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페이 체험해 봤더니... 이거 정말 불편하네요

[주장] 소상공인에 도움? 결제 복잡하고 혜택도 와닿지 않아… 부족한 확장성도 문제

등록 2019.04.12 20:38수정 2019.04.18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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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서울시장과 방기홍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상임회장(가운데), 최승재 소상공인연합회 회장(오른쪽 두번째), 이재광 전국가맹점주협의회 공동의장(맨 오른쪽)이 1월 24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청 대회의실에서 열린 ‘제로페이 국민운동본부 발족식’에 참석해 제로페이 활성화에 적극 동참하기로 결의했다. ⓒ 유성호


정부와 지자체가 야심차게 도입한 모바일 간편결제 서비스 '제로페이'가 운영을 개시한 지 100일이 지났다. 제로페이는 지난해 10월 중소벤처기업부와 서울시가 가맹점을 모집하며 시작해 현재 기획재정부와의 협업 아래 서울시와 인천시, 부산시, 경상남도, 전라남도 등 각 지자체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는 간편결제 서비스다. 지난해 12월 시범운영을 거쳐, 올 3월 본격적으로 시행됐다.

정부는 제로페이로 자영업자들의 카드결제 수수료 지출을 낮춰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소상공인의 부담을 경감시킨다는 계획이다. 매출 연 8억 원 이하의 가맹점에서는 결제 수수료를 아예 받지 않는다.

좋은 의도를 갖고 출범했지만, 막상 시장 반응은 미적지근하다. 조선비즈는 제로페이의 2월 결제액이 개인카드 결제액의 0.001%에 불과하다고 4일 보도했다.

제로페이를 한 번도 사용한 적 없다는 대학생 윤성산(24)씨는 "취지가 좋다는 말은 들었지만, 이용자 입장에서 큰 도움이 되지 않아 앞으로도 쓸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서울 성북구에서 분식집을 운영하는 자영업자 이아무개씨(57)도 "제로페이 시범사업에 가맹점으로 등록했지만 아직 제로페이로 결제한다는 손님은 한 명도 없었다"면서 "먹고살기 바쁘다 보니 설명서도 못 읽어봤고, 아직 가맹점용 결제 애플리케이션도 안 깔았다"고 털어놨다. 가맹점주는 가맹점용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해야만 손님이 제로페이로 송금했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결제방식 복잡... 가맹점주조차 "사용하기 어려워"

왜 소비자들은 제로페이를 사용하지 않을까? 기자가 직접 제로페이를 사용해보기로 했다. 기자가 주로 이용하는 모바일 송금서비스 토스는 제로페이 사업에 참여하지 않았다.
 

제로페이 결제는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 건네주기만 하면 되는 신용카드 결제방식보다 훨씬 복잡하다. ⓒ 고정미


어쩔 수 없이 주거래은행인 KB국민은행을 통해 제로페이를 사용하기로 마음 먹었다. 이미 'KB국민카드' 'KB스타뱅킹' 등 KB국민지주 계열 애플리케이션이 다섯 개나 깔려있었지만 제로페이를 사용하기 위해선 'Liiv'(리브)라는 애플리케이션을 새로 설치해야 했다. '리브'를 설치해 실행하고 본인인증과 비밀번호 설정 등을 완료한 뒤에야 비로소 제로페이 메뉴에 접근할 수 있었다. 접근 과정에서 리브뱅크페이 이용동의를 요구한 것은 놀랍지도 않았다. 지난한 과정을 거치고서야 비로소 제로페이를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사용자 접근성이 너무 떨어졌다.


최근 제로페이 정식사업에 합류한 카카오페이의 경우는 그나마 사정이 나았다. 스마트폰 이용자 대부분이 사용하는 카카오톡 애플리케이션 내에서 가입 신청을 할 수 있었다. 카카오페이에 가입하고 계좌를 연결하면 끝이다. 그러나 결제 방식은 여전히 기존의 신용카드보다 복잡했다.

제로페이 결제를 위해서는 우선 핸드폰 잠금을 풀고 사용하고자 하는 기업의 간편결제 애플리케이션을 찾아 실행한 뒤 해당 애플리케이션 내에서 제로페이 메뉴를 찾아야 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결제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QR코드 촬영 버튼을 눌러 가게의 QR코드를 촬영한 뒤 송금금액까지 직접 입력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송금 버튼을 누르고서야 결제과정이 끝난다.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 건네주기만 하면 되는 신용카드 결제방식보다 훨씬 복잡하다. 갤럭시페이나 LG페이 역시 기존의 카드 결제보다는 결제 과정이 복잡하지만, 대중교통을 포함해 대부분의 매장에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지갑을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 제로페이는 사용처가 제한적이라 제로페이만 믿고 카드를 놓고 다닐 수도 없다. 

소상공인 입장에서도 제로페이가 불편하긴 마찬가지다. 손님이 카드나 현금 등으로 결제하는 경우, 매장 내 포스기를 통해 결제 여부를 바로 확인할 수 있다. 반면 제로페이의 경우 가맹점주가 직접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실행해 금액이 이체됐는지 여부를 확인해야 하는 구조다.

서울에서 도서대여점을 운영하는 자영업자 이아무개(35)씨는 "제로페이 애플리케이션으로 송금이 됐는지 여부를 직접 확인한 다음에 포스기까지 만져야 하니 품이 두 배로 든다"면서 "찾는 손님도 별로 없어 운영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씨는 "결제 즉시 사업자 계좌로 결제액이 입금되는 카카오페이와 달리 제로페이는 결제 후 입금되기까지 3일이 걸리더라. 계좌송금 방식이라고 홍보하는데, 오히려 더 불편한 것 같다"고 불만을 호소했다.

QR결제 주 사용층은 2030세대... 혜택은 연말정산?

물론 이용 방식이 복잡하더라도 사용자에게 돌아가는 혜택이 많다면 이용을 고려해볼 수 있다. 서울시가 내세우는 대표적인 혜택은 소득공제율이다. 올해부터 제로페이로 결제하면 이용금액의 40%를 소득공제해준다. 소득공제율이 15%인 신용카드나 30%인 체크카드·현금영수증보다 더 많은 소득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셈이다. 서울시는 제로페이 홍보 광고에서 연소득 5천만 원인 직장인이 2500만 원을 제로페이로 사용하면 연말정산시 75만 원을 환급받아, 동일한 금액을 신용카드로 결제했을 때 환급받는 28만 원 보다 47만 원을 더 돌려받을 수 있다고 홍보한다.

문제는 연간 2500만 원을 카드로 지출하는 국민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서울시가 가정한 연소득 5천만 원 이상의 직장인은 대한민국 소득 상위 20%로, 이들 중 대다수가 사회 생활을 오래 지속한 중장년층이다. 그런데 40대 이상의 중장년층은 QR코드 결제방식에 익숙하지 않다. QR코드 결제의 주 이용층은 간편결제에 상대적으로 익숙한 20~30대다. 지갑사정이 가벼운 이들은 연말정산 혜택보다 당장 체감되는 캐쉬백 방식의 환급을 선호한다.

또 계좌에 현금이 없어도 결제가 되는 신용카드 대신 현금이 있어야만 결제가 가능한 제로페이를 선택할 유인도 없다. 사회초년생인 직장인 이서영(26)씨는 "당장 통장에 현금이 없는데, 소득공제율이 아무리 높더라도 제로페이를 쓰겠냐"면서 "길게는 1년 뒤에나 정산되는 소득공제 혜택만 보고 신용카드의 장점을 포기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연간 2500만 원을 카드로 지출 중인 소비자라고 모두 47만 원을 돌려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서울시가 가정한 상황은 2500만 원을 모두 제로페이로 지출한 경우이다. 아직 제로페이 가맹점 수가 10만 개에 불과한 데다, 온라인 쇼핑몰 등에선 제로페이를 사용하지 못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모든 소비를 제로페이로 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정부는 다양한 추가혜택으로 이를 보완하겠다는 계획이다. 서울시는 390개 공공·문화시설에서 제로페이로 결제할 시 할인혜택을 제공한다. 그런데도 소비자들의 반응이 미적지근한 이유는 무엇일까.

문제는 제로페이의 '비직관성'이다. 결제 방식도 복잡한데, 누릴 수 있는 혜택도 바로 체감되지 않는다. 소득공제 환급액은 연말정산 시기가 되어서야 알 수 있다. 당장 피부로 와 닿지 않는다. 공공·문화시설 할인 혜택도 마찬가지다. 소비자가 능동적으로 할인혜택 제공 시설을 찾지 않으면 혜택을 누리기 힘들다.

"'소상공인 살리기' 명분만으로 살아남을 수 없어"

최근 국내외 소비자들이 토스, 카카오 등 핀테크 기업에 쏠리는 이유는 이들 기업의 서비스가 기존 금융업계의 서비스보다 쉽고 편리하기 때문이다. 사용자들이 손쉽게 결제와 송금을 할 수 있고, 혜택도 직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최근 애플이 발표한 '애플 카드'다. 3월 25일(현지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열린 발표회에서 애플은 '애플 카드'를 소개하며 직관성을 강조했다. 기존 신용카드에 존재하는 복잡한 혜택을 모두 없애고, 사용액의 2%를 현금으로 당일 환급해준다고 밝혔다. 애플스토어 등에서 이뤄진 결제액에 한해서는 3%를 환급한다. 전월 실적도 없다.
 

애플이 간편결제 서비스 '애플페이'를 기반으로 한 신용카드 '애플카드' 출시를 앞두고 있다. ⓒ 애플

 
결제 과정도 단순하다. 애플 카드는 기존의 애플 페이와 동일한 방식으로 작동한다. 아이폰의 전원 버튼을 두 번 연속 누르면 언제든지 애플 페이 기능이 활성화된다. 자동으로 생체인식 기능이 작동하고, 인증을 마치면 결제 대기 상태가 된다. 이 상태로 아이폰을 NFC 단말기에 대면 결제가 끝난다. 사용자들이 빠르게 결제 기능에 접근할 수 있고, 자신이 얼만큼 혜택을 받았는지를 바로 체감할 수 있다. 애플 카드는 2019년 여름부터 미국 시장에 우선 출시된다.

고려대학교 미디어학부 정윤혁 교수는 "가장 큰 문제는 정부가 제로페이를 이커머스(e-commerce)가 아닌 공공서비스로 보고 있다는 것"이라며 "아무리 명분이 좋다고 해도 소비자의 선택을 받지 못하면 지속 가능성이 없다"고 밝혔다. 제로페이가 카드사, 핀테크 기업 등 기존 사업자와 경쟁하려면 이들을 압도할 수 있는 무기가 필요한데, 정부는 그저 '소상공인 살리기'란 명분만 내세우고 있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부족한 확장성도 제로페이의 문제로 꼽았다. 정 교수는 "모바일 간편결제 시스템의 핵심은 화폐처럼 어디서나 사용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네트워크 효과가 강한 간편결제 시장의 특성상, 소수의 가맹점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결제방식은 성공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서울시는 "지난해 10월 가맹점 모집을 시작한지 5개월 만에 가맹점 10만호를 돌파했다"고 8일 밝혔다. 그러나 직접 확인한 현장 반응은 냉담했다. 기자가 방문한 제로페이 가맹업장 대부분이 아직 한 번도 제로페이를 사용하지 않았다. 정부가 제로페이의 사용자 경험을 적극적으로 개선하지 못하면 소상공인의 결제 수수료 부담을 덜겠다는 정부의 계획 역시 물거품이 될 공산이 크다.  
#제로페이 #경제 #서울시 #정부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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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학을 공부하는 대학생. 사회의 어두운 곳을 비추는 기자가 되길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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