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각형으로 접힌 화장실 휴지에 대해 몰랐던 사실

[쓸고 닦으면 보이는 세상 ②] 청결의 이중성

등록 2019.05.21 12:27수정 2019.07.17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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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라는 일 자체는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 일과 살림과 육아를 병행하는 극한의 과업을 수행해본 여자라면 누구든 이 일을 고되다고 투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일과는 오전 오후로 나누어져 있고, 두 차례의 충분한 휴식시간이 있으며, 아트센터의 시설들은 대체로 고급스럽고 깔끔해서 일상의 먼지와 얼룩을 제거하여 깨끗하게 유지하는 수준의 청소였다. 전세살이로 수차례 이사를 다니며 케케묵은 먼지와 때, 찌든 얼룩과 곰팡이를 말끔하게 벗겨내고 손수 페인트칠까지 해본 이력이 있는 나에게 이 정도 청소일은 부담스러운 게 아니었다.

청결이란 무엇인가
 

미화원은 가장 잘 보이는 곳을 가장 깨끗하게 만들어야만 한다. ⓒ 최명숙

 
나는 미화반에서 '막내'로 불렸다. 나이 오십에 막내가 된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지만, 초보에다 막내인 만큼 새로 배워야 할 것들은 많았다. 밀대, 끌대, 리스킹, 마포걸레, 이지타월 등 다양한 청소도구의 기능과 명칭, 각 층의 구역과 수많은 방들의 이름, 매일 해야 할 것과 가끔 해도 되는 것, 깨끗해 보여도 닦아야 하는 곳과 더러워 보여도 손대지 말아야 할 곳, '이렇게 해줘야' 하는 일과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는 일 등을 배웠다.

이 곳 미화원 중엔 대기업 건물의 미화반 관리자로 일했던 분도 있고, 수십 년간 호텔에서 메이드로 근무했던 분도 있었다. 제각기 청소라면 남부럽지 않게 할 만큼 해봤고 알 만큼 안다는 분들이어서 그분들이 나름대로 익히고 터득한 청소법에 대해 나는 일단 "아아, 네에―" 하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청소라는 게 고도로 전문화된 영역이라기보다는 상식의 범주에서 생각하고 판단하여 매뉴얼을 만들어갈 수 있는 일이기에, 어느 정도 일을 하다 보니 질문들이 생겨났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질문은 '과연 청결이란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청결이란 첫째, 위생적이고, 둘째, 안전하고, 셋째, 보기에 깨끗한 상태다. 무엇보다 세균이나 병균이 없고 건강에 해롭지 않은 것이 청결의 우선적 요건이라는 게 나의 생각이다.

그러나 이 곳 미화반의 작업은 보기에 말끔하고 반들반들 윤이 나는 상태를 만들기 위한 일이었다. 눈으로 훑어보았을 때 얼룩과 티가 없게 만드는 것이 미화원의 가장 중요한 의무였다.
  
화장실 세면대와 거울의 물기를 수시로 닦아 매끈하고 반짝거리도록 유지하는 것은 반드시 해야 할 일이지만, 거울 위 보이지 않는 곳에 쌓인 먼지를 닦아내는 것은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었다. 바닥에 보이는 얼룩은 반드시 없애야 하지만, 마루 틈 사이사이에 잔뜩 낀 해묵은 먼지는 그대로 두어도 상관 없었다.

사실 자기 집처럼 애정을 갖고 있는 장소를 꼼꼼히 청소해보면 어디를 살피고 닦아내는 것이 진짜 깨끗한 청소인지를 알 수 있다. 먼지는 언제나 구석으로 몰려가기 때문에 구석과 가장자리를 청소해야 하고, 손에 닿지 않는 곳, 눈에 보이지 않는 곳, 가구의 아래쪽에 쌓인 먼지를 제거해야 한다. 또 손으로 자주 만지는 곳은 깨끗해보여도 세균이 생기기 때문에 스위치라든가 손잡이, 문고리, 버튼 등은 늘 닦아줘야 한다. 또 걸레, 스펀지, 변기솔, 쓰레기통 등 청소도구들은 햇볕에 말리거나 소독해줘야 위생적인 청소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청소를 직업으로 삼는 사람에겐 불가능한 일이다. 보이지 않는 곳을 청소하는 게 더 깨끗하고 더 위생적인 청소라 할지라도 티가 나지 않는 일을 할 수는 없다. 가장 잘 보이는 곳을 가장 깨끗하게 만들어야만 한다. 깔끔하고 아름다운 외관을 위해 너저분해 보이는 청소용품과 도구들은 눈에 띄지 않도록 가장 구석지고 어두운 곳에 숨겨진다.

환기도 할 수 없고 일광소독도 할 수 없다. 장갑이나 걸레, 빗자루와 쓰레기통을 햇볕 아래 늘어놓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다. 미화원이 머무는 방 역시 모든 방 중에 가장 폐쇄된 공간이다. 청소의 결과는 환하게 빛나야 하지만, 청소의 물적 인적 자원은 철저히 안 보이도록 감추어져 있어야 하는 것이 미화다.
 

너저분해 보이는 청소용품과 도구들은 눈에 띄지 않도록 가장 구석지고 어두운 곳에 숨겨진다. ⓒ 최명숙

 
누구를 위해 청소하는가

이러한 청결의 이중성은 '내가 누구를 위해 청소하는가?'의 문제에서 비롯된다. 아트센터에서 나는 나를 위해서 청소하는 게 아니라 '고객'을 위해 청소한다. 따라서 고객이 만족해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고객은 왕이니까. 고객은 투명한 유리와 반들거리는 바닥, 티 하나 없는 거울과 물 자국 없는 세면대를 원한다.
  
상쾌한 향기가 나는 화장실과 하얗고 깨끗한 변기에 만족하지만, 어떤 약품을 사용해서 그렇게 했는지는 상관하지 않는다. 화장실 휴지가 삼각형으로 곱게 접혀 있으면 좋아하지만, 그렇게 접어놓으려면 불규칙하게 뜯겨진 부분을 잘라내기 위해 멀쩡한 휴지가 낭비된다는 사실에는 관심이 없다.

심지어 미화원은 고객의 기분과 편의를 위해 화장실 휴지 두루마리의 두께가 1센티 미만으로 감겨 있는 것들은 미리 빼서 버리기도 한다. 식당에 있는 잔반통에 김치 쪼가리 하나라도 버려져 있으면 그 불쾌한 장면과 냄새를 없애는 것이 고객을 위한 당연한 서비스이기 때문에 미화원은 통에 씌워진 비닐백을 아까워 말고 즉시 걷어내 버려야 한다.
 

화장실 휴지가 삼각형으로 곱게 접혀 있으면 좋아하지만 멀쩡한 휴지가 낭비되기도 한다. ⓒ 최명숙

 
"미화는 가정용으로 하면 안 돼. 영업용으로 해야 돼."

경험 많은 미화원 한 분은 마치 본래부터 세상엔 두 종류의 청소가 존재했다는 듯 이렇게 말했다. 물론 오늘날의 현실은 그렇다. 농작물을 키우는 데에도 가정용이 있고 영업용이 있으며, 음식을 만드는 일도 가정용과 영업용이 따로 있다.

하지만 본래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전통사회에선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 노동의 결과를 자기가 가져가는 노동의 주체였다. 내가 청소한 집에 내가 살고, 내가 길러서 만든 음식을 내가 먹으며, 내가 만든 옷을 내가 입었다.

지금처럼 청소하는 사람 따로 더럽히고 어지르는 사람 따로, 음식을 만드는 사람 따로 먹는 사람 따로, 옷 만드는 사람 따로 입는 사람 따로 된 것은 산업이 발달하고 자본이 집약됨에 따라 생산과정이 분업화되었기 때문이다.

분업화된 시스템은 편하고 효율적이다. 무엇보다 많은 일자리를 창출한다. 특별한 자격증이나 기술도 없는 내가 미화원으로 취직할 수 있었던 것도 분업화된 사회구조 덕분이다.

그러니 청소일로 월급 받는 나에게 불평할 자격은 없다. 변기를 더럽게 쓰는 고객이 없다면 미화원은 필요치 않을 것이다. 단지 손의 물기를 닦기 위해 엄청난 양의 종이 타월을 쓰고 버리는 고객들, 화장실 휴지를 거칠게 찢어놓는가 하면 변기가 막히도록 휴지를 둘둘 말아 처박는 고객들, 쓰레기를 아무 데나 버리는 고객들, 자녀들이 신발로 의자를 밟거나 바닥에 음식물을 흘려도 개의치 않는 고객들 덕분에 '일'이 생겨나고 그 '일'을 내가 하게 된 것이 아닌가.

노동에 가치와 보람을 느끼며 돈을 벌겠다던 야무진 꿈은 내가 얼마나 얄팍한 지식인이었는가를 반증해준다. 돈을 벌려면 나는 내 노동과 나의 인격을 분리해야 한다. 간신히 얻은 이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선 내가 하는 일의 이유와 의미와 효과를 깊이 생각해서는 안 된다.

'노동은 노동일뿐', 마음 주지 말고 정 주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나는 노동으로부터 나를 소외시킨다. 오늘도 나는 환경 오염을 걱정하면서도, 변기에 말라붙은 역겨운 오물을 닦아내기 위해 독한 세정제를 뿌려서 문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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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에디터.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은경의 그림책 편지',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연재합니다. 2017년 그림책에세이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출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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