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문의 1패' 후 변론, 모든 생명은 존귀하다

[경비일지] ‘인(仁)’, 그리고 삶에 임하는 자세

등록 2019.05.06 14:57수정 2019.05.06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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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仁)=인(人)+이(二)'


인간의 지극한 도리라는 '인'을 이렇게 알았습니다. 물론 공자가 강조하는 '어질 인(仁)'은 예수가 말하는 '사랑(愛)'이요, 석가모니가 지칭하는 '자비(慈悲)'의 또 다른 표현입니다. 점수(漸修) 중, '인'의 의미가 더 많고 큼을 배웠습니다.

'인(仁)=인(人)+같다(=)'

'인'은 사람과 사람 사이라는 둘의 개념을 넘어 "모든 인간(생명)은 같다"라는 겁니다. 대동(大同)이라는 거죠. 공자는 '인'을 통해 모든 생명은 하나임을 강조했습니다. 이를 알기까지 많은 세월이 흘렀습니다. 이제라도 자연과 함께 소통할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매화를 보니 은은한 향기가 코에 스미는 듯합니다. 인간도 누구나 고유의 향이 있다 합니다. 우리 모두는 각자 어떤 향을 지녔을까? 삶을 되돌아보며 지혜 얻기 바랍니다. ⓒ 임현철

  
노동과 삶에 임하는 세 가지 원칙, 그리고 역지사지

세상살이, 인간관계 속에서 무슨 일이든 해야 합니다. 일, '노동의 가치'를 떠나, 먹어야 살고, 자신과 가족 존재의 원천입니다. 제가 하는 시설 경비 일은 단순합니다. 아시다시피 외부로부터 시설물을 경계하는 게 주 업무입니다. 따라서 24시간 근무 체제입니다. 이밖에도 차량과 인원 출입 통제 및 보호, 방문객 안내, 허가에 따른 물건 반출 등을 살핍니다.

4년 전, 경비 일을 시작하며 나름 원칙을 세웠습니다. 첫째, 섬기는 마음으로 모든 사람을 대할 것. 둘째, 화물노동자와 일용노동자, 하청 및 협력업체 사람들에게 더 따뜻하게 대할 것. 셋째, 상대에게 도움 되게 할 것 등입니다. 그 출발점은 '나'를 내려놓음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러자 따뜻한 마음으로 되돌아왔습니다. 반대의 경우도 있더군요. 관계 단절이랄까.


처음 시설경비 할 때 적응하기 힘들었습니다. 경례 할 때 '개무시'하고 쓱 지나는 사람들 때문입니다. 대부분 낮은 직위 사람들은 창문을 열고 상호 반갑게 인사하는 경향입니다. 허나 높은 직위 사람들은 무반응입니다. 대체로 같이 엮이고 싶지 않아 하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자동차 썬팅이 진해 차 안을 들여다 볼 수가 없습니다. 완전 불통.

간혹 인사라도 놓칠 경우 불똥이 떨어지곤 합니다. 대표, 공장장 등 높은 사람이 오가는데 인사 안했다나. 비상이지요. 그들은 왜 인사를 못했는지 여부는 아예 관심 밖입니다. 인건비 줄이려고 인원을 줄이거나 혼자 근무하는 경우가 많은데도. 역지사지(易地思之)가 필요합니다. 암튼 그릇이 되지 않은 사람이 높은 자리에 오를 경우 꽤 시끄럽습니다.

'의문의 1패' 후 변론, 모든 생명은 누구나 평등하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서울에서 공장 현장에 오는 대기업 계열사 대표이사. 인사와 소통은 고사하고, 늘 진한 썬팅의 차량 창문은 꼭꼭 굳게 닫혀 있었습니다. 근무한 지 일 년이 되어가는 데도 얼굴 볼 기회조차 없었지요. 그래, 그룹 임원에게 전화했습니다.

"○○○ 대표라는 사람은 기본이 안 됐다. 인사하는데 반응이 없다. 아직까지 대표 얼굴도 한 번 못 봤다. 윗사람은 힘없는 사람에게 더 잘해야 빛나는 법. 대표 잘못 앉힌 거 같다."

경비에 대한 세상 인식은 밑바닥입니다. 더 이상 갈 데가 없다는 거죠. 이러기까지 내적 및 외적 요인이 많습니다. 갈 곳 없음, 쪼들림, 미처 덜 배움, 최저 임금, 열악한 근무 조건, 힘없고 빽없는 '을' 등…. 이건 그래도 견딜 만합니다. 뭇 경비들이 힘들어하는 건 따로 있습니다. 바로 '외부의 따가운 시선'입니다.

경비라 하면 우선 "눈 내리 깔고 본다!"는 거죠. 요즘 말로, '의문의 1패'입니다. 한 수 접고 들어가는 자체가 불합리입니다. 동료들은 "보이지 않으나 눈에 뻔히 보이는 차별이 심하다!"고 하소연입니다. 그들이 주문하는 건 "누구나 평등하다!"는 사람답게 살 권리입니다. 일이란?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방편일 뿐! 역시, '분별'은 깨달음을 막는 장애입니다.

항의 전화 후 어떻게 되었냐고요? 한 달쯤 지났을까. 하루는 대표가 탄 검은 색 고급 승용차가 왠일인지 경비실 앞에서 멈추더군요. 고장 난 줄로만 알았던 뒤 창문이 스르륵 내려가데요. 그때 인간에 대한 예의라곤 일(一)도 없던 사장 얼굴 처음 봤습니다. 의외였습니다. 부질없는 외관은 곱고 잘생겼으며 품위까지 있는 중년 남자였습니다. 그러나….

얼굴 보여주고 끝인 줄 알았습니다. 그랬는데, 그는, 뒷좌석에서, 여유롭게, 천천히, 얼굴에, 얇은, 미소, 짓더니, 아주, 정중하게, 인사하는, 거였습니다. 그리고 아무런 말없이 창문이 닫히더니 차량이 미끄러지듯 사라졌습니다. 그렇게 정중한 인사는 처음이었습니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공자와 그의 제자 자공의 대화로 마치렵니다.
 

산에 오르니 산업단지가 보입니다. 삶, 어느 자리에 있던 배려와 소통이 필요합니다. ⓒ 임현철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은 남에게 시키지 말라!"

『논어(論語)』 「위령공」 편에 나오는 문답입니다. 자공이 그의 스승 공자께 묻습니다.

"한 마디 말로 평생 실천하며 살아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有一言而可以終身行之者乎? 유일언이가이종신행지자호)
"그것은 용서(恕)이니,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은 남에게 시키지 말라!" (其恕乎 己所不欲 勿施於人 기서호 기소불욕 물시어인)


공자는 한 발 더 나아가  『논어(論語)』 「옹야」 편에서 "부인자(夫仁者)는 자기욕입이입인(己欲立而立人)하며, 기욕달이달인(己欲達而達人)이다"고 했습니다. "인자는 내가 서려면 남을 먼저 세우고, 자신이 통달하고자 하면 남을 먼저 통달케 하라!"고 주문했습니다. 삶을 관통해야 하는 '배려'를 강조한 겁니다.

인간 및 모든 생명이 존귀함을 알아야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남해안신문에도 송고할 예정입니다.
#삶 #경비일지 #논어 #인 #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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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힐 수 있는 우리네 세상살이의 소소한 이야기와 목소리를 통해 삶의 향기와 방향을 찾았으면... 현재 소셜 디자이너 대표 및 프리랜서로 자유롭고 아름다운 '삶 여행'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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