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이 '어그로'라는 당신에게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 3주기]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할 말이 많다

등록 2019.05.17 21:54수정 2019.05.17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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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여성살인사건 추모를 위해 강남역을 찾은 시민들은 추모의 글을 적은 메모지를 붙히거나 헌화를 했다. ⓒ 이희훈


이 글은 간밤에 별안간 날아든 한 줄짜리 메일에 대한 공개적 답신이자, 또 한 번의 '미투'다.

2016년 강남역 여성살인사건 이후, 나는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수면위로 올라온 여성들의 말하기, 그리고 미투 운동과 발맞추어 내가 경험한 차별과 폭력의 일상을 글에 실어 말했다.

강남역 사건 1주기에는 학교 광장에서, 2주기에는 강남역 근처에서 마이크를 잡기도 했다. 집 앞에서, 학교 앞에서, 학원 앞에서 당한 성폭력을 꺼내어 말했다. 수많은 여성들이 눈을 마주치며 이야기를 들어주었고, "ME TOO"를 외쳤다. 

어머니의 '미투'

어버이날을 맞아 어머니와 식사를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오늘은 말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 저 골목 있잖아. 집 가는 지름길. 나 초등학교 6학년 때, 등굣길에, 저기서 교복 입은 남자애가 나를 뒤에서 끌어안고 온몸을 마음대로 만졌어." 그 외에도 대중교통에서, 길에서 당한 성추행의 경험을 어머니에게 털어놓았다. 광장에서 마이크를 잡고 말하는 것과 어머니에게 말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이었다.

"그랬어? 얼마나 무서웠을까. 엄마한테 말도 못하고." 어머니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 자신이 어릴 적에 겪은 성폭력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영화관 옆자리에 앉은 남자가 면도칼로 바지 아래를 다 찢어놓은 적도 있다고 했다. 10대의 어머니는 자신의 어머니(나의 외할머니)에게 말도 하지 못하고 바지를 몰래 버렸다. 공포에 질린 어머니를 안아준 사람은 없었다. 4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내가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리고 우리의 관계는 긴밀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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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나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어줬다. ⓒ pixabay

 
강남역 여성살인사건 3주기를 며칠 앞두고, 새벽에 메일 한 통이 날아왔다. 제목, '심각하다 때려쳐라 ㅋㅋㅋ.' 메일을 열어보니, 본문은 달랑 한 줄이었다. '어그로성 기사 재밌음?' 

이런저런 매체에 흩어져있는 글 중 하나를 읽고 프로필에 연결된 메일로 연락을 해온 것 같다. 어떤 글을 읽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노키즈존 말고 노아재존 만들자(http://omn.kr/o2up) 고 한 것?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은 단순히 '운 없는 여자'가 죽은 사건이 아니라(http://omn.kr/k2at)고 한 것? 

'어그로'가 무언인지 찾아봤다. 게임용어로 시작되었다지만, 최근에는 주로 인터넷 게시판에서 주제와 다른 글, 악의적인 글을 올리는 사람에게 쓰는 용어이다.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목적으로 심기에 거슬리는 글이나 사진을 게시하는 것을 일컫는 말이라고 한다. 언론사나 웹진에 '여성'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공식적으로 올라오니 심기가 불편한 모양이다. 그러나 나는 나의 이야기가 맥락 없이 분란을 조장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답게 살기 위해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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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여성살인사건 1주기 당시 강남역 10번출구 추모행진 참가자들이 피켓을 들고 사건이 일어난 건물쪽으로 행진하고 있다. ⓒ 장성열

  용감하게 실명으로 메일을 보낸 당신에게 묻고 싶다. 당신의 기분을 상하게 한 나의 '어그로'가 당신을 공포에 떨게 하는지. 여자라서 죽지 않기 위해, 일상적인 공포를 벗어던지기 위해, 사람답게 살기 위해 말하고 설치는 것이 당신을 죽게 하는지.

5월 17일, 강남역 3주기. 개인 계정으로 날아든 메일에 멈칫하고 두려움을 느끼다가도 나는 다시 글을 쓴다. 나는 여전히 할 말이 많다. 나의 어머니는 이제야 입을 뗐다. 

입 한번 떼지 못하고 사라져간 사람들도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죽어가고 있는 불법촬영물 피해자, 성폭력 피해자, 여성혐오 구타사건과 여성혐오 살인사건의 피해자들을 마음에 담는다. 수많은 이름 없는 이들을 기억한다. 여자라서 죽어간 우리의 과거를 추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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