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요하게 만든 750만건... 노무현이 온몸으로 남긴 유산

[노무현 서거 10주기] 국가기록전문가가 본 노 대통령과 기록

등록 2019.05.22 13:42수정 2019.05.22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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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독립언론 '뉴스타파'가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친필메모 266건을 최초 공개했다. ⓒ 뉴스타파 갈무리

 
21일 독립언론 <뉴스타파>가 대통령기록관에 정보공개청구로 입수한 노무현 전 대통령 친필 기록 266점을 공개했다. 이 기록은 대통령 업무보고를 받거나 회의를 하는 중간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생각을 친필로 정리한 기록들이다. 다른 대통령들의 친필 기록은 대부분 사인이나 휘호 등의 형태로 있지만, 대통령 개인적 생각을 메모형태로 작성한 것을 외부로 공개한 건 사실상 처음이다.

글씨 하나하나에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집권시절 어떤 고민을 했는지 생생하게 엿볼 수 있다. 이렇듯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정말 집요하게 대통령기록을 생산했다. 그 결과 대통령 기록 750만 건, 대통령지정기록물 34만 건을 남겼다.

더욱 반가운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긴 대통령지정기록물도 해제되고 있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대통령지정기록물은 임기 후 15년 후 해제된다고 알려졌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지정기록물 6만2000여건 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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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3월 8일 노무현 대통령이 특별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 ⓒ 이종호

 
대통령기록관에 따르면, 2019년 5월 현재 34만 건의 대통령지정기록물 중 6만2000여 건이 대통령지정기록물에서 일반 대통령기록물로 해제됐다. 물론 해제된다고 바로 공개되는 건 아니다. 

다시 공개 및 비공개 분류해서 일반시민들은 공개로 분류된 대통령지정기록물만 접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작게나마 노무현 전 대통령의 중요기록들이 일반 시민들과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필자는 대통령기록관리전문위원으로 이 기록들을 심의하는 일에 참여하고 있다. 위원회를 참여할 때마다 명실상부한 대통령기록의 시대가 열렸음을 실감하게 된다. 그동안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국가기록원의 기록을 참조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 국립문서기록청(NARA)의 기록을 참조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었다. 대한민국 역사를 공부하는 데 미국에서 생산 보존한 기록을 의지해야 하는 역설적인 상황이었던 것이다.

전두환의 왜곡된 주장, 기록이 없어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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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란히 놓인 <전두환 회고록>과 <이순자 자서전>2017년 4월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매장에 <전두환 회고록>과 <이순자 자서전 - 당신은 외롭지 않다>가 나란히 진열돼 있는 모습. ⓒ 권우성

 
이유는 공무원들은 기록을 생산관리하지 않았으며, 가장 중요한 대통령기록에 대해서는 과거 대통령들이 퇴임직전 모든 기록을 소각하거나 개인적으로 보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중요한 사건들에 대해서 기록으로 사실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없었고, 오직 당사자들의 구술기록에 의존해야 했다. 기록이 없으니 말도 안 되는 엉터리 증언들이 쏟아져 나왔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전두환 자서전이다. 이 자서전에서 '계엄군의 진압 활동을 고의적으로 왜곡하려는 사람들의 악의적인 주장'이라고 하거나, 헬기사격을 증언한 고 조비오 신부에 대해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 등으로 표현했다. 이 자서전으로 5.18 관련 단체와 유가족들에게 7000만 원 손해배상 판결을 받기도 했고 형사적으로도 재판이 진행 중이다. 기록으로 증명할 수 없으니 할 수 있는 오만한 행동이다.

대통령기록이 공격의 빌미가 되다!

반대로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통령기록을 남겼다는 이유로 수많은 부관참시를 당했다. 대표적인 것이 제2차 남북정상회담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NLL을 포기하겠다는 발언을 했다'는 주장이었다. 이 주장은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당시 정문헌 새누리당 의원이 주장했고, 엄청난 파장을 낳았다.

하지만 2014년 11월 23일 정문헌 의원은 공공기록물을 위반 혐의로 벌금 1000만 원을 선고받았다. 당시 재판부는 "장기간에 걸쳐 정치·사회적 논란과 대립을 야기했고, 정상회담록 공개로 외교 신인도에 손상을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2013년에는 남재준 당시 국정원장이 1급 비밀기록으로 관리되던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공개하기도 했다. 당시 현대판 무오사화가 발생했다며 기록학계와 역사학계는 국정원을 비판했다. 비록 부적절한 공개였지만 기록이 공개되니, 노무현 전 대통령이 2차 남북정상회담에서 어떤 성과를 이뤘는지 알려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수많은 정치적 논쟁이 있었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의 기록은 여전히 차분히 관리되고 있다. 또한 하나하나 해제되며 시민들을 만날 날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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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문건 나온 영포빌딩검찰이 청계재단 소유의 서초동 영포빌딩에서 이명박 정부 시절 청와대 문건들을 대거 확보했다. 사진은 2018년 2월 1일 촬영된 영포빌딩. ⓒ 연합뉴스

 
반면, 박근혜 전 대통령의 기록이 청와대 캐비닛에서 발견된다든지, 이명박 전 대통령의 기록이 영포빌딩에 숨겨져 있다가 검찰의 압수수색으로 발견된 것은 기록관리를 소홀히 해 발생한 일이다. 

기록관리를 철저하게 하지 않거나, 숨겨둬 자신들의 치부가 생생하게 드러나는 결과가 발생했다. 이 기록들도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이관됐지만, 조만간 시민들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지 10주기가 됐다. 집권 시절 내내 언론과 좌우 진영에서 수많은 비판을 받았던 그는 그런 공격을 받을 수록 대통령기록을 집요하게 만들어, 역사의 정당한 평가를 받고자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가장 큰 업적은 조선의 사관정신을 현대로 이어지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조선왕조는 사관정신으로 500년을 지속할 수 있었다고 많은 전문가들이 평가한다. 우리는 그 관점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다시 평가해야 한다. 그리고 대통령기록을 우리나라에 남겨줬다는 것에 감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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