고 무서워했잖아."
"그랬나? 이젠 안 무서워. 사이 좋아졌잖아."
"그래도 북한 말을 어떻게 믿어?"
"에이, 아빠가 그랬잖아. 잠깐 사이가 나빠졌을 뿐이라고. 김정은 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도 사이좋던데 뭐. 전쟁 안 날 것 같아."


아이는 단호했다. 3년 전만 해도 북한이 쳐들어와 전쟁이 날 것 같다며 달을 보고 기도까지 하던 녀석이 이렇게 천하태평일 줄이야. 다시 질문을 던져봤다.

"그럼 이제 북한 하면 뭐가 생각나?"
"북한? 글쎄. 북한 국기?"
"잉? 북한 인공기? 왜?"
"올림픽 때 많이 봤잖아. 저번에 미국하고 정상회담 할 때도 봤고. 색깔이나 별 있는 거도 미국 거랑 비슷하더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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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인 북-미 정상 첫 만남역사적인 첫 북미정상회담이 열린 12일 오전 싱가포르 센토사 섬 카펠라호텔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악수를 하고 있다. ⓒ 케빈 림/스트레이츠 타임스 제공

  
너무 뜻밖의 대답이어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북한 하면 뭐가 생각나느냐는 질문에 인공기라니. 이번에 교육부와 통일부에서 발표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기타 정도 되는 건가? 이대로 넘어갈 수 없었다. 다시 한번 더.

"그 다음에는 또 뭐가 생각나?"
"글쎄. 아, 이산가족. 이산가족이 생각나. 저번에 이산가족끼리 만나서 눈물을 흘리는데 너무 슬프더라."


이산가족이라. 이 역시 뜻밖의 대답이었다. 북한 관련 뉴스를 봐도 몇 꼭지 나오지 않았던 이산가족이었건만, 아이에게는 전쟁으로 인해 가족들이 헤어졌다는 사실이 매우 인상적일 수도 있었겠구나.

문득 부끄러워졌다. 남북관계를 떠올리며 내가 이산가족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새로운 깨달음이었다. 나의 대북 인식에서 인도주의적 감수성이 이렇게 부족했던 것인가.

산들이에게 북한이란?
 

그래, 북한 하면 평양냉면이지 ⓒ 이희동

 
아빠와 누나의 이야기가 나름 재미있게 느껴졌는지 9살 둘째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아빠, 나한테도 물어봐. 북한 하면 뭐가 떠오르는지."
"그래. 넌 북한 하면 뭐가 떠올라?"
"난 평양냉면. 평양냉면은 북한에서 온 거잖아."


그래, 우리가 여름에 평양냉면을 먹으면서 북한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했었지. 한국전쟁 이후 실향민들이 내려와 고향을 잊지 못해 평양냉면을 먹으며 눈물 흘리던 이야기, 같은 맥락으로 부산에 밀면이 생긴 이야기 등. 이야기는 이어졌다.
  
"그리고 탱크가 생각나. 핵미사일을 싣고 움직이는 탱크들. 뉴스에서 많이 봤어."
"그렇지. 안 무서워?"
"응. 안 무서워."
"왜? 그거 가지고 전쟁 나면 어쩌려고?"
"전쟁 안 날 거야. 문재인 대통령하고 김정은하고 약속했잖아. 그리고 아빠가 그랬잖아. 결국 사이가 좋아질 거고 그러면 우리도 북한 갈 수 있다고."

 

둘째가 떠올렸을 북한의 무기 ⓒ 연합뉴스

 
의외였다. 둘째는 통일부와 교육부의 설문조사 내용처럼 북한의 이미지로 '군사'를 떠올렸지만, 그것이 전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게 새로웠다. 그냥 북한 하면 미사일이 생각날 뿐, 그것을 위협적으로 인식하진 않는다는 것이다.

3년 전만 해도 '북한=공포'였던 아이들인데, 이제는 전쟁이 나지 않을 거라고, 오히려 북한에 갈 수 있다고 좋아하는 모습이라니. 교육을 떠나서 뉴스에서 보여주는 현실이, 그리고 사회가 보여주는 환경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2차 북미정상회담이 보름도 남지 않았다. 혹자들은 이 모든 것이 북한의 술책이고, '신북풍'이라고 폄훼하지만, 어쨌든 세상은 조금씩 변해 왔다. 그 결과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들도 겨울 뒤 봄을 꿈꾸고 있다.

이번에 발표된 학생들의 북한에 대한 인식변화는 바로 우리 사회가 꿈꾸는 미래에 대한 희망이기도 하다. 부디 두 국가 정상이 신속히 옳은 결정을 해서 새로운 세상을 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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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지금은 비록 회사에 몸이 묶여 있지만 언제가는 꼭 공부를 하고자 하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네트워크부 에디터. "쓰는 일에, 그렇게 해서 당신을 만나는 일에 나는 어느 때보다 욕심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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