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동네 가게는 웬만하면 몇 백 년 전통

[신열하일기2] 치엔먼따지에에서 느낀 중국 문화

등록 2019.05.10 10:30수정 2019.05.10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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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를 잡고, 다시 나와서는 우선 다음 일정을 예약해야 하기에, 일단 눈에 띄는 여행사로 들어갔다. 최근에는 중국도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으로 예매가 되지만 단기 여행 온 외국인은 결재에 문제가 있어 직접 창구에 가서 예매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여행사에 위탁하는 수밖에 없다.

원래 계획한 일정에 따라 무톈위장성(慕田峪长城), 자금성(故宫博物院, 중국에서는 지금 자금성보다는 주로 고궁박물원이라 부른다) 입장권(자금성은 단체 2000명, 개인 1000명으로 하루 입장객을 3000명으로 제한하고 있다), 열하로 가는 왕복 기차표 등을 문의했다.

자금성 입장권은 매진이고, 열하로 가는 기차표 구하기도 쉽지가 않다. 3일차 아침에 열하로 떠났다가 4일차 오후에 북경에 돌아오는 일정으로 수정했다. 하필이면 지금이 청명절 연휴 기간이라 내국 관광객이 엄청나다. 
 

치엔먼따지에((前?大街)청양절 연휴를 맞아 몰려든 중국관광객들이 거리를 꽉 메웠다. ⓒ 민영인

 
중국 경제 성장과 비례하여 중국인들의 국내여행도 덩달아 호황을 맞고 있다. 주말이나 특히 연휴기간에는 웬만한 관광지는 몇 시간씩 줄을 서야 입장할 수 있을 정도이다. 중국 여행 계획을 세울 때는 가급적 이 연휴기간을 피하는 곳이 좋다. 특히 자유여행이라면 버스나 기차 등 교통편 이용도 쉽지 않고 숙박 요금도 터무니없이 비싸진다. 중국의 2019년 기준 공식 연휴는 다음과 같다.

위엔단(元旦, 새해) 12월 30일 ~ 1월1일, 3일 연휴
춘지에(春节, 설날) 2월 4일 ~ 2월 10일, 7일 연휴
칭밍지에(淸明节, 청명한식) 4월 5일 ~ 4월 7일, 3일 연휴
라동지에(劳动节, 노동절) 5월 1일 ~ 5월 4일, 4일 연휴
뚜안우지에(端午节, 단오) 6월 7일 ~ 6월 9일, 3일 연휴
중취우지에(中秋节, 추석) 9월 13일 ~ 9월 15일, 3일 연휴
궈칭지에(国庆节, 국경절) 10월 1일 ~ 10월 7일, 7일 연휴


일단 주 목적지인 열하 일정을 확정하고 나니 마음이 다소 홀가분해져 저녁도 먹을 겸 치엔먼 거리를 가볍게 둘러보기로 했다. 이미 거리는 중국 관광객들로 꽉 메워져 한가롭게 기웃거리며 다닐 수도 없고 유명하다 싶은 식당은 대기가 한두 시간은 기본이다.

자금성(紫禁城) 동쪽 가까이에는 왕푸징(王府井)이 있다. 천안문 광장 동편이 중국국가박물관(역사, 혁명박물관), 서편이 중국 인민대회당, 가운데가 마오쩌뚱기념관, 남쪽은 정양문(正阳门)이다. 조선의 사신들은 동에서 오다보니 예외 없이 동문인 조양문(朝陽門)으로 입궐했다. 청나라 시절 베이징의 4대문 성안은 한족을 정복하고 통치했던 만주족이 사는 곳이었고, 한족들은 성 밖에 거주하며 생활했다.
 

후통(胡同)후통은 베이징의 뒷골목을 뜻한다. 큰길의 현대식 건물과 대조적으로 바로 뒷편에는 이러한 골목이 남아있다. ⓒ 민영인


자금성은 황제의 허락 없이는 쉽사리 범접할 수 없는 공간이다. 외곽에서 자금성으로 접근하기까지는 여러 단계를 거쳐야 된다. 북경의 제일 바깥은 외성으로 정문은 영정문(永正門)이다.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가면 내성의 정남문(正南門)인 치엔먼(前门)으로 원래는 남쪽이라 정양문(正阳门)이라 하지만 속칭으로 치엔먼(前门)이라 부른다.

한족이 성 밖에서 경제 활동을 활발하게 했던 곳 중에 가장 번화했던 한족상업구역이 치엔먼에서 남쪽으로 쭉 뻗어있는 치엔먼따지에(前门大街)이다. 이 길을 따라 종(縱)으로 횡(橫)으로 걷다보면 지나온 날들의 이야기를 품고 있는 눈에 띄는 몇 몇 건물들을 만나게 된다.
 

정양문내성의 남대문(南大門)인 정양문(正??), 속칭으로 치엔먼(前?)이라 부른다. ⓒ 민영인

 
북경오리구이로 유명한 취엔쥐더(全聚德) 본점이 길가에 있다. 청동치(同治) 3년(1864년)에 개업했으니 155년이나 되었다. 치엔먼따지에 99번지에는 오래된 양조장이 있다. 간판은 '원승호(源昇號)', 한국의 중국집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얼궈터우주(二锅头酒, 이과두주)의 원조이다.

이과두주는 800여 년 전인 원(元)대부터 좋은 주정으로 만든 술을 저렴하게 판매하는 대중주로 시작되었다. 청강희19년(1680년), 강희제가 남방순방을 마치고 밤에 북경으로 돌아와 말을 타고 골목을 지나는데 어디선가 좋은 향기가 나서 그것을 가져오라고 했다. 그 맛을 보고는 이렇게 좋은 술이 있냐고 하며 말에서 내려 '원승호(源昇號)'라는 글을 써주어 이 집의 상호가 되었다.
 

원승호이과두주 양조장 ⓒ 민영인


또 건륭제가 간판을 써줬다는 베이징 음식점 뚜이추(都一处)도 있다. 청 건륭3년(1738년)에 술과 몇 가지 음식을 파는 주막집 비슷한 작은 식당으로 시작했다. 1752년 건륭제가 암행순찰을 나갔다 환궁하며 배가 출출하여 요기할 만한 곳을 찾았지만 섣달그믐이라 모든 점포들이 일찍 불을 끄고 문을 닫았다.

그런데 불빛이 새어나오는 유독 한 집이 있어 들어갔더니 주인이 아주 정성껏 맞이해 건륭제가 매우 흡족해했다. 궁으로 돌아와서는 오직 한 곳이란 의미의 뚜이추(都一处)라는 편액을 써서 보냈다. 이 사액 현판을 달자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하며 뚜이추는 유명해지기 시작하였고 술과 요리도 다양해져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따짜랄(大栅栏儿) 거리로 들어서면, 중의약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동인당(同仁堂)이 있다. 해외여행자유화와 1992년 한중수교가 이루어지며 초기 여행객들은 중국에 왔다갈 때 우황청심환을 비롯한 이 동인당 제품 한두 가지 안 사가지고 간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조선시대 연행단이 경비로 가져간 물품 중에 비단, 은, 인삼과 함께 우황청심환이 있었다.

연암도 중국인과 교류를 할 때나 곤란한 상황에 처하면 곧잘 우황청심환을 그들에게 줬으며, 심지어 중국인들이 요구하기도 했다는 기록이 있다. 아마 우리 조선의 우황청심환 품질이 더 뛰어났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동인당은 강희8년(1669년)에 창업하여 옹정원년(1723년)부터 황실에 약을 제공하기 시작해 무려 8명의 황제, 188년간 황실에서 사용하며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중의약의 대표가 되었다. "동수인덕 제세양생(同修仁德 濟世養生)", 인과 덕을 함께 배양하여, 세상을 질병에서 구하고 건강을 지킨다는 것이 동인당의 이념이다.

지인들에게 선물도 살 겸해서 동인당에 들어갔다. 구역별로 나뉘어져 있는 진열대를 둘러보다 제일 만만한 우황청심환을 사기로 했다. 30년 전 중국에 처음 갔을 때 샀던 익숙한 그 디자인의 6알들이 한 통은 60위엔인데, 그 후 새로 나온 10알들이 한 통의 가격은 180위엔이다. 대답이야 뻔하겠지만 그래도 물었다. 역시 대답은 10알들이는 품질이 훨씬 좋다고 한다. 
  

뚜이추입구에 1738년 개업이라고 새겨놓았다. 거의 300년이 된다. ⓒ 민영인

 
편의점에서 물건 사듯이 바로 구입할 수가 없다. 구매의향서를 주면서 옆 건물 5번 방에 갔다 오라고 한다. 커튼을 젖히고 들어가니 흰색가운을 입은 60대 초반의 의사(?)가 맞은편 자리에 앉으라고 한다. 그리고는 누가, 왜, 나이는 등 간단한 질문을 하고 처방전을 적어준다. 그 종이를 들고 다시 돌아와 판매대 아가씨에게 건네면 이제는 계산서를 주면서 뒤쪽 한 편에 있는 창구에 가서 돈을 지불하고 영수증을 가져오면 그제야 약을 받을 수가 있다.
 

동인당중의약의 대명사로 우황청심환의 원조로 알려진다. ⓒ 민영인

 
동인당 우측에 있는 건물은 따관러우잉청(大观楼影城) 1905년 '펑타이(丰泰)'사진관을 운영하던 임경태(任庆泰)가 중국인이 만든 최초의 영화 <딩쥔샨>(定军山)을 상영하여 '중국영화 발상지'로 알려진 곳이다. 또 맞은편에는 톈진만두점 꼬우부리(狗不理)가 있고, 그 외에도 장이위엔찻집(张一元茶庄), 치엔먼 큰 길가의 라오서찻집(老舍茶馆儿)에서는 경극과 만담을 즐길 수 있다.

여기를 돌아다니다 좀 고풍스럽다싶어 들어가면 몇 백 년이다. 왜 우리는 50년 된 집을 찾기도 어려울까? 부럽기도 하지만 괜히 샘이 난다. 오래 되면 문화도 되지만 그것이 바로 관광자원이기도 하다. 따짜랄 골목에서 서쪽으로 관통하면 연행단이 반드시 들렀다는 유리창(琉璃廠)이 나온다.
 

대관루중국 영화의 발상지 ⓒ 민영인

 
덧붙이는 글 개인블로그 '길 위에서는 구도자가 된다'에도 실을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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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0월 지리산 자락 경남 산청, 대한민국 힐링1번지 동의보감촌 특리마을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여전히 어슬픈 농부입니다. 자연과 건강 그 속에서 역사와 문화 인문정신을 배우고 알리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 에디터.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은경의 그림책 편지',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연재합니다. 2017년 그림책에세이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출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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