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폐지, 차별 없는 재생산권 보장 위해 필수적

등록 2019.02.27 09:54수정 2019.02.27 09:54
0
원고료주기
얼마 전, 헌법재판소가 4월 특별기일을 열어 형법상 낙태죄에 대한 결정을 선고할 것이라는 내용이 보도되었다. 지난 해 5월 공개변론을 한지 1년여 만에 이루어질 이번 결정의 결과에 대해 해당 기사는 헌법불합치가 나올 가능성을 조심스레 예상하였다.

낙태죄는 여성의 경험과 현실을 무시한 채 만들어졌을 뿐만 아니라 재생산권의 보장에 대해 국가가 고민할 부분을 개인에게 모두 떠안게 한 조항으로 폐지되는 것이 너무나 마땅한 일이다. 따라서 헌법재판소가 공개변론에 참여한 재판관들의 퇴임 전에 특별기일을 열어 선고를 하고, 또 아직 확실하지는 않으나 위헌 쪽의 의견이 예상되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결정의 결과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이 과정에서 어떠한 내용이 담기는가이다. 헌재는 2012년 결정에서 낙태죄의 문제를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결정권의 대립으로 보았지만, 지난 수년간 여러 사람들이 짚어 낸 낙태죄의 본질은 이 법이 여성의 재생산권, 건강권, 평등권, 자기결정권을 총체적으로 침해한다는 점이었다.

그렇기에 헌재가 이런 점에 대해 훨씬 진전된 판단을 내리기를 바라며, 이 글에서는 주로 평등과 반차별의 관점에서 낙태죄가 갖는 문제를, 그리고 낙태죄 폐지와 함께 모두의 재생산권 보장을 위해 더 많이 필요한 이야기들을 해보고자 한다.

낙태죄가 만드는 차별의 구조

지난 14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여성 1만 명을 대상으로 인공임신중절경험과 낙태죄에 대한 의견 등을 조사한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를 발표했다. 해당 조사에서 주목할 부분은 낙태죄 에 대한 인식의 변화였다. 응답자 중 75.4%가 형법상 낙태죄를 개정해야 한다고 답했고, 개정이 불필요하다는 답은 3.8%에 불과했다. 개정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서는 66.2%가 '인공임신중절 시 여성만 처벌하는 점', 65.5%가 '인공임신중절의 불법성이 여성을 안전하지 않은 환경에 노출시키는 점'을 꼽았다.

이러한 여성들의 응답은 그 동안 낙태죄라는 명목 하에 불법화하고 통제해 온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임신, 출산이 모든 여성들의 경험은 아니고 그럴 필요도 없음에도, 낙태죄는 여성은 임신하고 출산하는 것만이 '자연스러우며' 이를 거부하는 것은 무책임하고 그렇기에 처벌되어야 한다는, 성역할에 대한 획일적이고 낡은 고정관념에 기반한 것으로 본질적으로 이미 차별적인 조항이다.

더구나 예외적으로 임신중절사유를 규정한 '모자보건법'에서조차 이를 위해서는 여성 본인의 결정 외에 배우자의 동의를 요구함으로써 남성권력에 의한 여성의 통제를 가능하게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역시 성별에 대한 차별이다. 그리고 이렇게 임신중절이 원칙으로 불법이고 국가가 예외적으로만 통로를 열어주는 상황 속에서 안전하지 않은 임신중절로 인한 건강권, 생명권의 침해는 오로지 여성이 감당해야 하는 일이 된다.

이러한 여성의 차별현실을 잘 지적한 것이 지난 2018년 2월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의 한국정부에 대한 권고이다. '여성에 대한 모든 형태의 차별 철폐에 관한 협약'의 이행여부에 대한 심사결과, 위 위원회는 한국정부에 "안전하지 않은 낙태가 모성 사망과 질병의 주요 원인이라는 관점에서 당사국이...여타의 모든 경우에도 낙태를 비범죄화하고 임신중절 여성에 대한 처벌조항을 삭제할 것, 안전하지 않은 낙태로 인해 합병증을 겪는 경우 등을 포함하여 임신중절 여성에게 양질의 수술 후 돌봄 체계에 대한 접근을 제공할 것을 촉구한다"는 권고를 내렸다.

이제는 낙태죄가 만들어 낸 차별의 구조를 벗어나 여성이 진정으로 평등하게 건강권, 재생산권 등을 누리기 위해 고민해야 할 때이고, 헌재가 이에 대한 진전된 답을 내려야 할 것이다.

비범죄화를 넘어 평등을 위한 더 많은 이야기들

그런데 한편으로 낙태죄가 폐지된다면 모든 차별의 문제가 해소될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낙태죄의 본질적 문제는 위에서 이야기했듯 국가 또는 젠더권력에 의한 재생산권의 통제이고 이것은 형사처벌의 문제를 넘어 개인의 몸이 성별, 장애, 연령, 출신국가, 성적지향, 계급 등에 따라 얼마나 위계화되고 차별적으로 다뤄지고 있는지가 핵심이기 때문이다.

가령 '모자보건법' 제14조는 임신중절의 예외적 허용 사유 중 하나로서 '본인 또는 배우자가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을 가진 경우'를 예외 사유로 두고 있다. 인간을 우열로 나눌 수 있다는 '우생학'이라는 용어에서부터 문제가 많은 이 조항은 장애여성의 재상산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인식을 근저에 깔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은 2017년 대법원에서 국가손해배상 판결을 내린 한센인에 대한 강제 단종·낙태수술에서처럼 국가에 의한 강제적 생식능력제거수술로, 또는 꼭 수술이 아니라도 현재도 수용시설 내에서 장애인에 대해 이루어지는 성적권리와 재상산의 통제로 이어진다. 임신중절을 범죄화하면서까지 재생산을 강요당하는 여성들의 경험, 장애라는 이유로 재생산을 통제당하는 여성들의 경험, 이 둘은 서로 연결되어 우리 사회가 재생산과 성적 권리를 어떻게 통제해왔는지를 드러낸다.

성소수자, 그 중에서도 트랜스젠더는 어떠한가? '모자보건법'은 일본의 '우생보호법'의 많은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것인데, 일본에서는 1966년 트랜스젠더에게 성전환수술을 한 의사가 바로 이 '우생보호법' 위반으로 처벌받는 일이 있었다. 정당한 이유 없이 우생수술(생식능력제거수술)을 했다는 이유였다. 우생학적 관점에서 인구정책을 위해 생식을 해야 되는 사람과 그렇지 않아도 되는 사람을 나누는 과정에서, 트랜스젠더는 인구정책을 위해 생식을 강요당했던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지금 일본과 한국 모두 이제는 트랜스젠더가 자신의 성별로 살기 위해서는 '생식능력이 없을 것', '미성년자녀가 없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기존의 성별이분법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지정성별과 성별정체성이 다르다는 이유로 자녀를 가져서도 가질 생각도 해서는 안 된다는 요구는 재생산권 침해의 또 다른 단면을 보여준다.

재생산권이 단지 임신, 출산을 할지 말지의 결정권을 넘어 건강 및 과학적 진보 혜택의 권리, 정보와 교육의 권리, 비차별과 존중받을 권리와 그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포괄하는 개념이라는 점에서, 이주여성의 이야기는 또 다른 논의를 제기한다.

이주노동여성의 열악한 근로조건과 작업환경으로 인한 건강권 침해, 최근 결혼이주여성 생식건강실태조사에서 나타난 진료비 및 언어부담으로 인한 의료서비스 및 정보 접근권의 제한의 문제 등은 차별 없는 재생산권을 위해 국가가 근본적으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든다.

마찬가지로 설령 낙태죄가 폐지되더라도 그 이후 재생산건강을 위한 보건의료에 접근하는 데에는 연령, 소득수준, 계급에 따라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낙태죄 비범죄화는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일이지만, 그것이 곧 끝은 아니고 비범죄화를 넘어 반차별과 평등을 위해 더 많은 이야기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차별을 통치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권력을 넘어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차별의 구조를 파헤치고 일상의 차별과 차별금지법을 연결하는 여러 이야기들을 만들기 위한 운동들을 해오고 있다. 이 과정에서 더욱 분명해진 것은 차별이 단지 특정 집단의 문제, 도덕의 문제가 아닌 다수자로 대표되는 사회의 권력구조 속에서 여러 소수집단을 분할하고 통치하기 위한 수단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낙태죄로 대표되는 국가에 의한 재생산의 통치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인구정책 내지는 남성/비장애/이성애/국민 등으로 대표되는 다수권력을 유지하는 과정에서 여성/장애인/성소수자/이주민 등 여러 교차되는 집단들은 인구유지를 위해 출산을 강요당하거나 또는 비정상적 존재로서 생식능력을 부정당하거나 보건의료정책에서 배제되는 모욕을 겪어야 했다.

더 이상 이런 모욕은 끝내야 하기에, 한 달여 남은 선고기일에 헌재는 반드시 여성의 경험과 현실에 입각한 낙태죄 위헌결정을 내기를 바란다. 그리고 나아가 모두의 재생산권 보장을 위해 기존의 권력의 틀을 바꿔나갈 수 있는 더 많은 이야기가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한편으로 이러한 다양한 차별의 이야기를 묶어내기 위해서는 차별해소를 위한 실질적 조치가 필요하다. 이와 관련해 유엔 사회권위원회는 재생산권에 대한 일반논평 제22호에서 재생산권보장에 있어 반차별과 평등, 교차성과 복합차별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반차별 및 실질적 평등을 보장하는 조치는 교차차별이 성적 및 재생산 건강권 실현에 대해 미친 악영향을 인식하고 이것의 극복을 추구해야 한다"고 이야기하였다.

이처럼 차별이 결코 단일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여러 사유가 복합되어 차별의 구조를 만든다는 점, 이를 위한 실질적 조치로서 포괄적 차별금지법제정 역시 모두를 위한 재생산권 보장을 위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사회의 과제이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한희는 차별금지법제정연대 활동가입니다. 이 글은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월간 소식지 '월간평등up'에도 실렸습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의 월간평등up의 2월호 주제는 '여성'입니다. 3.8 여성의 날을 앞두고 3가지 이야기를 나눌 예정입니다. 다음 이야기도 기대해주세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네이버 채널에서 오마이뉴스를 구독하세요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헌법의 평등이념과 포괄적인 차별금지를 실현하는 인권기본법인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고자 실천하는 연대체입니다.

AD

AD

인기기사

  1. 1 이낙연 "죄다 니들 탓?"... 한국당에 한방 먹인 총리
  2. 2 목사가 본 황교안의 행보, 정말 당황스럽다
  3. 3 '버닝썬'에 대한 고등학생들의 일침, 섬뜩한 예언
  4. 4 장내 잠재운 이낙연의 한마디 "버닝썬이 좋은 겁니까"
  5. 5 "지방대생은 수준차이 나"... 서울대생의 속내, 더 아픈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