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철과 유시민의 질긴 인연... '80년 봄' 놓고 다른 목소리

심 의원, <대화의 희열2>에 출연한 유 이사장에 해명 요구...'서울역 회군'에 대한 기억도 달라

등록 2019.04.24 15:55수정 2019.04.29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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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오른쪽)이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에게 발끈했다. 유 이사장이 지난 21일 KBS 2TV <대화의 희열 2>에 출연해 한 발언을 문제 삼은 것. 그렇다면 심 의원이 지적한 유 이사장의 발언은 무엇일까. ⓒ 남소연

 [기사 수정 : 24일 오후 5시 20분]

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경기 안양동안구을)이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에게 발끈했다.

그는 22일 보도자료를 통해 "유시민은 역사적 진실을 예능으로 왜곡해서는 안된다"며 해명을 요구했다. 유 이사장이 지난 21일 KBS 2TV <대화의 희열 2>에 출연해 한 발언을 문제 삼은 것. 그렇다면 심 의원이 지적한 유 이사장의 발언은 무엇일까.

유 이사장은 방송에서 1980년 '서울의 봄' 등 당시 민주화 운동, 특히 '서울역 회군(1980년 5월 15일)'과 그 이후 상황 등을 회고했다. 유 이사장은 '서울역 회군' 당시 서울대학교 총학생회 대의원회 의장으로 현장에 있었다.
 
"(체포됐을 때보다) 무섭기는 그 이틀 전 서울역에서 집회할 때가 진짜 무서웠다. 선배들이 버스 위에 올라가서 '해산하면 안 된다'고 이야기를 하라고 했다. 올라가서 그 이야기를 했다. 나는 속으로는 무서워 죽겠는데, '해산하면 안 된다, 여기서 계속해야 한다'라고 하고 내려왔는데 너무 무서웠다. '군인들이 들어오면 나는 죽겠지'라고 생각했다." - 서울역 회군 당시를 회고하며  <대화와 희열2>

유 이사장은 그 외에도 계엄군사령부 합동수산본부에 끌려가 구타당하던 당시를 회고하며 "글 쓰는 걸 잘 하는 걸 그 때 알았다"고도 말했다.

그러면서 "진술서를 쓰면 안 때려서 하루에 100장을 쓴 적이 있다"며 "최대한 창작을 해야 한다, 기억이 안 나는 건...나는 한 대라도 덜 맞아보려고, 최대한 상세하게 그 사람들이 원하는 누구를 붙잡는 데 필요한 정보는 노출 안 시키고 학생회 말고 다른 비밀조직은 노출 안 시키면서, 모든 일이 학생회 차원에서 이뤄진 걸로, 언제 어디에서, 어느 대학, 어느 대학 누구가 신촌 어느 중국집에서 밥을 뭘 먹었는지 다 쓴 거다"고 말했다.

유 이사장은 이 과정에서 누군가의 실명을 거론하진 않았다. 그럼에도 심 의원이 민감하게 반응한 까닭은 그 역시 관련 사건들의 당사자였기 때문이다. 심 의원도 '서울역 회군' 당시 서울대학교 총학생회장으로서 거기에 있었다. (80년 서울역 회군에 대해서도 심 의원은 24일 페이스북을 통해 "서울역 회군은 당시 철수하지 않았어야 하고 희생을 불사하고라도 청와대로 진군했어야 한다는 일부 급진적인 운동권 논리가 만들어낸 말"이기 때문에 '서울역 철수'가 맞는 말이라고 주장했다.)

1980년 5월 '서울역 회군'과 5.18

'서울역 회군'은 박정희 전 대통령 사망 이후 사회 전반에서 거세게 불거졌던 민주화 요구를 상징하는 역사적 사건이다.

1980년 5월 14일, 고려대에 모인 서울 지역 대학교 학생회 지도부는 12.12 군사반란을 통해 실권을 움켜쥔 전두환 신군부를 규탄하는 총궐기를 결의했다. 그리고 그 다음날인 15일, 약 10만 명의 학생들과 시민들이 서울역 앞에 모여 '계엄령 해제'와 '유신헌법 개정'을 요구했다. 그러나 신군부가 공수부대 등을 투입한다는 얘기가 전해지면서 해산 여부를 두고 학생 지도부 사이에서 논쟁이 벌어졌다. 심 의원은 해산을 주장하는 온건파, 당시 서울대 복학생협의회 회장이었던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에 반대하는 강경파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국 서울대를 비롯한 16개 서울 소재 대학교 총학생회장들은 격론 끝에 해산을 결정했다. 그러나 이는 혹독한 결과로 이어졌다. 전두환 신군부는 '서울역 회군' 이틀 후 5.17 쿠데타를 감행,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국회 해산을 선포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인 5월 18일 광주 일대에 공수부대를 투입했다.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 사건도 이 때의 일이다.

그로 인해 민주진보진영에선 당시 학생운동 지도부의 '서울역 회군' 결정이 잘못됐다는 평가도 나오기도 했다. 심 의원 역시 이러한 평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 이런 가운데, 유 이사장이 방송을 통해 자신이 기억하는 '서울역 회군'을 거론하고 나서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이다.

이에 대해 심 의원은 유 이사장이 '서울역 회군' 등 민주화 운동 당시 자신의 행동을 일방적으로 미화했다고 주장했다.

일단, 심 의원은 '서울역 회군' 당시 자신이 버스 위에 올라가 해산에 반대했다는 유 이사장의 발언은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당시 서울역 광장에 마이크 시설이라고는 이수성 서울대 학생처장의 주선으로 확보한 마이크로버스 한 대에 달린 소형 확성기뿐이었다"면서 "당시 마이크를 쥔 사람은 서울대 총학생회장이었던 본 의원뿐이었다"라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유 이사장의 진술서 탓에 본인을 비롯한 많은 민주화 운동 인사들이 고초를 겪었다고도 밝혔다.

심 의원은 "1980년 합수부에서 쓴 A4 용지 90쪽 분량에 이르는 그(유시민)의 상세한 운동권 내부 동향 자백진술서는 사실상 그가 진술서에서 언급한 77명의 민주화 운동 인사를 겨눈 칼이 되었다"라며 "그 중 3명은 김대중내란음모조작사건의 공동피의자 24인에 포함되는 등 검찰이 재판부에 제출한 핵심 증거로 활용됐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1995년 내란음모조작 사건고발인 진술서를 작성할 때 비로소 1980년 유시민 진술서의 내용을 알 수 있었다"며 "(앞서는) 침묵했지만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에서마저 거짓을 역사적 사실로 왜곡하는 모습을 보고 진실을 공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유 이사장이 방송에서 웃으면서 이야기한 진술서가 당시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학생들을 체포, 고문하는 데 활용됐다는 요지다. 이는 심 의원 본인에 대한 얘기이기도 하다. 그는 '서울역 회군' 후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 사건 등에 휘말려 징역형을 선고 받았다. 공교롭게도 심 의원은 4월 23일 재심을 통해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 사건'에 대해 39년 만에 무죄를 선고 받았다.

'서울역 회군' 이후 두 사람의 인생 역정도 정치적으로 확연히 엇갈렸다.

심 의원은 1985년 영어교사를 거쳐 MBC 기자로 입사했다. 그리고 1995년 12월, 신한국당 부대변인으로 본격적인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 복학 후에도 학생 운동을 계속했던 유 이사장은 1985년 '서울대 프락치 사건'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그가 쓴 '항소이유서'는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됐다. 이후 독일 유학에서 돌아온 유 이사장은 1988년 13대 총선에서 평화민주당 소속으로 당선된 이해찬 대표의 보좌관으로 일하면서 정치에 입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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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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